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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관계’와 ‘죽음’에 대한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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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라이트디퍼의 감상문] 14번째 글입니다. 영화, 드라마, 책 등 컨텐츠를 가리지 않고 라이트디퍼가 작성하는 리뷰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평범한미디어 라이트디퍼] 영화 <너와 나>의 시작은 의미심장하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날 불길한 꿈을 꾼 세미(박혜수 배우)가 교내를 걷다 발견한 죽은 새를 박스에 담아서 묻어주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너와 나>의 주인공은 단짝 친구인 두 여고생이다. 수학여행 전날 둘의 관계가 틀어지며 일어나는 사건들이 핵심 줄기다.

 

 

<너와 나>는 <D.P>의 조석봉 일병으로 유명한 조현철 배우가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며 만든 영화다. 조현철 배우는 원래 연출 전공이다. 영화는 아는 만큼 보인다. <너와 나>는 전형적인 그런 영화다. 알고 보는 게 좋다. 하지만 모르고 감상하다 금방 알아챌 수도 있고, 나중에 이게 세월호 참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구나. 되뇌이며 두 번 볼 수 있는 그런 영화다. <너와 나>는 색과 빛이 아름답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이 아득한 색감으로 채워졌다. 초록빛 숲과 햇살들은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과거를 회상하게 만들어준다.

 

세미는 풍부한 감성을 가졌다. 어찌보면 시시각각 마음이 변하는 미성숙한 소녀다. 들떴다가 금방 토라진다. 세미와 정반대로 털털한 성격을 가진 하은(김시은 배우)은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세미는 하은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고 싶어 한다. 그만큼 하은과 정서적으로 친밀하다. 손꼽아 기다린 수학여행도 하은과 같이 가야 의미가 있다. 그런데 하은은 자전거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를 다쳤다. 병원에 입원했다. 세미는 못내 아쉬워 병원에 찾아가 하은을 졸라서 수학여행을 가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사실 세미의 바람과 달리 하은은 돈 문제도 있고 수학여행에 가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일단 세미의 보챔을 못 이겨 가기로 했다.

 

둘은 캠코더를 팔아서 수학여행 참가비를 마련하기로 한다. 캠코더를 가지러 하은의 집에 간 둘. 세미는 나 밖에 모른다고 생각했던 하은의 남자친구 흔적을 마주치게 된다. 하은의 전남친과 좋아하는 오빠의 존재를 알게 된 세미는 질투심을 느낀다. 안 그래도 하은의 폰에 모르는 번호로 여러 차례 전화가 와있었다. 누구냐고! 뭐냐고! 따져묻던 세미는 하은으로부터 “집착”이라는 단어를 듣게 된다. 당연히 서운하다. 삐졌다. 세미와 하은의 갈등이 시작됐다. 이내 하은은 수학여행을 가겠다던 말을 번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잠시 냉각기를 가져야 했다.

 

 

그런데 세미는 다른 친구로부터 하은이 연락두절됐다는 말을 들었다. 둘과 친한 다른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하은이 실종됐을 수도 있기 때문에 비상사태다. 다애(오우리 배우)는 또 다른 하은의 단짝이다. 10년지기 소꿉친구다. 그래서 평소에도 세미는 다애를 미워했고 질투했다. 그러나 다애는 하은으로부터 세미 얘기를 많이 들었다. 평소 다애는 세미에게 하은의 감정이나 고민에 관심이 없고 스스로 느끼는 감정만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 아니야? “네가 뭘 안다고 그래!”라고 받아쳤지만 생각해보니 세미는 뼈를 맞은 것 같다.

 

하은이는 세미의 고민과 푸념에 귀기울이는데, 세미는 피상적으로만 하은의 고민을 알았지 진심으로 들어주고 공감해준 적이 없었다. 그저 하은이 자신을 우선순위 1등으로만 여겨주길 원했다. 그렇게 누가 더 하은의 마음을 많이 상하게 했는지 다애와 세미는 한바탕 청문회를 벌였다. 눈물을 흘리며 하은의 마음을 대신 전달해주는 다애로 인해 세미도 뭔가 깨달았다. 세미는 항상 하은을 애타게 쫓아다니느라 나만 을이고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하은이 겪는 힘든 상황과 고민을 이해하지 못 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우선시했다. 세미는 하은이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어느정도 알 것만 같다. 두 소녀가 겪은 동일한 상황이지만 세미와 하은이 보는 시각과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너와 나>에는 죽음과 잃어버림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한다. 처음 등장한 작은 새의 죽음, 하은이 13년 키운 반려개의 죽음. 곳곳에 스며든 미장센과 세월호의 흔적을 엿볼 수도 있다.세미와 하은은 산책길에 우연히 만나게 된 하얀 개 똘똘이를 마주친다. 똘똘이를 지나친 세미와 하은은, 그 똘똘이를 잃어버려 자책하는 견주(길해연 배우)를 만나 이야기를 듣는다. 똘똘이를 견주에게 데려다주며, 한 번만이라도 꼭 다시 보고 싶었고 어디서 고통스럽게 죽어간 것은 아닌지 너무나 걱정했다는 속마음을 듣게 되는데, 세월호 유가족의 심정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 밖에 없는 장면이다.

 

세미는 하은을 다그칠 때 “왜 힘들다면서 그 오빠와 웃고 떠들었냐”고 추궁하는데 사실 큰 아픔 속에 있는 사람이라도 항상 울상으로 지내지는 않는다. 원래 감정 표현이 서툰 하은은 “난 즐거워하면 안돼?”라고 되묻는다. 그렇게 내내 참고 있던 감정을 터트리는 하은의 모습을 보며, 가족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일상 속 때로는 웃고 즐거워하는 스스로를 자책했을 유가족의 모습이 투영되어 그 장면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조현철 감독은 2022년 백상예술대상에서 <D.P>로 TV 부문 남자 조연상을 타며 수상 소감으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지금 저희 아버지가 투병 중에 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에게 용기를 드리고자 잠시 시간을 할애하겠다. 아빠가 눈을 조금만 돌리면 마당 창 밖으로 빨간꽃이 보이잖아. 그거 할머니야.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음이라는 게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 작년 한 해 동안 내 첫 장편 영화 <너와 나>를 찍으면서 나는 분명히 세월호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그리고 그 영화를 준비하는 6년의 시간 동안 내게 아주 중요했던 이름들. 박길래 선생님, 김용균군, 변희수 하사, 이경택군, 외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 아랑스 그리고 세월호의 아이들. 특히나 예진이, 영은이, 슬라바, 정모. 나는 이들이 분명히 죽은 뒤에도 여기에 있다고 믿어. 그러니까 아빠 무서워하지 말고 마지막 시간 아름답게 잘 보냈으면 좋겠어. 소란스러운 일들 잘 정리하고 도로 금방 갈게. 편안하게 잘 자고 있어. 사랑해.

 

 

<너와 나>에는 감당하기 힘든 슬픔과 아픔 대신, 그들이 살아있었다면 겪었을 만한 일상적인 에피소드들로 채워졌다. 그래서 너무 일찍 쓰러져버린 생명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득해서 눈물 짓게 만든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여운이 있다. 비극을 마주하고 싶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힘들지 않게 볼 수 있는 영화다. 마지막으로 세미가 하은에게 쓴 편지를 그대로 가져와봤다.

 

하은이에게.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모르겠다. 좋은 걸 보면 너랑 같이 보고 싶고, 맛있는 걸 먹으면 너랑 같이 먹고 싶어. 이 편지를 보고 너가 달아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 마음도 나랑 같았으면 좋겠어. 좀 전에 자다가 깨어났는데 오늘은 너한테 꼭 고백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 마음이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 항상 너가 보고 싶고 걱정돼. 수학여행 다녀와서 우리 꼭 맛있는 거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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