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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다이 인생⑨] 고민하는 정경일 변호사 "나쁜 사람 도와주는 꼴 되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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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좋은 사람은 과학 기술 개발에 힘써야
변호사가 머리 좋아봤자 법 지식을 이용해 약은 짓이나 한다.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드디어 정경일 변호사(법무법인 엘엔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실 정 변호사는 평범한미디어와 인연이 깊다. 평범한미디어는 수많은 취재 분야들 중에서 음주운전 문제를 중대하게 보고 피해자들의 입장에 서서 취재를 해왔는데 그 과정에서 정 변호사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변호사는 벌 받을 가능성이 높은 가해자를 변호해야 돈을 많이 번다. 그러나 정 변호사는 돈이 되지 않는 음주운전 피해자들의 권익 옹호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런 정 변호사는 언제나 귀찮은 기색없이 평범한미디어의 취재 질문에 성심성의껏 설명을 해줬다. 기사를 작성할 때도 자문을 많이 구했다. 음주운전 근절을 위해 입법 운동에 나섰을 때도 정 변호사는 평범한미디어 그리고 음주운전 피해자들 곁에 있었다. 평범한미디어가 음주운전 취재에 진정성이 있다고 보고 로펌 차원에서 광고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정 변호사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 변호사의 인생을 조명해보고 싶었다. 독고다이 인생 기획 인터뷰 아홉 번째 주인공은 <그것이 알고싶다>를 비롯 수많은 방송에서 교통사고 전문 법조인으로 출연하고 있는 정 변호사다. 정 변호사의 스토리를 충실히 전달하려다 보니 스크롤이 꽤 길어졌다. 맘을 먹고 정독해줬으면 좋겠다. 

 

한 달 전(4월10일 17시반)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정 변호사의 로펌 사무실로 갔다.

 

알고 있지만 정식으로 지금 하고 있는 본업에 대해 물었다.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를 하고 있다. 특히 피해자들을 많이 변호해주고 있는데 보험사로부터 보험금이나 피해액을 받는데 어려워 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분들을 위해 민사소송을 대신 진행해준다. 이외에도 변호사로서 여러가지 일들을 한다.

 

특별히 교통사고 문제를 전문 분야로 삼게 된 계기가 있었을까? 딱히 이 분야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변호사들 중에는 분야 가리지 않고 이것 저것 하시는 분들이 많다. 나 같은 경우 이 분야를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하다 보니까 이쪽을 많이 다루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다른 것은 자연스럽게 하기가 어려워졌다.

 

 

교통사고 사건을 주로 취급하는 변호사로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일까.

 

내가 하는 역할은 피해자들이 합당한 보상금을 받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게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 가장 힘든 것 같다. 어떤 의뢰인들과는 의사소통이 잘 안 될 때가 있다. 그리고 이건 의학적인 부분인데 소송 과정에서 부상 부분에 대한 금액 산정을 할 때도 어려움이 있다. 결국 의뢰인들의 눈높이를 맞춰주지 못 하는게 마음 아프다. 열심히 해서 결과까지 좋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썩 좋지 못 하면 정말 힘들다. 예를 들어 보상금을 한 1억원을 받아야 될 것을 겨우 5000만원이나 4000만원 정도 받는다면 얼마나 어이없겠는가?

 

정 변호사는 항상 피해자들의 편이다. 교통사고 피해자들이 합리적인 보상금을 받지 못 할 때 가장 가슴 아프다고 말하는 그다. 중요한 것은 피해자들이 받아야 할 적절한 합의금과 보상금이다. 그런데 합리적인 금액을 산정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

 

이런 어려움들은 내가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고충을 이야기하자면) 그 당시 환자의 몸 상태를 내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또 의사의 감정 결과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다. 누가 옳고 그른가의 문제는 아니다. 사실 의사 감정도 과실 비율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과실 비율이라는 것은 누구는 60%를 보고 누구는 70%, 80% 이렇게 볼 수 있다. 거기에 판사님 주관까지 개입되어 버린다면 정말 복잡해진다. 물론 대부분 보험사가 제시한 금액보다는 보상금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10건 중에 1~2건은 만족스럽지 못 한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그 1~2개나 너무 신경쓰인다. 어찌 보면 나에게는 수많은 의뢰들 중 한 두 건이지만 그분들에게는 그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능한 변호사라고 해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항상 만족스러운 결과를 낼 수는 없다. 그리고 사건의 주체들(검사/판사/변호사/의사/보험사/피해자/가해자)도 저마다 생각하는 것과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사건을 일사천리로 처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 변호사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궁금했다. 정 변호사는 특유의 "무신경함"과 "긍정적인 마인드"를 이야기했다.

 

딱히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원동력이라든가 스트레스를 푸는 별도의 방법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냥 내가 성격이 무던한 편이다. 또한 마인드도 긍정적이다. 다른 사람들은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스트레스를 덜 받는 편이다. 변호사 일을 하는데 이러한 긍정적인 마인드가 많은 도움이 된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위해 "착한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꽤 많다. 노골적인 진실만 말해주게 되면 의뢰인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변호사는 머리만 쓰는 직업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 대해 의뢰인에게 알려줘야 하지만 불가피하게 100% 못 알려줄 때가 있다. 물론 의뢰인에게는 안심시키기 위해 “잘 진행하고 있다”거나 “걱정하지 마시라”와 같은 착한 거짓말을 가끔씩 한다. 이럴 때 좀 회의감을 느낀다.

 

 

워낙 정직한 성격이라 의도가 좋든 나쁘든 거짓말을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상황을 알려줘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찮다. 10개 중에 1~2개가 그런 껄끄러운 것이 있지 나머지 8~9개는 좋다. 그래서 버틸 수 있다. 안 그러면 못 버틴다. 하는 말마다 다 거짓말이라면 사기꾼하고 뭐가 다른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정신승리라는 말이 있다. 주로 비하적인 의미로 쓰이는데 나는 그것이라도 하는 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쯤에서 어린이 장래희망 도서에 나올 법한 질문을 던져봤다. 정 변호사가 법조계로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서울시립대 건축학과를 다니다가 법대로 옮겼다. 처음에는 반드시 법대를 가야겠다고 계획하지는 않았다. 문이과를 선택할 때도 뚜렷한 목표는 없었다. 그저 남들 하는대로 국어 잘 하면 문과, 수학 잘 하면 이과. 딱 이 정도 생각을 가지고 선택을 했다. 나는 수학이 자신 있었기 때문에 고등학생 때는 이과였다. 그래서 대학교도 서울시립대 건축학과를 다니게 되었다. 사실 거의 성적에 맞춰서 왔다. 그리고 학교 보다도 서울에 한 번 와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건축가가 될 뻔했던 정 변호사는 건축 관련 기술고시의 경쟁률이 너무 치열해서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사법고시라고 말했다. 우연의 연속인데 건축학과에서 법대로의 안착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집안이 좋은 것도 아니고 재능이 특출난 것도 아니다. 그래도 시험 같은 것은 어느 정도 잘 보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건축 관련 기술 고시를 준비하려 했다. 그런데 정원이 너무 적었다. 당시 건축 관련 기술 고시는 겨우 3명 뽑았다. 그때 행정고시나 사법고시는 그래도 300명 정도는 뽑았는데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 쪽이 그렇게 적성에 맞는 것도 아니고 3명 뽑는 기술고시는 내가 죽어도 붙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도 사법고시는 300명 정도 뽑으니까 왠지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았다.

 

건축학도였던 정 변호사가 사법고시를 한 번 봐볼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즈음 학력고사 체제(1982년~1993년)가 수능 체제(1994~)로 바뀌었다.

 

내가 이 결심을 할 때는 대학 입시가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막 넘어갈 때였다. 그래서 군대를 가기 전에 수능을 봤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잘 나와서 군대를 좀 미루고 1년 동안 수능 공부에 매진했다. 이후 수능 점수로 한양대 법대에 합격하고 그곳에서 고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기술고시를 피해 사법고시를 선택했다고 했지만 사실 사법고시도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정 변호사도 한 번에 합격하지는 못 했다.

 

사시를 보기 위해 들어가자마자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역시 붙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 3~4년 공부하다가 도저히 안 돼서 일단 군입대를 했다. 그리고 군 제대 후 다시 열심히 준비했다. 내가 2007년도에 사법고시를 패스했다. 군대 2년을 제외하면 합격하는데 거의 10년이 걸린 셈이다.

 

이렇게 어려운 사시를 패스한 정 변호사만의 비결이 무엇일까? 정 변호사는 끈기있게 도전했던 것이 비결이라고 답했다.

 

이게 긍정적인 마인드일 수도 있는데 단판 승부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머리가 뛰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시험이 주사위를 던지는 것과 똑같다고 느꼈다. 원하는 숫자가 나올 때까지 열 번 정도 던지면 한 번 정도는 나오지 않겠는가? 이 생각을 품은 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했다. 긍정적인 마인드라 이렇게 공부했지 아니였으면 몇 번 떨어지고 포기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법고시를 준비할 동안 생계 유지는 어떻게 했을까? 

 

알바를 틈틈이 했다. 학원에서 칠판 닦기부터 시작해 영상실 총무, 신문 배달, 우유 배달 같은 것을 했다. 그런데 정말 공부에만 집중해야 한다. 알바를 병행하니까 신경이나 에너지가 너무 분산된다.

 

 

물론 알바만으로는 어려웠을 것이다. 부모님의 도움이 있었다. 

 

나 같은 경우 그래도 집에서 매달 100만원씩 지원을 받았다. 먹고 자고 100만원 정도면 생활하기에 충분했다. 처음에는 50만원 정도 받았다. 사실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학교에서 사시 1차를 붙게 되면 20~30만원 정도 지원을 해준다. 1차를 붙고 나서부터는 집안에서도 나에게 가능성을 봤기 때문에 투자를 계속해줬다. 어쨌든 나는 돈 때문에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돈 때문에 힘들지 않았다고 표현한 것 역시 긍정적인 성격의 일환이 아닐까 싶다. 공부 노하우랄까. 공부 방법론이 궁금해서 물었다. 그 많은 공부량을 어떻게 해냈을까?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는 머리가 그렇게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엉덩이를 얼마나 책상에 오래 붙들고 있는지 싸움이었다. 고시생 기간에는 일단 금전적인 건 신경 안 쓰기로 했다. 오로지 먹고, 자고, 공부하고 딱 이 3가지만 신경 쓰기로 했다. 하루 24시간이 있다면 10시간을 자도 된다. 거기서 하루 세끼 먹는 시간을 4시간이라고 쳐도 나에게는 공부 시간이 10시간이 남는다. 이 시간에 집중해야 한다.

 

 

공부량과 공부 시간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중해서 효과적으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특히 고시생에게는 도처에 온갖 유혹들이 도사리고 있다.

 

10시간 중에서도 딴 생각 하느라 2시간이 그냥 지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고시촌 주변에는 당구장, PC방 등 유혹거리가 정말 많다. 마치 악마의 손길처럼 느껴진다. 그걸 뿌리쳐야 한다.

 

그러면서 정 변호사는 의외로 한 때 게임에 빠져 살았던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 유명한 리니지에 몰입을 했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정말 매력있는 게임이었다. 아이템을 파니까 돈이 되었다. 정말 신개념이었다. 게다가 게임 안에 작은 사회가 형성되는 것도 신선했다. 그런데 게임에 빠져 살다 보니 이러다 폐인되겠다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서 게임을 접었다. 나는 어설프게 게임을 하는 것보다. 차리리 한 번 푹 질리도록 해보고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 때 빠져나오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정말 폐인이 된 사람들이 있어 문제다.

 

솔직함이 좋았다. 통상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법을 전공하고 법조인이 되었다”라는 식의 구태의연하고 위선적이고 거창한 대의명분을 갖다대기 마련인데 정 변호사는 그런 게 없었다. 정 변호사는 그런 가식과 위선이 없다.

 

정 변호사가 만약 판사였다면? 검사였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좀 들어서 물어봤다. 

 

판사 보다는 검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아무래도 남자들은 검사에 대한 막연한 동경같은 게 있다. 정의를 세워보겠다,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겠다. 이런 게 뭔가 멋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법고시를 볼 때만 하더라도 이런 정의감을 기준으로 판검사를 나누는 게 아니었다. 결국은 성적순으로 판사, 검사, 변호사 이렇게 나누기 때문에 아쉽지만 검사가 되지 못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검사 안 하기를 잘 한 것 같다. 했었으면 사람을 많이 잡았을 것 같다. 물론 훌륭한 검사도 많지만 직업 자체가 워낙 거칠다 보니 지금 생각해보면 안 하기를 잘한 것 같다.

 

 

선망 받는 '의사'라는 직업의 짠내 나는 현실을 보여준 웹툰 원작 드라마 <내과 박원장>처럼. 변호사 세계의 현실이 궁금했는데 정 변호사는 있는 그대로 들려줬다.

 

보통은 바로 개업하지 않고 로펌에 들어간다. 여기서도 대형 로펌에 들어가는지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로펌에 들어가는지 갈린다. 성적이나 학벌이 좀 괜찮으면 대형 로펌으로 가고 그게 아니면 중형 로펌, 공공기관, 기업 사내 변호사, 이런 식으로 간다. 이것도 아니면 그냥 일반 변호사가 된다. 나 같은 경우 나이도 많아서 반겨주는 데가 별로 없었다. 물론 변호사라 일반 취준생의 취업난 보다는 낫다. 어쨌든 1년 정도 있다가 개업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개업할 때 로스쿨 논의가 있었을 때였다. 그 당시가 변호사들이 많아질 시기였다.

 

변호사도 영업하는 시대가 됐다.

 

이제 변호사는 예전처럼 ‘에헴’ 하고 있는다고 생계가 유지되는 시대가 아니다. 의사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의사는 필요하기도 하고 기술직이라 좀 낫다. 하지만 변호사는 딱히 기술직이라 보기도 어렵다. 편차도 심하다.

 

 

또 다른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로 유명한 한문철 변호사가 얼마 전 방송에 출연해서 교통사고 소송을 하게 된 계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정 변호사도 계기가 있다. 교통사고 사건을 맡는 것이 "매력적인" 이유가 있다.

 

처음에는 고용 변호사로 일하면서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다 했다. 당연히 그중에는 교통사고 사건도 있었다. 나는 교통사고 사건이 다른 사건 보다 매력이 있다고 느꼈다. 물론 형사 사건도 억울한 사람들을 구제해주면 보람을 느낀다. 그러나 그런 것은 한 두 건 밖에 안 된다. 대부분 죄를 지은 사람들을 양형해주는 일을 한다. 그런데 양형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의뢰인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나는 거짓말을 잘 못 한다.

 

가해자를 변론해주고 돈을 버는 변호업의 특성상 양심을 훼손하기 십상인데 정 변호사는 비교적 고의성이 약한 교통사고 사건이라면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민사 사건을 보더라도 결국은 돈을 주냐 안 주냐의 문제인데 두 건 중 한 건은 어떻게 보면 돈을 주지 않으려는 쪽이다. 그 사람은 억울한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민사든 형사든 가해자, 피해자가 존재하는데 내가 잘하는 게 도움이 될까? 그런 생각도 한다. 내가 열심히 하면 나쁜 사람을 도와주는 꼴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교통사고는 사실 가해자라 하더라도 고의로 하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어느정도 납득이 된다. 다른 어떤 법률적인 분쟁 보다 양심에 있어서 더 자유로워진다.

 

 

열심히 해서 의뢰인이 더 많은 보상금을 받도록 하는 것은 보험사의 불이익과 연결될 수도 있는 지점이 있다. 그러나 정 변호사는 그 지점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물론 이런 것은 있다.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의뢰를 받아 보험사와 소송을 하게 되었을 때 내가 열심히 해서 피해자가 생각보다 많은 돈을 받았는데 이 경우 보험사에 손해를 끼쳤으니 나보고 잘못한 것 아니냐 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 봤을 때 보험사가 소송까지 오게끔 만들었다면 소송 안 한 사람들의 이득을 취한 것과 소송이 왔을 때 나 같이 열심히 해서 손해를 보는 사람과의 이익과 불이익을 통합한다면 보험사가 딱히 손해를 보는 부분은 없다. 그 생각을 가지니까 내가 열심히 해서 의뢰인에게 보험금을 많이 받게 하는 게 결코 나쁜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통사고를 전문 분야로 하는 것이 "천직"이라고 말하는 정 변호사. 정 변호사는 타 변호사들도 각자 맞는 분야가 있다고 강조했다. 

 

개인 대 개인 민사 사건은 보통 ‘제로섬 게임’이다. 내가 많이 가져가면 상대방은 많이 잃는다. 하지만 교통사고 사건은 그런 부분에 대해 좀 더 자유롭다. 그래서 교통사고 피해자 전문 변호사로 계속 일하게 되었다. 나는 이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변호사들은 이 분야를 못 할 것 같다는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게 맞다. 그리고 나처럼 다른 변호사들도 각자 맞는 분야가 있다.

 

 

음주운전 문제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동안 평범한미디어는 음주운전 근절을 위해 머리털이 빠지도록 노력해왔다. 음주운전 사건을 심층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기본이고 음주운전 피해자들을 만나 이야기도 들어보고 법 개정을 위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음주운전 가해자들을 향해 계속해서 날선 비판을 했다. 음주운전 없는 세상을 위해 언론사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본 것 같다. 물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이런 평범한미디어의 취지에 정 변호사는 깊이 공감해주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

 

사실 음주운전 사고는 변호사와 로펌에게 있어 일종의 노다지다. 음주운전 가해자들은 양형을 적게 받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기 때문이다. 법률 시장도 그렇게 형성되어 있다. 당장 인터넷에 "음주운전 양형" "구제" 이런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관련 변호사와 로펌 리스트들이 수도 없이 펼쳐진다. 심지어 최모 변호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음주운전 범죄자들을 위한 컨텐츠를 생산하며 장사를 하고 있다. 그래서 정 변호사에게 이런 현실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니까 이 마지노선이 아까 내가 말한 것과 똑같다. 억울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변호사가 해야 할 역할이다. 억울할 것도 없는 범죄자를 도와 주는 것은 사실 안 하는 게 맞다. 물론 헌법상 범죄자들도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는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국선 변호사를 쓰면 된다. 괜히 사선 변호사들까지 그런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음주운전도 마찬가지다. 음주운전 같은 경우는 딱 정해져 있다. 어차피 △블랙박스 영상 △혈중알콜농도 등 증거가 명백하다. 

 

물론 정 변호사는 음주운전 가해자들을 무조건 거르지 않는다.

 

고백하자면 나도 솔직히 가해자가 찾아오면 상담 정도는 해준다. 하지만 그것조차 적극적으로 해주고 싶지는 않다. 그런 사람들이 오면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 대해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냥 선처 구하고 적절한 형량을 받게 도와줄 수는 있다. 그러나 음주운전을 한 걸 안 했다고 잡아 떼거나 집행유예 받을 사안을 벌금으로 낮추고 이런 걸 할 수는 없다. 나는 어디 가서 양형 받아준다. 이런 감언이설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팩트로 상담하면 다들 안 온다. 나도 아직 어디까지 말해야 되고 어디까지 말하지 말아야 되는지에 대한 경계선 설정 고민은 있다. 그렇다고 내 입맛에 맞는 사건만 맡아야 하나? 그것도 좀 아닌 것 같다.

 

 

음주운전 포함 교통사고 분야로 국한하더라도 의도적으로 다양한 사건과 의뢰인들을 다 만나봐야 좋다.

 

가해자 사건도 해보고 하다 못 해 민사 대여금 사건 등 각종 사건을 다 해봐야 한다. 그래야 교통사고 사건을 다룰 때 도움이 된다. 사건이라는 것이 다 유기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채무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다. 그러면 이 사건을 다룰 때 상속 포기, 한정 승인, 상속인들은 채무자가 사망했을 때 얼마나 받아야 되나? 또 채권자는 어떻게 받아야 되나? 등등의 문제가 있다. 그래서 다른 사건들도 완전 손에서는 놓지 않고 있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범죄자들의 경우 아예 제도적으로 국선들이 전담해서 처리하면 어떨까?

 

정 변호사는 그동안 뉴스를 포함한 관련 매체에 지속적으로 출연했다. 그는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방향으로 메시지를 많이 냈다. 피해 의뢰인으로부터 사건을 수임할 때 갈등되거나 고민스러웠던 점은 없었을까? 정 변호사는 "그런 적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정 변호사의 철학적인 고민이 깃들어 있다.

 

피해자 의뢰인을 맡아가지고 고민되는 건 별로 없었다. 다만 금액적인 부분에서 내가 맞춰주지 못 할 때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의뢰인 말 중에 기억나는 말이 있다. 내 아들이 사망했는데 (정 변호사 자신의) 가족이 당한 사건인 것처럼 맡아달라. 그 말을 들었을 때 네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런 대답을 해줘야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하지 못 하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너무 부담된다. 사람이 사망한 사건에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역량이 부족하다. 어떻게 보면 철학적인 문제 같다. 여기에 대한 고민을 앞으로도 계속할 것 같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음주운전 투아웃제를 규정한 윤창호법2에 대해 위헌 판정을 내렸다. 정말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었다. 평범한미디어 입장에서는 맥이 빠지는 결과였다. 그래서 비판하는 기사들을 여럿 작성했었다. 그래서 정 변호사에게 최근 재판을 하다 보면 판사들이 음주운전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지 물었다.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사실 지금까지 법원에서는 그렇게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았다. 그나마 피해자 유족들의 탄원, 언론으로 인해 이슈화가 되고 공론화가 되니까 법원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예전에는 혈중알코올농도, 사망, 부상 정도에 따라서 딱 기계적으로 판단했다. 이렇게 되니 피해자의 고통, 유족들의 고통까지는 헤아리지 못 했다.

 

 

그나마 최근 들어 판사들이 음주운전 사건에 대해 엄격하게 판결하는 사례들이 종종 늘고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이제는 좀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좀 냉정하게 살펴보면 언론에서 이슈화가 된 것만 법원에서 좀 신경쓰는 것 같다. 하지만 법원에서도 예전에 비해 음주운전 교통사고의 형량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아직도 피해자와 유족들 일반 시민들은 처벌 수위가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피해자측에서는 처벌 수위가 납득이 안 되는게 당연하다. 특히 유족들은 하나 뿐인 소중한 가족, 친구 등을 잃었다. 평생 가슴에 묻어야 한다. 그리고 음주운전 사고로 영구적인 장애를 입은 분들도 있다. 그분들은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보면 일생을 감옥에서 보내는 것과 같다. 평생 고문을 받는 것과 같을 것이다.

 

제도적인 개선 지점이 있다. 

 

피해자측은 이토록 고통인데도 가해자는 합의만 어떻게 잘 하면 대부분 집행유예로 끝난다. 그럼 가해자는 그냥 툴툴 털고 자기 본업에 돌아가서 생활한다. 그러나 피해자는 평생 육체의 장애를 안고 가거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으며 산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제도적 개선이 있어야 할 것 같다. 형량을 올리든가 아니면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하든가. 둘 중 하나를 하든지 둘 다 해야 할 것 같다.

 

 

독고다이의 단골 질문 내 인생 전성기를 물을 차례다. 그동안 독고다이 인터뷰에서는 "현재"라고 답한 인터뷰이들이 많았다. 정 변호사도 마찬가지로 "지금"이라고 답했다.

 

인생의 전성기는 지금인 것 같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그렇게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떤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주변에 딱히 공부를 잘 하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시골 출신인데 누가 상경해서 성공했다더라. 이런 이야기도 딱히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어떻게 서울로 상경하여 시험을 붙고 변호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사실 막 개업했을 때는 정말 힘들었다. 개업하고 나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정 변호사 하면 방송 출연을 빼놓을 수 없다. 각종 뉴스 인터뷰, 블랙박스 연계 프로그램 등 정말 많다. 이러한 방송 출연도 정 변호사에게 전성기를 선물해줬다. 그렇다면 방송 출연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된 걸까?

 

내가 딱히 방송가에 인맥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처음에 개업을 하고 교통사고 관련 전문으로 광고를 했다. 내 사무실에는 의뢰인도 오지만 교통사고 관련 법률 자문을 구하기 위해 기자들도 많이 왔다. 나는 기자들과 방송 작가들의 문의에 성심성의껏 응대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좋은 인상을 심어줬던 것 같다. 그래서 방송에서도 좋게 비춰주었다. 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한다.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그런 동요가 있다. 나는 이 동요처럼 텔레비전 출연은 꿈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니까 방송에 출연할 기회를 얻었다.

 

 

정 변호사는 한 다큐멘터리 방송에 출연한 경험을 언급했다.

 

예전에 TBS 특집 다큐 <서울에 산다>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 다큐멘터리는 보통의 서울 사람들 그리고 상경해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조명했다. 그 다큐의 한 파트는 서울 신림동으로 상경하여 고시를 패스한 변호사들의 이야기였다. 이 다큐에 출연하며 나는 우리나라 구조가 아직까지는 열심히 하면 살아날 구멍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촌에서 자랐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변호사가 되었다. 나는 돈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원래 인맥이나 명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다큐에 나올 수 있는 주체가 되었던 것이 신기했다. 여하튼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이 전성기라고 생각한다.

 

 

정 변호사도 고독감을 느낄까?

 

상경했을 때 처음 느꼈다. 나는 경북 영천 출신인데 학교가 별로 없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었다. 쉽게 말해서 그놈이 그놈이다. 거의 다 동네 친구들이다. 그래서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고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그렇게까지 노력을 할 필요도 없었다. 잘 보일려고 노력할 필요?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서울에 올라오니 완전히 달랐다. 서울에서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친해지기 위해서는 내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런 부분 때문에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는 외로움을 느꼈었고 성격도 조금 변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이렇게 외로운 감정을 정 변호사는 어떻게 이겨냈을까? 정 변호사는 그런 감정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버텨내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겨냈다기 보다는 버틴 것 같았다. 그냥 만화방도 가고 비디오방, PC방도 가고 했다. 나는 처음에 올라왔을 때 돈도 많이 없었다. 연애도 딱히 소질이 없었다.

 

 

인터뷰에서 내내 말했다시피 정 변호사는 입에 발린 소리를 잘 못 한다. 그래서 어느정도 입에 발린 소리를 해야 하는 연애에서는 불리했다는 게 정 변호사의 설명이다.

 

내가 일을 할 때는 사람들이 좋아한다. 그런데 술자리 같은 데서는 재미없어서 인기가 없다. 센스가 없다는 소리도 들었다.

 

끝으로 정 변호사에게 궁극적인 목표나 꿈에 대해서 물었다.

 

교통사고 관련에서 내 입지를 지금보다 더 확고히 하고 싶다. 아직은 나의 말이 영향력이 많이 없는 것 같다. 따로 분야를 확장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교통사고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도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는 늘어만 가고 있다. 그래서 일반 시민들의 관심은 늘었지만, 법률 시장에서의 파이는 줄어들고 있다. 이에 비례해 소송 건수도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괜찮다. 사건이 줄어드는 만큼 공부를 더 열심히 하면 된다. 더 열심히 해서 언론에도 더 많은 유익한 정보를 제공할 생각이다.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해보겠다.

 

 

인터뷰가 끝나고 정 변호사와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식사를 하면서도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정 변호사가 인상 깊은 말을 해서 마무리로 적어 보려고 한다.

 

변호사는 너무 똑똑한 사람이 하면 안 된다. 똑똑한 사람들은 과학계로 가서 대한민국의 과학, 기술 발전에 힘써야 한다. 변호사는 나같이 적당히 똑똑한 사람이 해야 한다. 머리 좋은 사람이 변호사 해봤자 법률 지식을 이용해서 얍삽한 짓이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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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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