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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다이 인생⑰-2] 재벌과 결탁한 민주당 정부들 “항상 노동개악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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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결의 중요성 강조
산업별, 개별이 아닌 총노동전선으로 가야 한다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독고다이 전국결집(노동해방을 위한 좌파활동가 전국결집) 이영주 공동대표 편 두 번째 기사에서는 민주당 정부의 반노동 문제부터, 노동운동가로서의 삶에 대해 조명한다.

 

집권 초기부터 노동계와 전쟁을 선포한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행보는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너무나 노골적이다. ‘노조 죽이기’는 연일 언론 지면을 도배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국가인데 아직도 부족한가보다. 주간 노동시간을 62시간으로 늘려 극단적인 과로 사회의 문을 열어젖혔다. 사실 문재인 정부도 별반 다를 게 없다. 그 나물에 그밥이다. 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최저임금 1만원 공약 포기,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52시간제 거듭 유예,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내내 외면하다 누더기 입법에 동조, ILO 핵심 협약 비준 안 하고 질질끌기, 답정너 경사노위 만들어놓고 민주노총 회유해서 바보만들기, 규제 샌드박스와 같이 혁신성장을 명분으로 하는 각종 규제완화책 시행, 이재용 가석방, 양경수 위원장 구속되도록 방치 등등. 수많은 반노동의 기록들을 남겼다.

 

 

이 대표가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의 주도자로 몰려 수배 중이던 2017년 12월, 더불어민주당 당사에 들어가 단식 농성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문재인 정부는 묵묵부답이었다. 당연히 구속된 뒤에도 마찬가지다. 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내세운 ‘노동 존중’은 결국 사기에 가깝다.

 

지난 12월28일 15시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사무실에서 평범한미디어와 만난 이 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노동 존중이 사기 아니었냐는 질문에 일단 역대 정권들의 노동개악을 나열했다. 이 대표는 노동개악이 주로 밀어붙여졌던 시기가 민주당 정권 때였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역대 노동개악을 보면,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 때 정리해고제가 우리나라에 도입되었었다. 그 다음 노무현 정권 시기에 대표적인 비정규직 악법 중 하나인 기간제법이 들어왔다. 이후 이명박 정권 당시 복수 노조 타임오프 제도가 들어왔다. 그리고 문재인 정권에서는 실제로 우리가 예상하지도 못 한 수많은 개악들이 있었다. 특히 근로기준법 개악은 그 전에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 했다. 노동개악이 언제 추진되었는지 핵심적으로 살펴보면 거의 다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였다.

 

왜 민주당 집권기에 노동개악이 이뤄졌을까? 이 대표는 보수 정부에서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면 통상 제1야당 민주당이 결사 반대를 외치지만 자신들이 집권하면 그걸 그대로 추진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는 민주당이 개악 추진을 반대한다.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인 것이다. 정작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그 개악을 추진한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개악을 추진해도 본인들이 추진해야 재벌들과 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법안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들이 그 성과를 가지고 자본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끌어가기 위함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나 차별금지법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률도 지금 민주당이 국회의원 숫자를 가지고 밀어붙이면 충분히 개정하거나 제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심판론에 갇혀 있는 맹목적인 지지가 왜 위험한지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과도하게 면죄부를 주거나 환상을 가지는 분들이 많다. 그거는 빨리 깨져야 한다. 문재인을 지지하려면 문재인의 본질을 정확하게 그냥 지지하면 된다. 오늘 아침 신문을 봤는데 문재인 정부의 최대 성과 중의 하나는 박근혜 사면이라고 하더라. 이러한 지점들을 보면 민주당을 과연 진보적인 정당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제 민주당이 진보라고 하면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 됐다. 故 신해철씨가 말한 것처럼 아이돌 밴드를 보고 인디밴드라고 칭하는 격이다. 차라리 파리 보고 새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민주당은 그냥 보수 정당이라고 보는 정도의 스탠스가 어느 정도는 맞을 것이다. 오히려 국민의힘이 극우 정당이면 민주당은 보수 정당이다. 아직까지도 한국 정치는 진보정당이 자리를 차지하지 못 하고 있다. 이 부분은 우리가 반성하고 강화시켜야 할 지점이다. 다만 민주당을 진보정당인 것처럼 착각시키고 사람들을 호도하는 것은 대단한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나경채 전 정의당 공동대표는 평범한미디어와 만나 아래와 같이 발언한 적이 있다. 

 

국민의힘은 노동자에게 욕을 퍼붓고 잔뜩 인상을 찌뿌린 채 때린다. 그러나 민주당은 웃으면서 때린다.

 

이 대표는 문 전 대통령의 ‘노동 존중’ 개념을 바로잡았다. 문 전 대통령이 생각하는 노동자는 그저 자본주의 체제를 떠받들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노동 존중이라는 표현은 ‘자본을 위한 노동은 필요하다’는 개념이다. 이 뜻은 뭐냐면 자본주의 사회를 돌리기 위한 노동은 존중하나, 이 노동이라는 개념은 노동력의 개념인 것이지 노동자의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노동자는 자본주의 체제를 돌리기 위한 도구로써 존재하는 개념으로 보는 것이다. 노동자를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개념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이 5년 동안 보여준 모습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본인들이 도입한 그 법들이 이렇게까지 한국 노동을 망쳐놓을 거라고는 예상을 못 했을 것이다.

 

워낙 전설적인 노동운동가이니 만큼 이 대표의 투쟁 기록을 도저히 언급하지 않고 지나갈 수가 없다. 거의 책 한 권이 나올 것 같은데 능력이 닿는 대로 최대한 간추려 봤다. 일단 제일 큰 줄기만 파보자면,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의 주도자로 지목돼서 2년 넘게 수배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일들이 있었고,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전교조 법외노조 투쟁을 할 때도 그 누구보다 교육 현장에서 치열하게 움직였다. 지난 10년간 노동운동가로서 이영주의 삶을 본인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할까?

 

2013년에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으로 임기가 딱 시작되면서 법외노조 탄압이 들어온다는 것을 알았다. 당선이 되고 전교조 사업을 잘 해보려고 했는데 전교조가 법외 노조로 지정되어 곧 사라질지 모른다는 상황에 놓였다. 진짜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 고민했다. 그렇게 고민하던 도중 당시 김정훈 위원장과 의논을 했다. 전교조 내에서 누군가는 간부로서 고민하고 누구는 평조합원으로서 고민을 한다. 30년 된 전교조가 내가 수석부위원장을 하는 시기에 없어지면 어떡하지? 그런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역사에 남는 잘못을 저지르면 어쩌나 하는 그런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다시 평조합원 입장에서 고민을 하게 되면 전교조가 여태까지 지켜왔던 것들을 어떻게 지켜내고 유지할 것인지 계속 고민하게 된다.

 

 

말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해졌다. 조직의 간부를 맡는 것은 엄청난 책임감과 중압감이 뒤따른다. 이 대표도 그 감정을 뼈져리게 느꼈다.

 

그러니까 원칙적으로 전교조 운동이 부끄럽지 않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렇게 며칠을 고심하다가 규약 개정 등 내 입장을 정리했다. 조합원들의 의견도 함께 모았다. 그 의견들이 모여 뜨거운 투쟁을 만들어냈다. 어떤 분들은 해고자들 34명이 전교조 법외노조 투쟁을 지켜냈다고 말한다. 하지만 법외노조 투쟁 시기에 새로 들어온 조합원들의 역할이 컸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법외노조 탄압을 하면 조합원들이 탈퇴해서 전교조가 고사될거라고 생각하고 탄압을 진행했다. 실제로 약 3분의 1정도의 인원이 탈퇴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빠져나간 만큼의 인원이 새로 전교조에 가입했다. 이 대표는 이분들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탈퇴한 정도의 인원이 새로 조합원으로 들어왔다. 법외노조 시기에 들어온 분들이 없었다면 이 투쟁은 승리할 수 없었다. 당시 조합원으로서 혜택을 받을 수도 없고 활동도 못 하는 시기에 가입한 동지들이야 말로 전교조를 지켜낸 사람들이다. 이 사례야말로 법외노조 투쟁 시기에 가장 감동적인 투쟁 사례라고 확신한다.

 

민중총궐기 이후의 수배 생활에 대해서도 이 대표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그 시기를 버텨냈다고 말했다. 통상적인 수배 생활과는 달리 건물 안에 갇힌 채 보냈다.

 

일반적인 수배 생활은 밖에서 경찰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는 건물(민주노총 사무실) 안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수배 생활을 했다. 당시 박근혜 정권의 탄압으로 한상균 집행부가 위태로웠다. 한상균 동지가 구속된 상황에서 나까지 구속되어버린다면 집행부가 날아가 버리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집행부를 무조건 사수하는 게 필요했다. 그래서 수배 생활을 건물 안에서 하게 되었다.

 

 

한국 노동계는 전세계 노동 조직들과 활발하게 연대하고 교류해왔던 만큼 이 대표의 수배 생활을 전해 듣고 각국 노동계 인사들이 찾아왔었다. 그런데 이 대표가 수배될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주소에 대한 반응이 각국마다 너무나도 달랐다고 한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서방에서 온 분들은 이런 말을 했다. 무슨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고 구속 수배가 되는가? 이거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분노를 했다. 반대로 동남아시아 쪽에서 온 분들은 당신이 이 건물 안에 있는 것을 아는데도 왜 경찰이 여기를 쳐들어오지 않는가? 그렇게 말했고 궁금해했다.

 

동남아시아 노동운동가들이 반노동적인 관점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서방 시각에서 보면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고 구속이나 수감이 되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반대로 동남아시아에서는 노조 활동을 하면 구속은 말할 것도 없고 폭행이나 납치까지도 당한다. 그래서 이분들은 내가 여기 있는 것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경찰이 침탈하지 않는지? 의아해한다. 나는 이들에게 경찰이 민주노총으로 밀고 들어오는 순간 서로가 전면전이라서 경찰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즉 한국에서 노동운동의 위치는 서방과 동남아의 중간 정도인 것이다.

 

그때 우리의 목표는 박근혜 정권에서 추진하는 노동개악 저지를 수배와 구속 상황에서도 차질없이 진행하는 거였다. 나중에 구속될 때 법관이 나에게 정말 한 번도 안 나갔는가? 그렇게 물어보았다. 솔직히 나가려고 하면 얼마든지 나갈 수 있었으나 만약에라도 체포가 된다면 집행부가 무너져 버리기 때문에 나가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다. 집도 아니고 건물에서 2년을 살았다.

 

 

2년 동안 건물에서 살면서 정말 고충이 많았을 것 같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가장 컸다고 한다.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제일 크다. 여러 가지 활동과 투쟁을 하며 10년간 집을 돌보지 못 했다. 수배 중이던 어느 아침에 대학원생인 아들이 갑자기 사무실로 들어왔다. 웬일이냐고 물어보니 그냥 엄마가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하며 나를 껴안고 갔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엄마랑 의논하고 싶었을텐데 그렇게 못 해줘서 미안하다. 졸업식, 입학식도 가주지 못 해 미안하다.

 

뭔가 눈물이 나는 사연이다. 또 다른 고충은 퇴근의 개념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외에도 일상 언어를 잊어버리는 등 후유증이 많았다.

 

그 안에서도 업무는 끊임없이 들어왔다. 퇴근도 없어서 잠자는 시간 빼면 거의 하루 종일 업무만 봤던 것 같다. 외부에서도 내가 수배 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긴밀하게 해야 할 내용이나 조직 갈등 상황이 있으면 한밤중이나 새벽에 긴급히 찾아온다. 모든 일에서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일상생활이 없다. 그러다가 생활 언어를 잊어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흔히 말하는 꽃 이름이나 채소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곳에서 계속 노동조합 일만 하다 보니 정작 일상의 언어를 잊어버린 것이다. 교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교육 관련 언어가 생각이 안 났었다. 전철을 어떻게 타야 되는지? 길을 어떻게 가야 되는지도 혼란스러웠다. 공간 개념도 없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구속되어 수감 생활을 할 때 아는 후배에게 국어사전을 넣어달라 했다. 건물 안에서의 수배라 근육량도 많이 줄어들어 후유증이 오래갔다. 다행히 전국의 많은 선생님들이 지역에 조합원 교육을 요청해 주었다. 교육을 가면서 운전을 하며 공간 개념과 길을 찾는 방법을 다시 회복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기억을 회복시켰다. 책도 여러 번 보면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많은 분들이 도와줘서 2~3년 정도의 시간을 갖고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이 대표는 민주노총 사무총장의 자리를 맡은 것이 엄청난 행운이라고 했다.

 

거꾸로 보면 민주노총의 사무총장 자리는 5000만명 중에 1명에게만 주어진 행운이다. 나에게 기회를 주고 성장시켜준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 대표는 수배가 장기화되던 2017년 12월 근로기준법 개악 반대와 한상균 위원장 석방, 자신에게 걸린 수배 해제를 요청하며 민주당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결국 경찰에 체포되어 수감 생활을 하게 되었다. 2018년 6월까지 약 반년의 옥살이를 한 소감을 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수배 생활보다는 나았던 것 같다. 수배 생활 동안은 흙을 밟아 보지 못 했다. 그나마 옥상에서 운동을 하려고 하면 옆 건물에서 조망권에 방해가 된다는 (다소 어처구니 없는) 이유를 들어 나오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서울 구치소에 갔는데 30분의 운동시간을 줬다. 그래서 그 시간 동안 운동장에 나와 있을 수 있었다. 거기서는 그래도 흙을 밟아보고 교도관들에게 너무 좋다고 말하자, 교도관들이 진작 오지 그랬어요라고 답했다. 민주노총 건물에서는 따로 샤워실이 없었다. 하지만 구치소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샤워 시간을 주었다.

 

 

이 대표는 계속해서 구치소가 수배 생활보다 더 나은 점을 열거했는데 옥살이 만큼 수배 생활이 고단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민주노총 건물을 냉난방이 중앙제어였다. 그래서 저녁 6시에서 7시 정도가 되면 냉난방이 끊어진다. 그러나 구치소는 그게 아니라 좋았다. 수배 생활에는 누군가 밥이나 생필품을 가져다 줘야 했다. 하지만 구치소는 끼니와 물이 나왔다. 잠도 비교적 편하게 잘 수 있었다. 민주노총 건물 근처에는 삼성병원이 있는데 밤마다 사이렌 소리가 들렸나.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이 사이렌 소리가 엠뷸런스 소리인지 나를 잡으러 오는 경찰차 소리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소리가 울릴 때마다 밤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구치소에 있을 때는 이미 구속된 상태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를 잡으러 올 일이 없어 심적으로 편해졌다. 

 

이 대표는 교도관들을 동료 노동자로 인식하며 지냈다고 한다. 

 

교도관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언젠가 교도관들도 자신들만의 노조를 만들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영주 때문에 민주노총이 싫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되지 않은가? 그래서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나중에 출소할 때는 교도관 중 한 분이 우리를 노동자로 대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어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실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전에 구속되었던 분들이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나 나는 퇴진 이후에 구속이 되어서 수감자들도 나에게 격려를 많이 해줬다. 나는 굉장히 편하게 좋은 조건에서 옥살이를 한 것 같다.

 

이 대표는 노동운동가로서 구치소에서 근무하는 교도관들의 노동 인권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그 지점을 알려줬는데 교도관 스스로 노동 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됐다.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가 있다. 구치소에 인권 담당 계장이 있었는데 구속 상황에서의 인권 문제에 대해 할 이야기가 없는지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하는 간담회 자리를 만들었다. 그때 나는 교도관들의 처우에 주목했다. 교도관들은 어마어마한 감정 노동자들이다. 수감자의 인권과 함께 교도관들의 인권도 같이 존중해줘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하니 자신들도 전혀 생각지 못 한 영역이라며 감탄했다. 여기에 대한 부분이 준비가 된다면 민주노총에서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어쨌든 굳이 비교하자면 수배 생활보다는 그래도 옥살이가 더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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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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