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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디퍼의 감상문①] ‘자동차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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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라이트디퍼] 인간들을 자동차의 균일한 부속품처럼 만들 수 있다면 세계는 어떤 형태를 띄게 될까? 누군가는 와이퍼처럼 사용될 것이고 더 능력있게 태어난 누군가는 엔진처럼 사용될 것이다. 사람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정교하게 디자인되어 내가 살아갈 환경 이외의 조건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도록 훈련된다.

 

 

절망, 고독이나 우울 같은 불안정한 감정들은 중독가능성이 없는 알약 한 두알에 의해 통제되어 삶에서 더 이상 불만을 느낄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한다. 사회는 항상 생산과 소비를 하기 위한 최적의 상태로 유지된다. 이런 사회에서 여성의 자궁을  통해 자연적으로 출산된 인간은 야만인으로 분류되며 구경거리이자 미개한 생명체로 문명과 분리되어 있다.

 

우연적인 사고로 문명인에게서 출산된 야만인은 문명인을 통해 문자를 배우게 되고 한 권의 고전소설집을 통해 사고능력을 기른게 된다. 야만인의 눈에 비친 문명인들은 첨단 기술과 사회시스템에 종속되어 있는 부품이자 노예이다. 발전된 기술은 안락함과 편안함을 주었지만 개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유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아 버렸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1988년에 출판되었다. 당시의 기술로는 비현실적 공상소설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2022년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는 머지 않은 미래에 가능한 사회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씁쓸함을 안겨줬다. 기술은 부스터를 단 것처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사회 체제와 그 구성원의 평균 의식수준이 그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 책이 첨단 기술과 정보를 독점할 수 있는 소수에 의해 통제되는 전체주의 사회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조지 오웰의 <1984> 속 빅브라더가 그렇듯이 이러한 문제의식은 지금까지 숱하게 저널리스트의 글감 소재로 다뤄져왔다.

 

그만큼 개인이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내가 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목표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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