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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다이 인생⑫] ‘덕업일치’ 이뤄낸 송희씨 “내가 홍보 분야에 뛰어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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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정의당 경남도당에서 활동했던 유송희씨는 광고 및 홍보 전문가다. 대학에서도 관련 학과를 전공했으며 정당 활동을 했을 때도 홍보파트를 담당했다. 여전히 홍보 분야에서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송희씨를 만났다. 돈을 벌어야 하는 직업의 분야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덕업일치’ 그걸 이뤄낸 것이 송희씨였다.

 

지난 10월11일 17시반 경남 창원 의창구 팔용동의 한 카페에서 송희씨를 만났다. 먼저 자연스럽게 최근 근황에 대해 물었다. 송희씨는 “현재 경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에 재학 중이고 다양한 일들을 병행하고 있다”고 입을 뗐다. 

 

송희씨는 지금은 폐업했지만 과거 ‘코튼체리’라고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했었다. 경남 청년 플랫폼 ‘경청 마이크’ 대표직도 맡은 바 있으며, 경남여성가족재단에서 청년 양성평등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학업과 사업. 딱 두 개만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송희씨는 정말 많은 일을 해내고 있었다. 관심 분야가 매우 넓다.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것 같았는데 가장 힘든 점이 뭘까? 송희씨는 에너지 소모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돈 문제도 있다.

 

학생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해야 되고 사업가로서의 역할, 시민사회 활동, 이전에는 정치 활동까지 했었다. 그러다 보니 하는 일이 워낙 많아 힘들었다.

 

투잡, 쓰리잡의 형태로 여러 일들을 동시에 하고 있는데 아무리 시간을 쪼개도 시간이 부족하다. 요즘 송희씨는 “공공사업 위주로 일을 하다 보니 금전적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라 조금 힘들다”고 토로했다.

 

스스로 원해서 시작하게 된 일들이지만 너무 정신없고 바쁠 때마다 송희씨는 ‘성취감’을 원동력삼아 극복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는 일을 안 하면 오히려 불안한 스타일이다. 달력을 보며 스케줄 관리도 철저히 한다. 바쁘게 이것 저것 일을 하다가 어느 순간 그동안 해온 일들을 돌아봤을 때 정말 많은 일을 했구나. 그런 게 느껴지면 정말 좋다. 내 스스로 성취감도 느끼지만, 주변 지인들이 나를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것 자체도 너무 좋다. 그런 점들이 모두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지나치게 바쁜 삶이 계속되다 보면 ‘번아웃 증후군’이 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송희씨는 꽤 많이 겪었다고 말했다.

 

번아웃이 진짜 많이 왔었다. 학교도 안 나간 적이 있다. 그때 학점에 구멍이 나서 채우고 있다. 아무래도 한 번 번아웃이 오면 그걸 회복하는 데 진짜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정상적으로 신뢰 관계를 회복하거나 일적으로 회복한다거나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이제 번아웃이 올 때면 차라리 일에서 좀 힘을 빼는 식으로 극복을 하고 있다.

 

 

독고다이 공통 질문으로 던진 인생 전성기에 대한 물음에 대해 송희씨는 “아직 어려서 전성기라고 부를 만한 게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전성기라는 표현이 좀 어색하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질문을 좀 변경해서 “내가 이걸 할 때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을까? 그렇게 물어봤다. 그러자 송희씨는 정의당 경남도당 홍보부장으로 일했던 기억을 소환했다.

 

나는 지난 총선(2020년) 때 정의당 경남도당에서 홍보부장으로 재직을 했다. 거기서 거의 내가 전권을 맡아서 홍보물 같은 것들을 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기획하면서 제작했는데 그때 당시에 정말 성과가 좋았다. 어떤 컨텐츠들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도 했고 보도가 되기도 했다. 그럴 때 엄청난 성취감을 느꼈다.

 

전성기에 이어 고독하고 외로울 때가 있는지? 그럴 땐 무엇을 하며 이겨내는지에 대한 공통 질문을 했을 때도 좀 어색함이 감돌았는데 송희씨는 “질문지를 보고 생각해봤지만 그런 감정을 진짜 안 느끼는 것 같다”면서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나는 일단 생각하는 것 자체가 되게 긍정적인 편이다. 자취를 하고 있지만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제일 친한 친구랑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외로움을 잘 느끼지 못 한다. 항상 주변에 사람이 있어서 고독하다는 감정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이끌어가고 있는 업체의 대표직을 맡을 때 드는 막중한 책임감 즉 ‘고독한 리더’와 같은 감정을 느낀 적은 있었다고 했다.

 

사업을 진행할 때 대표직이나 팀장 같이 작업을 전체적으로 봐야 하는 위치에 있다 보면 팀원들에게 시킬 수 없는 게 있다. 내가 혼자서 총괄을 해야 하다 보니 가끔씩은 외롭고 좀 쓸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송희씨는 정면돌파로 승부를 봤다. 어차피 나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기 때문에 골치 아픈 과제를 되려 더 빨리 끝내버리는 것이다. 

 

나는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있으면 그 일을 차라리 빨리 끝내버리려고 하는 스타일이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송희씨에게 나중에 이루고 싶은 목표나 바람 등 그런 것들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PR 분야 중에서 공공 PR을 좀 더 공부해서 전문성을 인정 받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정당 홍보 업무를 수행하며 느꼈던 성취감과 연결되는 대목인데, 공공 PR 전문성을 확실히 갖춰 해당 업계에서도 젊은 청년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다는 취지였다. 

 

나는 페이스북과 다른 SNS에 공공 PR 꿈나무라고 명시한다. 내가 시민사회나 정치 분야에 있으면서 느꼈던 게 인재풀이 그렇게 넓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면 청년들 중에서 정치 분야라든지 시민사회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많지가 않다. 과잉대표 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내가 성과를 내면서 마냥 좋기만 하진 않았다. 나는 그 정도의 실력이 안 되는데 뭔가 과잉대표 되고 과대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 점들 때문에 이 그룹 밖에서도 실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또 다시 정치나 시민사회 분야에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것 같다. 누구와 견줘도 뒤쳐지지 않는 실력을 갖추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제 개별 질문의 시간이다. 가장 궁금한 것은 인생에서 꼽을 정도로 행복했던 때가 정당 홍보 파트를 담당했을 때였는데 왜 탈당했던 걸까?

 

작년 12월 말에 탈당 신청서를 냈고 올초에 수리됐다. 사실 내가 안에 있으면서 어쩔 수 없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것을 느꼈다. 아까 말했던 것과 동일한 이유다. 나는 내 분야에서 전문성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너무 많은 직책을 맡아 감당했다.

 

 

송희씨는 공공 PR의 차원에서, 정당이든 시민사회든 노동조합이든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구체적으로 강렬한 계기가 있었다.

 

노동절 집회 때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전체 그림을 담기 위해 군중에서) 한 발 물러나 있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주변을 지나가고 있던 시민들이 갑자기 귀를 막았다. 그래도 창원에서 상남동이면 꽤 번화가이고 노동절에 집회를 꽤 했었고 젊은 청년들이 많이 있음에도 다들 귀를 막더라. (단순히 소음 공해로만 취급된 건데) 그래서 뭐지? 그런 생각을 했는데 우리 집회 바로 뒤에 바짝 붙어서 태극기부대의 집회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태극기 집회가 지나갈 때도 시민들은 똑같이 인상을 쓰면서 귀를 막았다. 똑같은 취급을 받은 거다. 나는 시민사회 분야에서 내고 있는 그런 메시지들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가치있고 누군가는 내야 하는 메시지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을 전달하는 어떤 채널이라든가 방식에 대해서는 좀 의아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당과 시민사회 등이 구사하는 공공 PR이 투박하다는 현실에) 매너리즘에만 빠질 것이 아니라 좀 더 전문성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그래서 탈당을 하게 된 것 같다.

 

내부자가 아닌 외부자로서, 정의당이나 기타 공공 PR의 여러 방식들을 지켜보니 좀 더 잘 보였다고 한다. 시야가 넓어졌고 문제점과 솔루션을 찾는 데에도 효과적이었다.

 

실제로 탈당을 한 이후에 내가 철저히 외부인의 시각에서 그들의 홍보 활동이라든가 메시지 전달 방식을 보니까 (아 외부인들은 이런 문제점들을 느꼈겠구나) 와닿는 바가 더 컸다. 교류하는 집단도 이전에는 같은 정당에 있던 청년들이 전부였다면 이제는 같이 대학교를 다니는 친구들, 또 다른 여러가지 활동을 하는 친구들도 함께 보다 보니까 그런 (평범한) 친구들의 시각에서 좀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그래서 조금 더 효과적인 전달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이 느끼게 됐던 것 같다.

 

사실 송희씨는 정치사회 문제에 무관심했다.

 

정당 활동을 한다고 그러면 주변에서 되게 특이하다고 많이들 그런다. 그러나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처음 입당할 때 여영국 전 대표가 누군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정말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창원대에 심상정 의원께서 강연을 온다고 해서 한 번 가볼까? 딱 그 정도의 생각으로 친구랑 갔다. 거기에서 심 의원은 어떤 정당이든 상관없으니 정당 활동을 해보라고 말씀했고 시민의 당연한 권리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정치에 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정의당에 가입했다.

 

 

그런데 정알못인 송희씨에게 홍보 관련 너무 큰 역할들이 주어지다 보니 PR 전문가들이 그렇게 없는 건가? 그런 인상을 갖게 될 수밖에 없었다.

 

아까 말했듯이 홍보를 포함한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적다 보니 입당을 하자마자 임무가 주어졌다. 보궐선거(2019년 4월3일 창원 성산)라고 하는 엄청난 빅 이벤트의 실무자가 되어버렸다. 그런 일에 참여하다 보니 정치에 훅 들어간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대단한 능력이 있지도 않고 되게 특별하게 뚜렷한 신념을 가지거나 한 게 아닌데도 되게 많은 기회를 얻고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덕업일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웹디자인을 통한 광고와 홍보 경력, 나아가 PR 자체에 대한 학구열이 엿보였다. 단도직입적으로 이 분야에 대한 만족도를 물었다. 송희씨는 “매우 만족한다”고 말했다.

 

광고와 홍보 분야가 너무 좋고 재밌다. 얼마 전 부산국제광고제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3일 동안 유료 컨퍼런스가 진행됐다. 사실 이러한 컨퍼런스를 돈 주고 굳이 듣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통 학교나 기업에서 가는 컨퍼런스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그런 지원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비를 썼다. 정말 비쌌는데 들었다. 그걸 듣는 동안 3일 내내 앞자리에 앉아 모든 세션을 다 들었다.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들었는데 너무 좋았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너무 설렜다. 이게 안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물론 우연이었다. 광고와 홍보 분야를 접하게 된 것 자체는 점수 맞춰 대학에 입학하게 된 뒤였다.

 

처음 대학에 입학할 때 이 학과를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의례 남들이 하던 대로 성적에 적당히 맞춰 입학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꿈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당시 광고 파트를 담당하던 교수님이 되게 특이하셨다. 본인에게 반말을 쓰라 그랬고 머리를 핑크색으로 염색하고 싶다고 말했다. 40대 남성이었는데 상당히 독특한 분이었다. 그 교수님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유도 전혀 없이 그 교수님이 너무 멋있어서 앞으로 광고 분야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생각보다 간단한 선택이었는데 지금까지 왔다.

 

교수님에 대한 선망은 일종의 시작점이었을 뿐이고, 결정적이었던 것은 사회적 기업 한 곳을 정해 PR해보는 과제를 수행했던 경험이었다.

 

2학년 1학기 때 PR론이라고 하는 우리 학과에서 핵심적인 수업을 들었다. 수업을 설명하자면 사회적 기업 하나를 선택해서 한 학기 동안 그 기업을 PR하는 일이다. 그래서 홍보할 기업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고 학기 마지막에는 그 기업을 어떻게 하면 PR할 수 있을지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한다. 나는 그 당시 문화도시 창원을 주제로 과제를 진행했다. 그런데 담당 교수님에게 너무 못 했다는 혹평을 들었다. 너무 충격적이라 오히려 더 오기가 생겼다. 교수님의 평가가 틀렸다는 걸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이 되게 싫어할 만한 주제를 다시 찾아가지고 선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희씨가 선택한 곳은 ‘의료용 대마 합법화 운동본부’라는 단체였다.

 

페이스북에서 ‘의료용 대마 합법화 운동본부’라는 시민단체가 눈에 딱 들어왔다. 사실 자세한 것은 잘 모르고 대마라는 단어에 꽂혔다. 내가 이걸 발표하면 교수님이 정말 당황하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단체에 전화를 걸어 이곳을 PR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이 단체의 취지는 CBD 오일이라고 부르는 대마종자유 수입을 합법화해서 뇌전증이라던지 파킨스병 환자들의 치료를 돕자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의료용으로만 국한시켜서 일부분 대마를 합법화하자는 것이다. 마약성 진통제가 있는데 엄청난 통증을 감내해야 하는 난치병 환자들에게 꼭 필요하다. 현재 법률 개정에 따라 일부 의료용 대마는 합법이다. 하지만 송희씨가 PR을 하던 당시에는 일괄적으로 불법이었다.

 

잘 모르고 했지만 조사를 하다 보니 정말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것을 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조금씩 절실해졌다. 이 의료용 대마가 없어 힘들어하는 환자들과 환자의 가족들을 접하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컨텐츠로 제작했다. 처음에 약간 진심 반 장난 반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였지만 계속해서 조사를 하다 보니 절심함도 느꼈고 잘 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학기가 끝날 때쯤 학교에서 노숙까지 불사해가며 기획서를 계속 뜯어고쳤다. 진짜 울고 웃으면서 작업했다.

 

열정을 불태워가며 만들어낸 작업의 결과물은 어땠을까?

 

마지막에 이제 프리젠테이션을 했는데 그때 나는 30분 밖에 자지 못 했었다. 결과적으로 잘 하지 못 했고 되게 망쳤다. 그런데 서울에서 단체 관계자께서 오셔서 내가 만든 카드뉴스를 통해서 언론 인터뷰가 들어왔다고 했다. 정말 가시적인 성과를 얻고 있다고 했는데 학생들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때부터 시민단체 PR, 공공 PR에 대해 가치를 느끼고 이 분야에서 힘쓰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계속 관련 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사업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의 주제를 끌고가봤다. 구체적으로 코튼체리에서 뭘 했고 고충 같은 것은 없었는지 물었다.

 

행사를 진행할 때 필요한 포스터라든가 카드뉴스 제작을 위주로 했다. 현수막 같은 것도 많이 만들었다. 그런데 이게 프리랜서로 일을 받을 때랑 사업으로 일을 할 때는 정말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현실적으로 돈이 들어간다. 사무실을 차리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거기서 관리비와 월세가 나간다. 생활비로 쓸 돈도 필요하다. 이외에도 기타 이것저것 잡다한 비용이 정말 많이 발생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되려 돈을 모으지 못 한 것 같다. 사업체를 차려 일을 하게 되면 제일 중요한 것은 신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데드라인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내가 너무 바쁘고 힘들어도 의뢰를 받은 일은 데드라인 안에 반드시 끝내야 한다. 그래서 잠도 못 자고 작업을 했던 것 같다.

 

특강도 많이 나갔다. 

 

특강을 했었다. 포토샵, 디자인 특강을 주로 했다. 우리가 되게 키치한 감성의 디자인 스튜디오다 보니 귀여운 일러스트레이션, 요즘 유행하는 공예 같은 것도 많이 했다. 이러한 것들을 친구와 배워서 부업 느낌으로 공연 같은 것을 다니기도 했다.

 

 

코튼체리를 계속 유지해도 될 만큼 꽤 잘 됐던 것 같은데 별안간 왜 폐업을 한 걸까?

 

사업을 연속성 있게 좀 이어갔어도 상관이 없는 부분이긴 하다. 사무실 계약 기간이 내년 1월까지 남은 시점에서 같이 하는 친구와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봤다. 나는 뭔가 경험적으로 챙길 수 있는 것은 많이 챙겼다고 생각이 들었다. 또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다음 단계로 가보고 싶었다. 나는 실제로 PR 에이전시나 광고 에이전시에 가서도 되게 잘 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라면 결자해지하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 폐업을 결정하게 됐다.

 

일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본인의 성장을 위한 결단이었다. 그런데 대학생 신분으로 창업을 감행한 계기도 궁금했다. 송희씨는 “그렇게 크게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서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나는 생각을 엄청 많이 하고 행동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런 스타일이다 보니 크게 생각을 안 했다. 내가 그때 레트로하고 키치한 디자인과 일러스트 문구류에 되게 꽂혀 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거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다. 총선 이후 정의당을 그만두고 쉬면서 일감을 찾고 있을 때 일러스트레이터인 절친한 친구와 우리 이거 한 번 해볼까? 그렇게 사업을 시작했다. 스타트업은 실패하더라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도전했다.

 

그렇다면 다시 사업을 시작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송희씨는 “왜 사람들이 회사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는지 이해가 된다. 자율성이 크고 하는 만큼 돌아오는 게 사업이다. 이제 그런 것은 충분히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추후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그럴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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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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