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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의 불편한 하루⑦] DJ의 실책과 ‘어설픈 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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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전두환씨가 죽었다. 법적으로 전씨는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다. 사실관계만 보더라도 우리 국민은 단 한 번도 학살자 전씨를 최고지도자로 뽑아준 적이 없다. 이런 전씨의 사망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조문을 해야 하느니 말아야 하느니 참 말이 많다. 대세는 명복과 애도를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뭔가 찝찝하고 불편하다. 전씨가 사망한 11월23일 이날은 그야말로 이 시리즈의 제목 그대로 불편한 하루가 되고 말았다.

 

 

학살자가 죽었으니 기분이 좋고 후련한가? 전혀 그렇지 않고 모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왜냐면 전씨는 5.18 학살 외에도 삼청교육대 등 수많은 인권 유린을 자행한 총 책임자임에도 전혀 반성이나 사과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천수를 누리다가 아무 불편없이 세상을 떠났다. 죽기 직전 지병(혈액암의 일종 다발성 골수증)이 있다고는 들었다. 그러나 91세까지 건강하게 살았다.

 

그는 2년 전까지만 해도 골프를 치러 다녔고, 12월12일이 되면 과거 12.12 쿠데타의 주역들과 고급 만찬을 즐기기도 했다. 추징금? 956억원이나 내지 않고 가족들 재산으로 꽁꽁 숨겨놨다. 

 

 

사실 제일 큰 문제는 전씨가 제대로 된 사과 한 마디 없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방송인 유병재씨는 스탠드 코미디 방송에서 “드라마 하나 재미있게 본 걸로 욕먹어서 사과를 했다. 그런데 전두환 이 십xx는 그 짓을 벌여 놓고도 사과 한 마디 없다”고 분개했다.

 

그렇다. 오직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거나 폐인을 만들어 인생을 망쳐 놓고도 살인마 전씨는 반성하는 언행을 전혀 보인 적이 없다. 심지어 죽기 몇 개월 전 광주에 재판을 와 놓고도 졸고 앉아 있는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

 

죽기 전 5.18 학살 책임에 대한 그의 마지막 입장은 "광주하고 내하고 무슨 상관 있어?"였다.

 

 

독재자의 편안한 영면은 또 다른 유형의 2차 가해였다. 지나간 재판은 어쩔 수 없지만 내란목적 살인의 수괴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전씨는 사실 감옥에서 나오면 안 됐었다. 故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선택이 참으로 원망스럽다. 전씨에 대한 특별사면은 정치보복을 하지 않아야 하는 정치권의 구태 청산이 아니었다. 국민 화합? 결코 아니었다. 그냥 DJ(故 김대중 대통령)의 실수이자 패착이었다. 반란 수괴이자 학살자를 사면시키는 것이 어떻게 국민 화합으로 이어지는지는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이해하려 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파지는 까닭이다.

 

전씨의 뻔뻔한 태도는 끝까지 유지됐다. 추징금도 배째라는 식이었다. "29만원",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나에게 감정이 좋지 않나봐 나에게 당해보지도 않고", "광주는 하나의 폭동" 등등. 입에 담지 못 할 배설들을 쏟아냈다.

 

 

이게 무슨 국민 화합인가? 국민 분열만 초래한 것 같다. 절대 사면하지 말았어야 했다. 어떻게든 감옥에서 평생 살도록 했어야 했다. 나는 전씨에 의해 사형을 언도받은 DJ만이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고는 생각한다. 특히 DJ가 동서화합 및 정치보복의 악순환 끊어내기 등 나름 고도의 정치적 목적을 갖고 단행한 그 행위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1997년 12월20일,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고 이틀 뒤 DJ는 현직 YS(故 김영삼 대통령)를 찾아가 전두환·노태우 사면을 이끌어냈다. DJ의 오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DJ의 정치 전략은 그리 단순치 않다는 걸 알고 있다. 관련해서 김대중 연구의 권위자인 장신기 박사가 쓴 이 을 한 번 읽어보자.  

 

이런 게 바로 ‘어설픈 관용’이다. 어떤 이들은 용서를 함으로써 화합과 평화를 만들어내자고 한다. 용서? 좋다. 하지만 선결 조건이 있다. 이를테면 △적정한 법적 처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가해자의 진정성있는 반성과 사과가 있어야 하고 △피해자가 용서를 하고 싶어야 한다. 이 3가지가 충족돼야 화해가 가능하다. 그게 아니고 제3자가 멋대로 “이제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자”라는 식으로 결코 말할 수 없다. 허울 좋은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가해자에 대한 비합리적인 솜방망이 처벌은 피해자에게 있어서 또 다른 폭력이다. 평범한미디어에서 숱하게 다뤘던 각종 음주운전 범죄들, 기타 사건사고 등등 수많은 사례들을 보면 피해자만 고통받는다.

 

성급한 일반화인지 모르겠는데 한국은 기력이 없는 노인을 보면 마음이 아파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가해자도 죽기 직전의 노인이 되었으니 이제는 용서하자? 그렇게 마음이 약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 나이가 먹고 세월이 흘렀다고 지은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독일은 지금도 2차 대전 나치 전범들을 꾸준히 추적해서 처벌하고 있다. 심지어 90세가 넘은 나치 부역자들도 끝내 잡아서 법정에 세우고 처벌했다. 사실 2021년 기준으로 살아남은 나치 부역자들은 거의 이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독일 정부 입장에서 전범은 전범일 뿐이다. 내일 자연사로 사망하더라도 오늘 재판을 해서 시시비비를 가려내는 것이 독일의 원칙이자 스탠다드다. 어떻게든 전쟁 범죄자들의 말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하려는 독일의 강력한 의지가 인상적이다.

 

이런 걸 보고 배워야 한다. 세월이 아무리 많이 지나도 피해자들의 상처는 아물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는 전씨와 같은 전철이 없어야 된다. 어설픈 관용은 더 이상 안 된다. 무조건 형량을 다 채우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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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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