※[조은비의 비엔나 라이프] 20번째 글입니다.
[평범한미디어 조은비 디라이트 대표] 3주 뒤면 유럽을 떠나야할 슬픈 운명은 내 여행욕에 계속 불을 지폈다. 지금 여기서만 가능한 모든 걸 경험해야 해. 뭘 해야 할까? 이왕이면 그럴 듯한 성과를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이득이 되는 것을 해볼까 아니면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경험을 해볼까. 참 나다운 고민이었다.
그렇게 난 듀크 대공의 바로크진주 예술품을 떠올렸다. 두 개의 커다란 바로크진주로 잠자고 있는 아기를 표현한 걸작. 공방 수업에서 소개할 때마다 고객들의 탄성을 자아내던 작품이었다. 아! 주얼리를 공부하러 ‘또’ 이탈리아에 가는 거군. 그런 이유라면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리 정신나간 사람으로 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챗 GPT로 열띤 사전 조사를 마친 뒤 피렌체에 도착했다. 일기예보와 다르게 비가 내렸고 시내버스 막차는 내가 서있는 정류장을 그냥 지나쳤다. 이탈리아 유명 주얼리를 다 씹어먹고 오겠다는 내 자신만만한 선언을 들었던 룸메이트가 보면 놀릴 게 분명했다. 폰 화면에 맺히는 빗방울을 소매로 계속 닦으며 구글맵으로 숙소까지의 거리를 확인했다. 걸어서 40분. 휴!
이튿날 눈에 불을 켜고 그 예술품이 있는 피티 궁전으로 향했다. 사진을 수 십장 찍어야지. 그 예술품이 있는 전시실엔 최소 1시간은 투자할 거야. 강렬한 직업적 욕망과 어제 감수한 고생의 결실을 보겠다는 다짐으로 무장한 채. 입장하자마자 박물관 안내판으로 <듀크 대공 보물> 전시실 위치를 확인하고 그곳으로 달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두 번, 세 번. 아무리 둘러봐도 바로크진주의 ‘진’자도 안 보였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그 예술품이 있는 방은 1시 이후로 문을 닫는다고 답했다. 나는 “홈페이지엔 이 내용이 안내돼있지 않던데요”라고 물었는데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냥 원칙이 그래요”라고 답했다.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아무리 오스트리아 항공이 아닌 라이언에어를 타고, 피렌체까지 기차가 아닌 버스를 타고, 피렌체 안에서는 대중교통 없이 도보로만 이동하며 돈을 절약했다고 해도 여행은 여행이었다. 나는 이 정도 지출로 ‘세계적인 바로크진주 장식품을 보러 이탈리아까지 간 열.정.적.인 주얼리 작가’임을 증명하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허술하게 운영되는 박물관도, 보안 검색대에서 폰만 쳐다보던 직원도 다 짜증이 났다.
별 수 없이 다른 전시실을 구경했다. 사전 조사는 없이 설명되지 않는 아름다움들을 그냥 봐야 했다. 지금까지 전세계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며 피렌체를 먹여 살린 라파엘로의 그림, 피에뜨로 어쩌고, 지오반니 저쩌고의 초상화, 세 왕조가 살았다는 무슨 아파트, 비단을 두른 벽, 천장을 꽉 채운 프레스코화, 황금 기둥 등등. 주얼리공방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예상치 못 한 직업적 수확도 있었다. 이탈리아 전통 공예 기법(Pietre Dure)으로 만드는 주얼리를 접했다. 돌이 자연적으로 가진 색, 무늬, 점, 흠집 등을 물감으로 사용하여 적당한 부분을 잘라내 정교하게 이어붙여 장식품을 만드는 기법인데 저렇게도 주얼리를 만드는구나. 전시실이 아닌 빈 공간에서 내려다본 피렌체 풍경도 아름다웠다. 박물관에서 나와 우연히 먹어본 ‘카초 에 페페’ 파스타(cacio e pepe 이탈리아 전통 파스타로 치즈와 후추라는 이름처럼 두 가지 재료만 넣어 만든 간단한 별미로 엄청 맛있다)도 환상적이었다.
원하던 그 예술품은 보지 못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그러니 살아가는 동안 이렇게 마음 가는 방향으로 성실하게 계속 움직이고 싶다. 지나친 걱정과 불안 없이 어차피 단 한 번도 걱정했던 것만큼의 비극은 일어난 적이 없으니까. 이 마지막 여행처럼 뜻밖의 상황도 나는 어찌저찌 돌파해나갔다. 한국에서 늘 미래의 이익과 손실을 따져 계획을 세우고 실패와 실망이 두려워 최악의 상황만 생각하며 살던 내게 주는 마지막 선물로 딱이었다. 기쁨, 슬픔, 신남, 분노, 설렘, 질투 등 다양한 감정들과 뜻밖의 경험들로 채운 비엔나와 유럽에서의 1년 2개월. 이렇게 (한국으로 돌아와서) 멀리서 보니 아름다운 그림인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