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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다이 인생⑦] 우울감 극복한 하성씨 "몸 움직여야 행복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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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박효영 기자와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터뷰 대상으로 추천을 받았다. 독고다이 인생 기획 인터뷰 일곱 번째 주인공은 1990년생 임하성씨다.

 

하성씨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당사자로서 청소년 운동에 참여했다.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을 만났다. 박 기자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하성씨 덕분에 사회과학적 사고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약 한 달 전 3월17일 15시 광주 북구에 위치한 평범한미디어 사무실에서 하성씨를 만났다. 먼저 늘 해왔던대로 현재 주로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물어봤다. 하성씨는 “대학생이다. 서영대학교 물리치료학과를 다니고 있으며 현재 3년째”라고 답했다. 원래 조선대 프랑스어과를 다니고 있었지만 중퇴 후 다른 학교로 편입했다. 하성씨는 주짓수 등 체육활동에 관심이 많아 연계해서 물리치료를 공부하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 나이로 올해 서른셋. 늦은 나이에 대학을 다니면서 힘든 점은 없을까? 하성씨는 딱히 힘든 게 없다고 말했다.

 

힘든 점은 딱히 없다. 솔직히 경제 사정이 그리 어렵지도 않다. 나는 예전에는 부정적이었으나 지금은 긍정적인 마인드로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을 많이 못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만족한다. 나는 지금 다니는 대학까지 포함해 총 세 번을 다녔다. 예전에는 좀 만족스럽지 못 한 게 있었으나 지금은 만족스럽다.

 

 

하성씨는 왜 학교를 세 번이나 옮겼을까? 만족감을 느낀다고 하니 뭔가 자아실현 등을 위해서라고 말할 것 같았다. 우선 하성씨가 학벌주의적 대학 시스템에 회의감을 갖게 된 것부터 들어보자.

 

처음에 대학교를 입학할 때는 남들도 다 가니까. 그런 생각으로 별생각 없이 갔다.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1학년 때 바로 휴학을 했다. 한 학기를 다녀보고 이 시스템은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휴학을 하고 자퇴를 하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소신있고 주관이 뚜렷한 하성씨다웠다. 정말 공감이 갔다. 대한민국은 대학 진학률이 80%가 넘는다. 거의 "개나소나" 대학에 간다. 그러니 은연중에 다들 적성과 필요를 떠나 대학은 당연히 가야 되는 곳으로 여겨진다. 거의 의무교육 수준이다. 그런데 하성씨는 이러한 통념에 의문을 품었다. 그래서 대학을 다니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부모님의 반대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그러나 부모님이 반대했다. 알고있다시피 스무살은 나이만 성인이지 제대로 독립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아직은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는 나이다. 그때 등록금이 입학금까지 포함해서 무려 350만원이었다. 내가 다니지 않겠다고 하면 그 돈을 아끼는 것이라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나와 생각이 달랐다. 그분들은 내가 대학교 졸업장을 받는 것을 희망했다. 그래서 자퇴를 반대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학교는 별로 다니고 싶지 않아 잘 안 나갔다.

 

 

독고다이 인터뷰는 인생을 살아가며 겪게 될 고통에 대한 대처, 태도, 관점 등을 듣는 것이 킬링포인트다. 하성씨는 힘들 때 무엇으로 극복해냈을까? 그 원동력은 뭘까?

 

하성씨는 "스트레스 자체는 어떻게 한다고 풀리는 것 같지는 않다. 굳이 말한다면 운동을 많이 해서 풀려고 한다. 원래 여행을 정말 좋아해서 코로나 시국 전에는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었다”고 말했다.

 

운동과 여행. 비범한 하성씨의 평범한 답변이었다.

 

하성씨는 주로 혼자 여행을 다니고 계획을 딱히 세우지 않고 발길이 닿는대로 자유로운 여행을 다니는 걸 추구한다고 했다. 여행의 방식이란 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런 건 없겠지만 패키지 여행처럼 스케줄이 꽉 짜여진 여행은 뭔가 '여행'이라기 보다는 '관광'에 더 가까운 것 같다.

 

하성씨는 운동을 즐겨 한다고 했는데 무슨 운동일까? 질문해보니 주짓수를 취미로 즐겨 한다고 했다. 주짓수는 상대방의 관절을 꺾거나 쵸크로 목을 압박하여 항복을 받아내면 이기는 무술이자 스포츠다. 유튜브에서 '암바'라는 기술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암바가 주짓수의 대표적인 기술 중 하나다.

 

그냥 무술 같은 것에 관심이 있어서 유튜브도 찾아보고 했었다. 몸으로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주짓수에 매력을 느꼈다. 꼭 주짓수가 아니어도 된다. 어떤 운동이든 상관없다. 예전에 사람을 만나면 이거 하면 좋다. 저거 하면 좋다. 주짓수는 도복이 예쁘다 등등. 이렇게 말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무슨 운동이든 간에 일단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강도나 빈도의 정도를 떠나서 하루 30분 걷기 운동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다이어트는 지상 최대의 과제다. 현대인들은 늘 비만과 운동 부족에 시달린다. 사실 너무 뜨끔했다. 이제부터라도 운동을 꾸준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다음 질문을 이어나갔다.

 

하성씨에게 아수나로는 어떤 의미였을까. 어깨에 무거운 짐들을 올려놓고 사는 청소년이었을 때 아수나로를 만났는데, 하성씨는 정치와 사회 등 전반적으로 관심이 많아 입시공부를 하는 바쁜 와중에도 박노자 작가의 책을 포함 무수한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다. 이런 하성씨에게 학창시절은 어떤 시간이며 어떤 의미일까? 먼저 하성씨는 그 당시 교육제도와 기성세대에 대해 품었었던 감정을 풀어냈다.

 

그 당시 학교나 교육제도에 불만이 많았다.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도 있었다. 지금은 586이라고 하지만 내가 학창시절에는 소위 486세대라고 불렸다. 이런 기성세대, 기성 정치인들을 거의 혐오했다. 그래서 현재 20대들이 기성 정치인을 싫어하는 정서를 이해한다. 그 당시에 나는 정말 냉소적이고 불만도 많았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이 어디서 오는지 계속 고민했다. 입시공부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정말 많이 했다. 집안에서 나에게 거는 기대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기대가 좀 부담스러웠나 보다. 그런 상황에서 복합적인 요소로 우울증이 좀 왔었다.

 

이 타이밍에 하성씨는 무언가에 홀린듯 적합한 청소년단체를 찾고 또 찾았다.

 

공허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던 찰나 청소년 단체 같은 것들 많이 찾기 시작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무렵 아수나로를 비롯하여 흥사단, YMCA, 1318 바이러스 등 청소년 관련 단체들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그런 데에 접근을 많이 했다. 후원도 처음으로 3000원, 5000원씩 해보고 연락도 해보고 모임도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청소년 단체는 그런 개별적인 모임은 없었다. 관변단체도 많다. 정부 혹은 어떤 조직에서 지원을 받는 이 관변 청소년 단체는 청소년을 그저 행사에 동원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아수나로는 자발적으로 모이는 느낌이 강했다. 소위 말하는 약간 번개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그 당시 두발 규제라든지 입시제도에 관해 논했다.

 

 

주제를 정해 모이는 모임이 가장 활발한 곳이 아수나로였다. 하성씨는 아수나로를 선택했던 이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예를 들어 광주에서 이러한 모임을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모인다. 개중에는 정치적인 활동 내지, 정치적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두발 규제에 문제 제기를 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이 모일 수 있다. 그런 주도적인 모임 단위를 펼칠 수 있는 곳이 아수나로 밖에 없었다. 흥사단이나 YMCA 같은 단체는 뭔가 어른들이 판을 깔아 줘야하는 성격이 강한 것 같았다.

 

하성씨는 확실히 주도적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청소년 단체도 그저 행사나 시위에 청소년을 앞세우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이 주도적으로 조직하고 능동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1인 시위도 하고 다녔다. 시기적으로 노무현 정부가 끝나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는 시기였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학생 인권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였다. 그래서 인권위가 할 일이 되게 많았다. 그때 피켓팅도 하는 등 정말 많은 활동을 했다. 노무현 정부 때 유달리 대추리 시위, 미군 군사기지 이전 문제, 한미 FTA 등의 굵직한 이슈들이 많았다. 내가 이렇게 시위를 하고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이런 것들의 영향도 없지 않았다.

 

사회에 관심이 많았지만 선뜻 청소년 활동을 해보지 못 했던 본지 기자는 하성씨가 부러웠다. 하성씨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 하는 나를 위로하며 "그냥 내키는대로 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데 이런 하성씨는 대학교 전공 선택도 그렇고 성인이 된 이후로는 의외로 매우 평범한 생활을 한 것처럼 보였다. 사회과학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원을 가거나, 시민사회 활동을 하거나, 소수정당에 들어가거나 그런 걸 하고 싶지는 않았을까? 역시 하성씨는 지속적으로 정치활동을 하고 있었다. 첫 정당은 녹색당이었다.

 

소수정당에 들어갔었다. 녹색당 당원이었다. 특별당비도 냈다. 2012년 총선 당시 녹색당이 창당되고 지구당이 만들어졌다. 그때 나는 군인이었는데 내 군인 계좌에서 다달이 당비가 빠져나갔다. 그랬더니 우리 부대 행보관이 놀라서 나를 불러 계좌의 돈을 잘 확인하라고 했다. 녹색당 당원이었을 당시 캠페인에도 참여하고 나름 이런저런 활동을 많이 했다.

 

그런데 하성씨는 녹색당을 작년에 탈당했다고 했다. 조심스럽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진보정당에 회의적인 생각을 많이 가졌다. 그렇다고 해서 진보정당 자체가 없어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지금 조직이 구성되고 굴러가는 것이 많이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연유로 지난 총선에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게 정말 아쉽다. 정의당을 중심으로 해서 소수정당들이 조금씩 조직을 구성해 나가는 데 발판으로 삼았어야 했다.

 

 

진보정당에 대한 깊은 실망감은 유력 정당으로 들어가서 변화를 도모하는 경로를 탐색하게 했다. 하성씨는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벌어진 진보정당들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보며 좀 많이 지쳤다. 좀 놀라운 사실인데 사실 난 민주당 권리당원이다. 당시 이재명 후보를 경선 때 찍기 위해 권리당원이 되었다. 그리고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때 탈당하려고 했다. 이후 민주당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려고 했다. 쉽게 이야기하면 약간 깽판을 칠 생각으로 민주당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청년 조직이 부재하다. 반면에 정의당, 녹색당 이런 당들은 청년이 들어가서 뭐 합시다. 이러면 듣는 척이라도 한다. 지구당이나 당 사무실 가면 일하는 청년도 있다. 청년들이 어떤 뭔가를 담당해서 하는 일들이 있긴 하지만 광주에서 민주당으로 들어가는 게 더 의미가 클 거라고 생각했다.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컷던 것은 정의당이 광주에서 할 수 있는게 되게 많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보정당의 맏형 정의당에 대한 불만이 컸는데 계속 들어보자.

 

나는 지난 지방선거 때 정의당에게 희망을 많이 느꼈다. 나경채 후보가 2위를 했고 국민의힘은 명함도 못 내밀었다. 정의당이 대안 야당이 되어 민주당의 잃는 표들을 받아내고 그 가운데서 다당체제가 확립이 된 다음 국민의힘이 극우적인 스탠스를 버린다든지 아니면 아예 그쪽으로 가버리든지 해서 경쟁들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정의당의 실책이 큰 거 같다. 지역 현안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이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나에게 개인적으로 컸던 것은 교육 정책에 관한 언급이 없었다는 것이다. 정의당에는 (물의를 일으켜서 근신중이지만) 청소년 운동을 했던 강민진 전 청년정의당 대표도 있었는데 왜 교육에 관한 언급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정의당과 민주당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어쨌든 민주당은 청년 조직이 없다. 해봤자 대학교 학생회에서 끌어다 쓰는 학생회 대표들 뿐이다. 역설적으로 대학교 학생회를 하는 친구들은 학생들의 민심을 대변하지 못 한다. 그렇게 청년들을 데려다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하성씨는 녹색당에 몸담았다가 민주당으로 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당 활동 말고 시민사회 활동을 한 적은 없었을까? 하성씨는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에 잠깐 몸담은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너무 힘들었다고 소회를 드러냈다. 평범한미디어에서도 언급된 남구 예비후보 박고형준씨 대표로 있던 시민단체다.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에서  6~7개월 동안 일을 했었다. 그때 우울감이 왔다. 나는 시민단체 활동가의 처우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청년세대가 그 일을 한다고 하면 많은 지원을 해줘야 한다. 나는 그때 힘들고 외로웠다. 일을 그만둘 때도 뛰쳐 나오다시피 했다. 그래서 관계자들에게 사과도 했다.

 

 

다시 하성씨의 인생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하성씨는 언제를 본인의 전성기라고 생각할까?

 

전성기는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기분상으로는 이제 막 대학교에 들어간 것 같다. 지금이 스물 두살, 스물 세살 같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아까 말했다시피 난 냉소적이다. 엄밀히 말하면 냉소적인 구조주의자였던 것 같다. 인생은 특별할 게 없고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구조 안에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국 그 구조 안에 파묻혀서 원하는 대로 살지 못 할 거라고 생각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운동이 긍정적인 작용을 일으켰다.

 

그런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지만 운동을 하며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인간이라는 것이 사회적 압박,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냉소적인 태도로 우울하게 있다고 해서 인생에 그다지 도움은 안 되는 것 같다.

 

계속 우울하다고 묘사하고 있는데 하성씨는 우울, 외로움, 쓸쓸함의 감정을 얼마나 자주 느끼는 걸까? 그렇다면 그 감정을 무얼 하며 이겨낼까? 또 다시 운동의 마법이 나왔다.

 

운동을 하며 이겨낸다. 상담도 받아보았으나 개인적으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몸을 공부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행복하니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다. 움직여야 행복해질 수 있다. 인간의 설계 자체가 움직여야 행복해지는 구조 같다.

 

 

마지막으로 하성씨에게 궁극적인 인생 목표가 있는지 물어봤다.

 

최종적으로 뭐가 되어야겠다. 이런 것은 딱히 없다. 일단은 물리치료를 전공하고 있으니 직업적으로는 당연히 물리치료사가 될 거 같다. 운동에 관심이 많으니 스포츠쪽 물리치료사가 될 거 같다. 정치적인 활동도 할 수 있으면 모임 같은 걸 만들어서라도 할 것 같다. 직업 정치인을 할지 안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간에 정치에 관심을 계속 둘 수밖에 없다. 정치는 운동 같은 거다. 일상생활과 너무 밀접하기 때문이다. 언론이라든지 정당이라든지 우리 진영이 상대 진영보다 더 좋다고 설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가 시민의 일상과 연관이 깊다는 것을 알려주는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투표도 왜 투표를 해야 하는지 유권자들에게 친절하고 심도있게 설명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근데 그렇게 하는 곳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점 때문에 정치에 계속 관심을 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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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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