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1시간 반 가까이 길게 대화를 했지만 애초부터 선이 그어진 만남이었다. 당초 쌍특검으로만 공조의 범위를 좁히려고 했던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의중과는 달리 여러 정책 의제들에 대한 의견이 오고가긴 했다. 양당체제에 대한 비판은 입버릇처럼 나왔으니 상수였다. 그걸 넘어 코로나 대응 등 주요 정책 의제들로 뜻을 모으는 모양새가 취해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딱 정책 공감대를 형성하는 수준이었지 그 다음 단계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정치적 스텝’은? 그것에 대한 부분은 매우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오히려 분명한 선이 그어졌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안 후보가 6일 14시 서울 여의도에 있는 켄싱턴호텔에서 회동했다. 심 후보가 11월초 양당체제 종식 선언을 공동으로 해보자고 제안한 이후 한 달만이다.
두 후보는 미리 공지된 14시 이전부터 만나 15시10분까지 꽤 긴 대화를 나눴다.
먼저 호텔 입구로 나온 안 후보는 “몇 가지 쟁점에 대해서 의견 교환을 했다.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양당의 원내대표가 자세한 말씀을 할 것”이라며 “일단은 오늘 서로 합의된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시면 거기에 여러 내용들이 있다. (제3지대 단일화?) 전혀 없다”고 짧게 밝혔다.
심 후보는 좀 더 길게 후기를 들려줬지만 안 후보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코멘트를 주지 않고 정돈된 메시지만 나가도록 주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심 후보는 “뭐 편하게 여러가지 얘기 나눴다. 구체적인 것은 양당 원내대표들께서 바로 이어서 말씀을 하실 것”이라며 “그동안 이야기됐던 것처럼 지금 양당 정치가 우리 시민들의 삶을 어렵게 하는 적폐다. 그런 데에 인식을 같이 했고 양당체제를 극복하고 민생 정치, 미래 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여러 정책적 협력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만남에 대해선 특정하게 이야기하지 않았다”면서 “(이날 15시 일정 있음에도 회동이 길어진 이유?) 쟁점이 있어서 길어졌다기 보단 두루 여러가지 측면에서 의견을 나눴다”고 덧붙였다.
분명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본 그런 내용”에 대해서만 두 당 원내대표를 통해 정리해서 전달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심 후보는 새로운물결 김동연 후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면서 “오늘은 안 후보와 나하고 할 얘기에 집중했었다”고 했다.
심 후보가 자리를 떠난 직후 두 원내대표가 공식 브리핑을 했다. 국민의당 권은희 원내대표가 미리 와 있었고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는 늦게 나왔다.
권 원내대표는, 두 후보가 극도로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다는 평범한미디어의 물음에 “아니 처음 만나니깐”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현장에 왔던 20여명의 펜기자들은 단순히 이번 대선 정국에서 두 후보가 처음 대화를 하게 되어 그랬던 것이라고 느끼지 않았을 듯 하다. 실제 이날 두 후보는 원래 국회 인근 ‘하우스 카페’에서 공개 회동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오 즈음 켄싱턴호텔로 급 변경했고 구체적으로 호텔 2층 어느 곳에서 만날 것인지까지 공지했다가 호텔측의 요청이란 명분을 들며 입구 취재만 가능하다고 통지했다.
정의당 공보실은 당일 오전 10시 이번 회동에 대해 “많은 관심과 취재를 바란다”고 기자들에게 당부했던 것으로 보아 국민의당이 비공개를 요청해서 그리 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원내대표는 준비된 합의문을 번갈아가며 낭독했는데 서두에 이런 취지를 배치했다
두 후보는 오늘 대선이 양당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선거가 아니라 시민의 삶을 지키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 한다. 이번 대선이 과거로의 정권 교체가 아니라 미래로의 정권 교체가 될 수 있도록 시민들께서 선거 혁명을 해주실 것을 요청드린다.
다음으로 권 원내대표가 3대 합의사항에 대해 낭독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①코로나 위기 극복(확진자 1만명 이상 수용 가능하고 중증환자 2000명 이상을 치료할 수 있는 병상 및 의료진 확충/소상공인에게 실질적인 손실보상)
②양당체제에 경종을 울리는 대선(양당 후보에 대한 핵심 의혹이 규명되지 않은 채로 후보 등록이 이뤄지지 않아야 함/결선투표제 도입에 뜻을 모음/다당제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에 협력)
③생산적인 정책 의제로 경쟁(청년 문제 해결·연금 개혁·기후위기 대응·양극화와 불평등 해소 등 주요 의제들을 놓고 선의의 경쟁을 하기로 함)
말 그대로 ‘구동존이’다. ①②에 대해서는 같은 입장이지만 ③의 경우 이러한 핵심 의제들에 대한 가치관이 각각 다르니까 정책 경쟁을 해보자는 의미다.
배 원내대표는 ①이 제1의 합의사항으로 결정된 배경에 대해 “이번 선거는 시민들의 삶을 지키는 선거이고 향후 대한민국 정부를 책임져야 할 대통령들은 방역 대통령이어야 한다는 데에서 두 후보가 인식을 같이 하셨다”며 “최근 들어서 일상회복 단계로 넘어갔다가 다시금 코로나 위기의 확산으로 국민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코로나19 문제를 두 후보가 우선 거론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두 후보가 그 논의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권 원내대표도 “(①이 가장 중요하다는) 두 후보의 뜻을 전해달라는 데 두 후보가 완벽하게 일치해서 첫 번째로 그 대책을 말씀드리게 됐다”고 밝혔다.
권 원내대표는 ③에 나온 의제들 중 청년 문제와 연금 이슈에 대해 두 당의 청년 조직(‘청년정의당’과 ‘안철수와 함께 하는 청년내각’)을 거론하며 “두 후보가 만나기 전에 사실 양당 원내대표 차원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논의가 됐었던 부분”이라고 전했다.
이어 “저희들이 보기에도 가장 빠르게 실천될 수 있는 과제가 아닐까 싶다”고 부연했다.
묘했던 것이 ②이다. 당초 안 후보가 선제적으로 제안했던 쌍특검이란 단어가 명시적으로 들어가진 않았다. 사실상 쌍특검을 통해 대장동 게이트와 고발사주 의혹을 빠르게 해소하자는 의미로 읽혀지긴 했지만 그 방법론으로 특검을 집어넣지는 않은 것이다. 결국 쌍특검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이 동의해야 가능하다. 그래서 두 후보가 굳이 공을 양당에 넘겨주며 또 다시 정국 주도권을 그들에게 쥐어주는 사태를 만들 필요는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양당 중 한 당만 반대하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이지도 않다.
이에 대해 배 원내대표는 “쌍특검과 관련해서는 이미 안철수 후보가 제안한 바가 있고 저희 정의당이 적극적으로 동의한다는 의사 표현을 한 바가 있다”면서 “현재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상설특검을 하되 상설특검에 있어서 특검 후보자 추천을 기득권 양당이 내려놓으라는 것이고 추천과 관련해서는 정의당과 국민의당이 추천위원회를 구성해서 추천하겠다는 것이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좋은 경쟁을 해보자는 대목이 포인트다.
합의된 정책 의제만 언급하지 않고 굳이 “선의의 경쟁”이란 표현을 넣은 것으로 보아 단일화 등 기타 정치적 연대 모색으로 확대 해석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은 국민들의 어려운 현실과 청년들의 불안한 미래에 답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두 후보는 기득권 양당 후보가 도덕성과 자질 논란으로 만든 진흙탕 선거에 함몰되지 않고 공적연금 개혁 기후위기 등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 대책과 같은 미래정책 의제를 놓고 선의의 경쟁을 하기로 한다.
특히 배 원내대표는 “최근 뉴스, 신문 보도, 시사프로 패널, 예능 등 기득권 양당 후보 중심의 심각한 편중 편성과 보도에 대해서 두 후보는 우려를 표하며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후보들에게도 공정한 기회가 주어질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환기했다.
언론인들 앞에서 대놓고 불만을 표출한 것인데 그만큼 두 당은 속이 탈 수밖에 없다.
두 후보의 다음 회동은 기약이 없다. 그나마 고무적이었던 것은 두 당이 정책 조직 차원에서 토론회를 공동 추진해보기로 한 점이다.
배 원내대표는 “(결선투표는 개헌 사항이 아니냐는 질문에) 구체적인 문제와 관련해서는 정치개혁 제도와 관련해서 양당 정책 단위에서 기획 토론회나 이런 것들을 추가적으로 추진해보기로 했다”고 알렸다.
1시간 넘게 찬 바닥에서 기다렸던 기자들은 당연히 두 후보간에 뭔가 이견이 있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에 대해 권 원내대표는 “이견은 없었고 두 후보가 편안한 분위기에서 말을 너무 많이 하셔가지고 저희들이 정리하느라 힘들었다”고 말했고 배 원내대표는 웃으면서 “두 원내대표가, 두 분이 워낙 말씀들을 생각보다 너무 편하게 많은 말씀들을 하셔서 사실 정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