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민주당 스타일의 불체포특권 포기 “정당할 땐 방탄하겠다는 것”

배너
배너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진통 끝에 불체포특권 포기를 결의했다. 앞서 혁신위원회의 1호 혁신안으로 모든 현역의원이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공개되자 갑론을박이 거셌다. 민주당 의원들의 분위기는 윤석열 정부의 무도한 검찰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불체포특권이 필요하다는 쪽이었다. 그러나 내부 쇄신파들의 목소리, 여론의 압박, 국민의힘 눈치보기 등이 작용해서 끝내 포기 결의를 하긴 했다.

 

 

민주당은 18일 오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불체포특권 포기를 당론으로 결의했다. 그런데 조건이 붙었다. “정당한 영장 청구”에 대해서만 포기할 수 있다고 사족을 달았는데 어떤 경우에 정당한 것이고 어떤 영장이 부당한 것인지는 누가 판단하는 걸까? 무엇보다 민주당 의원들은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영향을 미치는 검찰의 대야당 수사 자체에 대해 ‘부당한 정치 공격’으로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 김한규 원내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정당한 영장 청구에 대해 의원들의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불체포특권이) 부당한 행정 권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는 의견을 낸 의원도 있었으나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 등을 고려해 결의를 수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구체적으로 검찰이 야당 의원들에 대해서만 없는 죄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작은 건을 부풀리고 보태 언론에 흘려서 여론의 뭇매를 맞도록 한다고 보는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핵심은 윤석열 정부의 임기 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자신들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 수도 있다고 느끼는 불안감이다. 법을 어긴 것이 전혀 없어서 떳떳한 게 아니라 뭔가 구린 짓을 하긴 했는데 까발려져서 정치 생명이 끝나면 어떡하지? 이런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체포특권에 대해 국민들은 진작 철퇴를 내렸고, 언론들의 방탄론 기사는 넘쳐나고, 검찰 수사를 받지 않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국민의힘은 얄밉게도 소속 의원 전원의 포기 서약을 선수쳤다. 아마도 민주당은 정치 탄압 논리에 숨어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쇼’라도 하지 않으면 불리한 정국이 계속될 것 같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헌법에 명시돼 있다. 그래서 불체포특권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버릴려면 △원포인트 개헌이 필요하다. 포기가 아닌 폐지를 해버리는 것이 가장 깔끔하다. 현실적으로 개헌이 어렵다면 △국민의힘 의원들처럼 서약서에 서명해서 문서를 남기는 방법이 있고 △그 다음에 당론으로 포기하겠다고 결의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민주당은 등떠밀려서 가장 낮은 단계로 불체포특권 포기 코스프레를 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여기에 빠져나갈 안전 장치로 “정당한 영장 청구”라는 조건을 갖다붙였다.

 

김 원내대변인은 “국민의 눈높이가 기준”이라며 “국민이 볼 때 특별히 이례적으로 부당한 영장 청구라고 판단하지 않는다면 불체포특권을 내려놔야 한다”고 강변했다.

 

여론으로 어렵지 않게 판단이 될 것이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 국민 눈높이에서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되면 달리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거대 양당의 한 축인 민주당이 당원과 지지자들의 극렬한 여론을 국민 눈높이로 치환해서 불체포특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을 바꿀 가능성은 없을까?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 공개적으로 밝힌 수많은 공약들을 지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반대로 행동하기도 했고, 일방적으로 법안 통과를 밀어붙인 적이 있고, 성범죄로 인해 보궐선거가 열렸음에도 당헌당규를 뜯어고쳐서 공천을 강행한 이력이 있다. 당론의 성격을 갖는 결의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더구나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놓은 조건부 결의인데 민주당의 이번 결정을 그 어떤 국민이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 원내대변인은 “(불체포특권 포기를) 당론으로 정해도 체포동의안이 무기명 투표로 처리되는 만큼 (가결) 결과를 담보할 수 없다”면서 “의원들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 판단을 할 것”이라고 무책임하게 발언하기도 했다. 당 차원의 결의가 의원들의 익명 표결로 쉽게 무시될 수 있다는 점을 자인한 셈이다.

 

물론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다. 만약 또 민주당이 방탄으로 나아가면, 조건부 결의를 했던 사실이 정치적으로 거세게 비판 받을 장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위는 이날 입장문을 냈는데 “원칙적으로 불체포특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혁신을 위한 내려놓기의 시작으로 보고 앞으로 실천해줄 것이라 믿는다”며 “혁신위 안을 수용해 의원총회에서 뜻을 모은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엎드려서 절받는 코멘트가 아닐 수 없는데 정의당 이재랑 대변인은 “그동안 민주당이 돈봉투 의혹 등 각종 비리 의혹에도 불체포특권을 이용해 방탄 정당을 자초하여 그 윤리성을 심각하게 의심받았는데 적절히 소명해야 할 사안조차 검찰 독재, 야탕 탄압이라는 프레임을 빌어 자의적으로 사안을 판단하고 숨어버렸다”며 “정당한 영장 청구라는 단서는 그 프레임 안에 숨는 짓을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없다”고 논평했다.

 

결국 그 영장이 정당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민주당이 판단하겠다는 건데 애초에 민주당은 이 정당함을 판단할 윤리적 자격을 갖추지 못 했다는 것이 1호 혁신안이 나오게 된 배경이었다. 결국 오늘의 결정은 혁신위의 정신을 정면으로 배반한 것에 가깝다. 뼈를 깎는 노력을 하겠다던 김은경 혁신위원장의 말과는 달리 민주당은 제 손톱도 못 깎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당한 영장일 경우 불체포특권 포기한다는 말은 결국 정당할 땐 방탄하겠다는 것이다.

프로필 사진
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