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바지사장을 내세워 자신의 건설업체가 기초단체 수의계약을 따낼 수 있도록 한 기초의원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광주지법 제1형사부(김평호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은 무소속 기대서 북구의원(광주광역시)에 대해 원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기 의원이 항소를 했는데 2심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한 것이다. 그러나 기 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법원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이 선고되면 의원직이 날라가지만, 일반 법률 위반으로 감옥에 가지 않는 이상(금고형 이상) 의원직은 유지된다. 선출직 공직자로서 중대한 법률 위반이 법원으로부터 확정됐지만 감옥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속해서 의원활동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기 의원은 지난 2018년 10월부터 2020년 5월까지 본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건설업체 2곳이 북구청으로부터 9170만원 상당의 수의계약을 따내도록 손을 썼다. 기 의원은 바지사장을 앉혀놓는 방식으로 마치 자신과 관련없는 건설업체인 것처럼 북구청 공무원들을 속였는데, 지역구(중흥1·2·3동/신안동/임동/중앙동)에 있는 경로당 개보수 공사사업과 공동주택 정비사업 등 1건당 최소 700만원에서 1000만원 수준으로 수의계약을 체결했다.
지방자치법 43조에 따르면 지방의회 의장은 다른 공직 및 이해충돌 기관이나 단체의 직위 등 청렴의 의무 위반 소지가 있는 겸직에 대해서는 윤리심사자문위원회의 의견을 들어 해당 의원에게 사임을 권고해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토론의 소지가 있지만 법률적으로 월 380만원 가량을 4년간 수령하게 되는 기초의원에게 겸직을 불허하지 않고 있다. 다만 겸직이 부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직업과 지위를 심사를 통해 결정하고 있다. 지방자치법 43조 4항에는 지방의회 의장은 의원의 겸직 신고 내용을 연 1회 이상 홈피에 게시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기 의원이 바지사장을 통해 본인의 업체에 구민 세금이 들어가도록 한 것에 대해 북구민 누구도 알지 못 했다. 기 의원처럼 기초의원이 얼마든지 부적절한 겸직을 하고 있으면서도 꼼수로 겸직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쉽게 법을 우회할 수 있다. 나아가 지방자치법 44조는 지방의원이 공공의 이익 우선, 청렴 및 품위 유지, 지위 남용, 재산상의 권리 또는 직위 취득 금지 등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기 의원의 행태는 명백한 사익 편취였다.
물론 2020년 9월 광주 지역 시민사회(참여자치21/공무원노조광주지역본부/진보연대)에서 기 의원을 비롯 기초의원 7명을 경찰에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과 검찰을 넘어 법원 기소까지 이뤄지자, 기 의원은 뒤늦게 계약 금액을 전부 법원에 공탁하긴 했다.
김평호 부장판사는 기 의원에 대해 “구청 담당자를 기망해 자신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회사와 수의계약을 체결, 기망행위를 한 점이 인정된다”면서 “공사 계약 금액을 전부 공탁했지만 재판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점, 북구 자체 조사에서도 한 번도 제대로 자신의 범행을 진술하지 않은 점 등을 볼 때 원심의 형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광주본부 북구지부는 기 의원의 문제점을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바지사장을 내세워 불법 수의 계약을 수주한 기대서 의원은 구민에게 사과하고 즉각 사퇴하라. 기 의원은 의정 활동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과도한 자료 요구와 근거없는 트집 등으로 많은 공무원들을 힘들게 했다. 음으로 양으로 과연 어디까지가 의정활동인지 의구심을 갖게 했다. 개인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불법행위를 저질렀던 기 의원은 구민들에게 사과하고 즉각 사퇴하라.
실제로 기 의원은 2020년 2월 ‘광주 북구 지역건설사업 활성화 지원 조례안’을 발의해서 최종 의결되도록 이끌었는데 북구 관내 공사를 북구에 있는 건섭업체가 더 많이 따내도록 한 것이 골자였다. 지금 돌이켜봤을 때 누가 봐도 이해충돌이자 노골적인 사익 편취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당시 기 의원 홀로 추진한 게 아니라 광주 동·서·남·북·광산구 5개 기초의회 도시건설 관련 상임위원장들이 공동으로 발의하긴 했지만, 머쓱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기 의원이 별다른 검증없이 손쉽게 1억 가까운 액수를 자기 업체에 꽂을 수 있었던 배경은 지방의원들의 고질적인 ‘포괄사업비’ 관행이 자리잡고 있다. 기초단체 집행부는 기초의원들의 의회 견제 약화 및 협조를 구할 목적으로 의원별 5000만원에서 1억원 가량 “재량사업비”를 할당하곤 한다. 지역마다 액수 및 양태는 다르겠지만 대부분 이런 재량사업비를 의원들에게 쥐어주고 자기 맘대로 예산을 쓸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예산 명부에는 집행부 실과 국 일반 사업비로 기입해놓고 실상은 의원들의 재선을 위해 노골적인 지역구 민원 챙기기로 쓰라고 주고 있는 것이다.
해당 지역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엄격하게 따지고, 고민하고, 전문가의 검증을 거쳐서 토론하고 숙의하는 절차를 거쳐서 정당하게 예산을 배정하고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의원들의 정치적 연명을 위해 소중한 주민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이러한 선심성 비윤리적 예산으로 전락한 재량사업비 항목에 대해 폐지를 권고했지만 북구청은 그럴 생각이 없다. 관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안마의자, 게이트볼 장비, 반신욕기, 아파트 놀이터나 체육시설 개보수 등 아무 제재없이 의원들의 선심성 예산이 집행되는 동안 반드시 북구 예산으로 제대로 지원해야 할 저소득층 위기 가정 등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참여자치21 조선익 공동대표는 “의원들이 선심성으로 포괄사업비를 주민 숙업 사업비로 이름만 바꿔 불투명하게 집행하고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며 “편성과 지출에 대한 세부내역이 없기 때문에 의정 성과를 홍보하는 데 쓰이는 돈으로 전락했다. 어떤 돈도 소요 예측, 지출 결과에 대한 평가가 없이 쓰이지 않는다. 하물며 세금인 만큼 폐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관내 유권자들이 지역 기초의원에 대한 감시와 엄격한 투표행위로 견제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참여자치21이 2020년 9월 기 의원과 같은 비위 행위를 저지른 북구의원 6명을 고발하고 경찰과 검찰 수사를 거쳐서 어느정도 사실관계가 드러났지만 백순선·선승연·이현수·이정철 전 의원만 2022년 6.1 지방선거에서 낙마했지, 기 의원과 전미용 의원은 재선으로 당선됐다. 어차피 더불어민주당 깃발을 꽂으면 당선이 유력시되는 광주에서 전 의원은 윤리적인 문제가 꽤 있었음에도 별 무리없이 공천을 받았고, 기 의원은 무소속으로 주민들의 표를 받아 당선됐다.
이런 정치적 현실 아래 북구의원들의 일탈은 화수분이 되었다. 티스토리 블로거 옹달샘과 행복바다는 북구의원들의 비리를 접하고 “여기도 삥땅 저기도 삥땅. 삥땅은 먼저 치는 놈이 임자 아닌가?”라고 조소했고, 전남일보는 사설을 통해 “도대체 광주 북구의회 의원들의 비리의 끝은 어디인가”라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