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인터뷰] “나 말고 유명한 사람이 비례대표 2번 맡았다면...”

배너
배너

2년 10개월 동안 헌법재판소 앞에서 1인 시위하고 있는 이내훈씨
21대 총선에서 위성정당 사태로 원외정당이 된 민생당
울컥한 마음으로, 책임지는 마음으로 알바해가며 끝까지 1인 시위 하겠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2020년 4.15 총선에서 민생당은 원외정당이 됐다. 유명한 정치인들이 지역구로 출마해서 모조리 낙선했고 정당 득표율도 2.7%(75만8778표)에 불과해 봉쇄조항 3%의 문턱을 넘지 못 했다. 녹색당, 노동당, 미래당 등과 같이 원래부터 원외정당이었던 게 아니었던 만큼 3년이 지난 현재 민생당은 ‘자원의 역설’로 고통 받고 있는 개발도상국과 같은 상황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돈만 있고 언론과 시민사회의 감시가 없어서 엉망진창이 됐다.

 

 

민생당을 포기할 수 없는 이내훈씨는 총선 당시 비례대표 2번 순번을 배정 받았다.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라는 마음의 부채감이 그를 짓눌렀지만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3년 전 총선 정국에서 누구나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 사태를 비판했지만 내훈씨는 비판으로만 끝낼 수 없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 앞에서 2년 10개월간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미 총선 직전 민생당은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에 대한 선관위(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등록 승인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그 이후 3년이 흘렀지만 헌재는 묵묵부답이다. 물론 어떤 결론을 내릴지 자명하다. 비슷한 취지로 시민단체들(경실련과 참여연대 등)과 정의당도 헌법소원을 냈지만 헌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일찌감치 시민단체들이 낸 헌법소원에 대해 “비례용 위성정당 때문에 기본권을 침해당한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는 명분으로 각하했고, 정의당이 낸 건에 대해서는 최근 “정당을 창당하고자 하는 창당준비위원회가 정당법상의 요건을 갖춰 정당 등록을 신청하면 선관위는 반드시 수리해야 한다”는 근거를 들어 각하했다. 선관위가 양당의 위성정당 창당 등록을 받아줬을 때 형식적 요건만 심사할 뿐이라고 강변했던 논리와 판박이다. 그러나 내훈씨는 형식 요건의 측면에서만 보더라도 선관위가 불승인을 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훈씨는 지난 2월1일 15시 서울 종로구에 있는 헌법재판소 앞에서 평범한미디어와 만나 “선관위가 형식적 심사만 한다고 하는데 창당 회의록을 제출받게끔 돼 있다. 그러면 막말로 국가 전복을 위해 창당한다는 내용이 있으면 선관위에서 각하해야 하듯이 위성정당 문제도 마찬가지”라며 “그때 내부적으로도 (본정당과 위성정당이) 형제 정당이라고 했고 그런 것들이 회의록에 그대로 나와있다. (본정당 소속) 의원들을 (위성정당으로) 5~6명씩 파견해서 만들었는데 창당 회의록에 그 증거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당연히 헌법기관으로서 선관위가 등록해주지 않았어야 했던 건데 책임 회피적으로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패스트트랙 등을 거쳐 겨우 통과된 준연동형 캡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에는 각 정당이 △당원·대의원 등을 포함한 선거인단의 민주적 투표 절차를 거쳐 후보자를 추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을 뿐만이 아니라 △비례대표 후보자 추천 과정을 담은 회의록 등 관련 서류를 선관위에 제출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나아가 △선관위가 후보자 추천 서류를 검토해서 비례대표 추천 절차를 정한 내부 규약을 위반했을 경우 해당 정당에 대한 후보자 등록을 무효화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해놨다. 그러나 선관위와 헌재는 위성정당의 창당 배경과 비례대표 추천의 과정이 “형식적 요건에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버렸다.

 

 

그러나 내훈씨는 “(위성정당의 위법성에 대해) 온국민이 다 알고 있었고 선관위도 알고 있었다”고 일축했다. 정당 득표율 9.67%(269만7956표)로 비례대표 의석 5석을 할당 받은 정의당도 무시당했다. 이제 민생당 하나 남았다.

 

처음 3개월 동안에는 하루에 세 번 섰다. 아침, 점심, 저녁. 그 이후 6개월간은 하루에 한 번 매일 섰다. 너무 힘들었다. 6개월 이전부터는 1주일에 한 번 서고 있다. 2년 9개월째(2월 기준)다.

 

이렇게까지 오래 1인 시위를 이어오고 있는 이유에 대해 내훈씨는 “(나 때문에 민생당이 원외정당이 된 것만 같은) 억울한 마음이 컸다”며 “원래 나는 20번대였다. 2번 배정을 받아서 좋긴 했지만 (총선 직후) 어떤 생각을 했냐면 지금도 약간 울컥하는데 혹시 유명한 사람, 정당에서 선거 때만 되면 스펙 좋거나 유명한 사람에게 비례 앞순위를 주는데 그런 인물을 2번으로 배정했다면 당은 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좀 했었다...”고 고백했다.

 

물론 내가 비례대표를 신청하면서 했던 생각은 나도 나름대로 정당 생활을 열심히 했고 국민의당(2016~2018년) 때부터 오랫동안 대안정당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열심히 활동했고 누구보다 우리당을 사랑했기 때문에 후보로 나설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 자책감이 헌재 앞 1인 시위를 끈질기게 유지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고 그런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어보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던 점이 컸다. 그러나 내훈씨는 이내 위성정당 문제와 승자독식 선거제도라는 고질적인 한국 정치의 구조에 주목했다. 내훈씨가 회고해본 당시의 상황은 아래와 같다.

 

무엇보다 우리당이 이렇게 된 가장 큰 부분은 위성정당 등록을 선관위가 무책임하게 받아줬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군소정당(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을 참여시켰다. 사실 양당의 조직력이란 게 다른 군소정당들은 넘볼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위성정당에 참여시켜준다고 하니까 작은 정당들 사이에서 싸움(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이 참여한 ‘시민을위하여’와, 총선 직전까지 녹색당과 미래당 등이 선호했던 ‘정치개혁연합’간의 갈등)이 났다. 이런 게 과연 건강한 정당 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는가? 정당법상 정당은 책임있는 정치적 가치관이나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정치적 결사체인데 위성정당은 그런 게 전혀 없고 (거대 양당이) 비례 의석을 침탈하기 위한 목적 말고는 없다. (위성정당을 만든 양당은) 새로 바뀐 선거법의 취지에 동의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정하는 처사였고 양당 수임기구에서 정당 하나 더 만들어서 비례 의석을 먹겠다는 건데 그걸 (선관위가) 등록시킨 것이 너무 잘못됐다. 민생당도 (총선 막판 민주당이 만든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하는 문제로) 내부적으로 싸우고 갈등을 빚었다. 결국 참여하지 않기로 했는데 극심한 갈등이 있었던 탓에 뒤늦게 선거운동을 시작했고 결국 더 망했다.

 

궁극적으로 위성정당 사태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필요하다는 사명감이 발동했다. 실효적으로 볼 때 위성정당 소속 비례대표 출신들의 의원직을 이제와서 박탈할 수는 없고, 이미 두 위성정당은 본정당으로 흡수된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가 위성정당의 위헌 여부를 확실히 가려서 판결문을 남겨놓는 것의 의미는 지대하다.

 

민생당이 2.7%를 얻어서 안타깝기도 한데 다 떠나서 위성정당을 허용했던 것 자체가, 앞으로 선거제도 개혁이 어떻게 이뤄질지 모르겠고 연비제(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가든 중대선거구제로 가든 기성 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드는 걸 그대로 두면 유사 사례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군소정당들 말고도 정말 정치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된다. 가장 큰 피해자는 현학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사실 작은 정당들이 아니라 국민들이다. 그때도 위성정당의 위법성이 언론에서 많이 부각되지 못 하고 서로 적대적인 정치만 부추겨져서 선택권을 제한시켰다.

 

 

하지만 헌재는 ‘답정너’인 것 같다. 내훈씨는 “(헌재가 질질 끌 것이란 사실을) 어느정도 예상했다. 다음 총선 끝난 직후 판결이 나오겠다 싶었다”면서 “2024년 총선 끝나고 민생당이 만약 소멸되면 당사자성이 사라져서 각하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훈씨는 “헌법재판관들이 최소한의 양심을 갖고 권력과 기득권적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생당 구성원 중에서 그 역할을 가장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한다. 민생당 선거 지고 정신 못 차릴 때 취직을 해야겠다 싶어서 이력서도 넣고 그렇게 했었는데 1인 시위를 안 하고 나마저 목소리 내지 않고 민생당은 내분으로 흐지부지 되고 선관위도 헌재도 무시하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놔두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가슴 속 양심의 요구로) 누군가는 이런 걸 해야 되고 지금 목소리 내는 게 내가 적임자구나 싶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판결 나올 때까지 해보자는 마음이다.

 

근 3년간 1인 시위를 하며 힘들었던 점을 물었다. 물리적으로 힘든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게 따로 있었다.

 

굉장히 감사한 게 헌재 직원들이 우산도 씌워주신다. 아침마다 햇빛이 눈부시고 그러니까 1인 시위를 하는 시민들에게 배려를 해주는데... 사실 가장 답답한 것은 민생당이 정신 못 차리고 거의 한 3년 정도 됐는데 여전히 당 상황이 엉망이라는 점이다. 저희 당이 하루 빨리 정신을 차려야 위성정당 문제를 제대로 지적할 수 있고 정치개혁 논의가 이뤄지는 지금 논의 테이블에 참여해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민생당이 지금 너무 혼란스럽다. 안타깝다. 정상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총체적 난국의 민생당 문제 말고도 생활인으로서 힘든 점이 없는 게 아니었다.

 

사실 나도 3년간 중간에 알바하면서 버티면서 하고 있는 건데... 여의도 2시 청년이란 말이 있다. 나도 그게 가능했던 것이 프리랜서(만화가 겸 그래픽 디자이너)이기 때문이다. 밤새서 일하고 낮에 행사 뛰는 등 그렇게 거의 10년을 버텼다. 여의도에서 버티면서 출마도 하고. 근데 오랫동안 정치에 열중하다 보니 원래 본업인 그래픽 프리랜서 일을 못 하게 됐다. 그쪽 일이 거의 끊겼고 수입이 없다 보니 배달 라이더 같은 알바를 하며 겨우 버티고 있다.

 

한편, 내훈씨는 승자독식 거대 양당체제의 질서가 약화되는 방향으로 정치 질서가 바뀌어야 한다는 자기 확신을 설파했다. 20대 국회만 보더라도 21대 보단 훨씬 괜찮았다는 걸 직접 목도했기 때문이다.

 

지금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좀 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여전히 양당이 상호 적대적으로 정말 못 하고 있는 것과, 제3지대의 캐스팅보트(비양당 50~60석 가량)가 살아있었던 20대 국회의 상황이 지금 21대의 상황보다 더 나았다는 판단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바른미래당 소속이었는데 그때 실제로 바른미래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을 때 정치적 타협의 길이 열릴 수 있었다. 오히려 위성정당 만들어서 군소정당 다 없애버리고 양당 편향이 강해지니까 의석들을 다 먹었을지 몰라도 스스로의 관성이 견제되지 않아서 더 엉망이 됐다. 지금 선거제도 개혁이 논의되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 가더라도 누가 봐도 올바른 방향은 비례성 확대임이 틀림없다.

프로필 사진
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