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윤동욱의 불편한 하루⑨] 2022년에 산신령님 찾는 ‘산림청’

배너
배너

조선시대에서도 안하던 일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예전에 ‘해를 품은 달’이라는 소설 원작의 드라마를 정말 재밌게 본적이 있다. 이 드라마의 세계관에는 ‘성수청’이라는 기관이 등장한다. 드라마의 주인공 연우(한가인 배우)는 성수청 소속 액받이 무녀로 젊은 임금(김수현 배우)에게 액운이 가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 이 기관은 를 담당하는 곳이다. 국가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무녀들이 정성껏 제를 지내고 길흉을 점친다. 한 마디로 국가 차원에서 무속적인 요소를 매우 신경썼다는 것이다.

 

다만 오해하면 안 될 것이 실제 조선시대에는 이런 기관이 없었다. 드라마 자체가 완전히 허구다. 애초에 배경만 조선시대지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은 모두 100% 창작물이다. 

 

 

그 옛날 조선시대 조차 ‘괴력난신’이라 하여 귀신의 존재를 부정했고 미신을 믿는 행위를 어리석은 것으로 규정했다. 사실 이것은 유교의 영향도 크다. 유교가 근본인 국가에서 무속을 제대로 인정할 리가 없다. 마찬가지로 조정 차원에서 무속을 주관하는 기관을 둔다는 것은 유학자들과 신하들이 절대 묵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21세기가 되고도 22년째인 지금 대한민국에서 정말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17일 동부지방산림청(강원 강릉시)에서 제례를 올렸다고 한다. 산림청은 대관령국사성황당에서 올해 산불 등 각종 재해로부터 산림을 보호하고 산림사업장의 안전 및 성공 추진을 기원하는 산신 제례를 봉행했다. 관련 소식을 다룬 연합뉴스 기사를 읽는데 내 눈이 잘못된 줄 알았다.

 

참석자들은 산불·산림 병해충·산사태 등 산림재해가 발생하지 않고 각종 산림사업 추진 간 안전사고 없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대관령 산신령에 고했다.

 

옛날 금도끼와 은도끼 같은 전래동화에서나 보던 산신령을 연합뉴스 기사로 접하게 될줄은 정말 몰랐다. 안전 문제를 중점적으로 취재하는 평범한미디어 입장에서 산불 등 산림 문제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런데 산림 문제를 전담하는 국가기관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게 맞는가? 의구심이 든다. 의구심이 아니라 비판받아 마땅하다.

 

 

물론 무속 자체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싶지 않다. 샤머니즘이야말로 인류 역사와 함께 했고 일종의 문화로 생각한다. 사업을 시작할 때도 우리는 종종 돼지머리를 세워놓고 코에 지폐를 꽂으면서 제를 지낸다. 그리고 모두들 재미삼아 혹은 마음이 불안하여 타로 카드점이나 점집을 찾아가 본 경험을 한 번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걸 산림청이라는 국가기관이 돈을 들여 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자영업자가 창업 개시 전에 이런 걸 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순전히 개개인의 마음대로 할 일이다. 그러나 국가기관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가기관은 철저히 데이터와 상식에 기반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예방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산림청이라고 불리는 곳의 행태가 정말 가관이다. 산불 예방을 명목으로 한다는 짓이 산신령님에게 잘 봐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라니. 이걸 누가 이해하겠는가?

 

특히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할 수 있는 대형 산불 예방을 간절히 기원했다.

 

어이가 없다. 산불 예방은 산신령님이 하는 게 아니라 산림청이 해야 하는 일이다. 누가 누구한테 제례를 올리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제사를 지낸다고 돈은 돈대로 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행위를 자신들 사비로 했을 리는 없다. 분명 세금으로 했을 것이다. 이런 걸 할 돈으로 인력을 충원하고 순찰을 더 강화하면 산불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다. 차라리 1년 전 만들어진 산림청 산하 '국가산불실험센터'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시키는 것이 훨씬 낫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도 이른바 ‘무속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었다. 그리고 ‘여성의당’에서는 당무를 타로점으로 결정했다는 논란이 있었다. 어렸을 때 판타지나 무협 소설 삼매경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마치 눈에 보이는 정치권이 그런 세계관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개인 차원에서는 재미있지만 국가 차원에서 보면 엄청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은 '제정 일치' 국가가 아니다.

 

 

심상택 동부지방산림청장은 "예년보다 강수량이 적고 건조한 날씨가 지속해 산불 발생 위험이 큰 만큼 철저한 대비 태세를 갖추고 각종 산림재해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지역 주민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제발 이런 제를 지내는 데 들어갈 에너지와 시간, 돈 등을 과학적이고도 철저한 산불 분석을 하는 데 써줬으면 좋겠다. 이런 식이면 그냥 기상청도 비싼 돈 들여 슈퍼컴퓨터 가져다 놓지 말고 셀럽 무당 1명 불러 날씨를 점치면 될 것 같다.

프로필 사진
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