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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의 “실패한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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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새로운물결 김동연 대표를 호명하기 이전부터 그에 대한 제3지대론자들의 기대감이 있었다. 김 대표는 작년 10월24일 신당을 창당하면서 스스로 “(안철수 후보든 심 후보든) 기득권 양당을 깨는 것에 생각을 같이 한다면 언제든 만나서 대화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김 후보는 6개월간의 대선 행보를 마감했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당선을 위해 “운동화끈을 묶겠다”고 선언했다. 명분은 이런 거다. 김 대표는 대선 출사표의 내용으로 ‘기득권 깨기’를 내세웠는데 최우선적 분야가 ‘정치판’이다. 정치개혁을 위해 △권력구조 개헌 △개헌국민회의 구성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국회의원 특권 폐지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 등을 공약했는데 이 후보가 이런 취지에 공감해서 ‘정치 교체를 위한 공동선언문’에 합의해줬기 때문이다.

 

사실 김 후보는 클리셰처럼 양당체제만 거세게 비판해왔지 처음부터 양당 후보로 흡수되지 않기 위한 제3지대 후보들과의 연대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소극적이었다. 김 후보는 “붕어빵틀”로 비유해서 양당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결국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경합우세 국면에서 이 후보 편을 들어줌으로써 양당체제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지금의 이 40년 동안 권력을 분점해온 이 기득권 카르텔 구조를 깨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거대 양당으로부터 (제안 받은) 총선, 서울시장, 대선, 총리직 다 거절하고 이 길을 택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나는 정치판을 붕어빵틀에 비유했다. 붕어빵틀에 아무리 좋은 밀가루 새 반죽 넣어봐야 나오는 건 붕어빵이다. 이 붕어빵틀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붕어빵 말고 다른 빵이 나올 게 없다. 이 틀을 깨는 것이 필요하다.

 

 

김 대표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2일 페이스북에서 아래와 같이 밝혔다.

 

지난 6개월 동안 대선의 한복판에서 정치 스타트업을 일궜다. 비록 오늘 후보직을 사퇴하지만 나와 지지자들이 함께 기득권 깨기를 20대 대선의 시대정신으로 규정하고, 정치교체를 대선판의 최우선 과제로 만든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 진정성과 실천의지에 대해 깊이 고민한 결과가 어제 발표한 공동선언문이었다. 선언의 내용을 실천에 옮기는 대장정을 다시 시작하겠다. 초심을 잃지 않고 뚜벅뚜벅 가겠다. 지지자들의 성원을 잊지 않겠다.

 

후보직을 내려놓고 새로운물결 당대표로서 정치 행보를 이어가겠다고 했지만 오직 이 후보의 당선을 위한 정치행위로만 해석될 수밖에 없다. 혹여라도 윤 후보가 당선되면 더더욱 김 대표의 결단이 무의미해지게 된다. 민주당은 이 후보의 당선 여부와는 무관하게 정치개혁 약속을 안 지킬 가능성이 높다.

 

정의당 이기중 관악구의원(서울)은 2월26일 페이스북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을 첨부하며) 국회 비례성 강화, 대선 결선투표, 재보궐선거 원인 제공 정당의 무공천 제도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모두 알다시피 지켜지지 않았다. 법으로 만들었다가 짓밟았고, 당규로 만들었다가 뒤집었다. 법도 당규도 소용이 없는데 당론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의총을 하든말든”이라고 환기했다.

 

 

무엇보다 정치개혁은 기득권 세력이 자발적으로 제도화를 약속한다고 해서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기득권 세력의 틈을 비집고 들어선 새로운 세력들이 정치개혁을 제도화로 완성해내는 것이다.

 

김수민 평론가는 1일 페이스북을 통해 “소수정당의 도전과 성장없이는 제도 변혁의 동력은 절대 생기지 않는다. 심상정은 다당제는 투표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 당위가 아니라 역사적 진실”이라며 “전면 소선거구제를 전면 비례제로 바꾼 나라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나마 민주당의 정치체제 변화 제안이나 국민의힘의 단일화용 공동정부론도 저들 살자고 내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행국의 정치개혁도 소수 또는 신진세력의 도전에 긴장한 거대 정당이 저 살자고 응해서 만든 것이다. 한국의 소수정당은 더 밀어붙여야 한다. 2002년, 2012년에 이어 양강 구도로 흐르던 이번 대선에서 어떤 거대 세력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고 완주한 정당만이 정치개혁을 이끌어낼 수 있다.

 

 

더구나 김 대표는 양당체제의 한 축인 민주당 세력과 보증없는 어음 약속을 받아놓고 “제도화”를 이뤄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정의당 싱크탱크 정의정책연구소 김병권 소장은 페이스북에서 단일화 공식과 사표론이 여전하다면서 “결국 김동연 대선 후보가 사퇴하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미니 단일화 수준이라도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줬다”며 “이재명 정부에서 다당제와 연합정치는 없을 것이다. 다당제 책임 연정, 통합정부는 3월9일 선거에서 이긴 승자의 선의나 시혜가 아니라 3월9일 투표장에서 유권자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투표하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근거가 뭘까? 소수 세력이 가져갈 표를 유력 후보에게 갖다바치라는 획일적 단일화 자체가 다당제적 민주주의와는 상극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는 다당제 연합정치를 하겠다면서 선거 때 되면 서로 합치고 누구를 눌러서 포기시키는 일이 부당하다면서 결선투표를 주장했다. 그가 정말 강력하게 다당제와 정치 다양성을 신념으로 가지고 있었다면 굳이 결선투표 제도 도입전이라도 포기시키는 행태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념을 간단히 깨버렸다. 단일화 논리는 철저히 반민주적 논리, 철처히 억압적 논리다. 단일화와 민주주의는 원래 양립할 수 없다. 특히 다양성을 살리는 다원적 민주주의와 단일화는 절대 양립할 수 없다. 단일화는 서로 다른 세력 사이에서 강한쪽 밑에 나머지들이 무릎을 꿇으라는 논리다. 그래서 강자가 주장하는 강요의 논리이고, 복종의 논리이고, 굴복의 논리다.

 

 

물론 극좌나 극우 세력 또는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가 아닌 이상 현실 정치세력에게 아무 성과없이 도전만 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그래서 제3지대론이 부상했었다. 비양당 세력들이 서로 연대하며 양당으로의 흡입력을 버텨내보라는 것이었다.

 

안병진 경희대 교수는 비양당 주자들이 제3지대 연대가 아닌 양당과의 단일화로 가는 것에 대해 오히려 정치적으로 “현실주의적이지 않다”고 평했다. 비양당 후보들은 정치적 입지와 존재감을 위해서라도 양당으로 흡수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심 후보는 김 대표의 단일화 선언 소식을 접하고 “오늘 김동연 후보께서 기득권 타파의 깃발을 올리신지 여섯달 정도만에 중도 포기를 하셨는데 참 안타깝다”면서 아래와 같이 입장을 냈다.

 

심상정이 인생을 걸고 22년 꾸준히 두드려도 아주 조금 흔들릴 정도로 양당체제의 벽은 견고하고 높다. 보통 각오로는 흠집도 못 낸다. 1번과 2번 중에서 덜 나쁜 사람 쪽에 줄 서는 정치로는 5년 내내 힘겨루기하는 대결 정치에서 한 발자국도 못 벗어난다. 양당 후보들은 선거 때마다 상대가 집권하면 나라 망한다며 공포를 조장해왔다. 그러나 완전히 망한 적도, 완전히 성공한 적도 없다. 그것이 정치의 현실이고 그래서 더욱 제도화된 다당제 책임연정의 통합정치가 필요하다. 발등에 불 떨어지니까 이제서야 양당 후보 공히 통합정부를 외치고 있다. 거대 양당의 선거 막바지 구호에 통합은 35년 단골메뉴였다. 그리고 35년 동안 반목했다. 우리 국민들께서 얼마나 더 속아주셔야 하는가. 나와 정의당이 실질적 정치개혁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질 때는, 서로서로 위성정당 만들어서 촛불을 배신하고 기득권을 챙기던 양당이 이제는 달콤한 구호만 가져다 선거에 활용하고 있다. 바로 이런 기만의 정치를 단호히 심판하고, 원칙을 지켜온 사람이 이기는 역사를 만들어주셔야 진짜 정치가 바뀐다. 통합정부 내세운다고 양당 후보를 찍어주면 그 즉시 양당 독점정치로 회귀할 뿐이다.

 

 

김 대표는 2월 중순부터 이 후보와의 결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당시 김 대표는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김 대표는 2018년 말 경제부총리를 관두고 전국을 순회하며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돕는 비영리법인 ‘유쾌한반란’을 결성했다. 김 대표는 유쾌한반란이 결국 “대선 출마를 위한 밑바닥 훑기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전혀 아니”라고 손사레를 쳤지만 결과적으로 거짓이었다. 이번에도 본인의 호언장담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 명분도 옹색했고 타이밍이나 형식도 구태의연한 기성 정치문법과 판박이였다.

 

내가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하면서 정치 스타트업이라고 했다. 스타트업이라는 것은 죽음의 계곡도 지나고 여러 난관을 거치지만 그중에 또 유니콘 기업도 나오는 것이다. 한 번도 중도에 포기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제3지대 후보들의 연대를 촉구하기 위해 결성된 ‘대선전환추진위원회’는 공식 논평을 내고 “(김 후보의 단일화 결정은) 그간의 선거 운동을 통해 확인한 아래로부터의 요구인지 아니면 정치인 김동연의 기득권 연장을 위한 개인적 선택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아래와 같이 비판했다.

 

민주당의 정치개혁안을 명분으로 삼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쌍특검을 상설특검으로만 받을 수 있다며 무산시킨 것 외에도 여러 면에서 보아 여전한 기득권 구태 정당임이 분명한데, 어찌 그들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김동연을 내각에 포함하면 통합정부인가?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통합정부였고 정치개혁은 이미 완료된 과제였단 말인가? 김동연 전 후보는 후보 등록일인 지난 14일 분명히 중도에 포기할 생각은 없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단일화를 제안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이해가 안 된다고 이야기한 자다. 김동연은 통합정부 운운하기 전에 자신이 내뱉은 발언부터 다시 되새기길 바란다.

 

대전추는 “반란은 실패했다”고  논평 제목을 지었다. 아래로부터의 반란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 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유쾌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 대표의 반란은 실패했고 유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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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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