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한연화] 내가 고민 상담을 시작한지 오늘로 몇 번째더라? 아마 이번이 열여섯 번째일 거야. 그래 그 열여섯 번의 상담 동안 참 다양한 사람들을 간접적으로 접했지. 그중에는 세상에 이런 또라이가 다 있나 싶을 정도의 또라이도 있었고, 나보다 더 한심한 놈이 세상에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한심한 인간도 있었어. 그런데 이제 보니 당신 남친에 비하면 그 사람들은 아주 양반이었지 뭐야.
대체 이걸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까 싶을 정도로 당신 남친은 총체적 난국이야. 그걸 당신 스스로 잘 알고 헤어지려고 한다니 그 결정은 칭찬해주고 싶어. 내가 늘 얘기하는 건데 그 나이 처먹도록 같이 산 부모도 못 바꾼 새끼는 친구나 애인이 바꾼다는 게 거의 불가능해. 그건 그 친구나 애인이 예수나 부처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그러니까 당신은 이제 당신 갈 길 가면 되는 거고, 앞으로 더 좋은 사람 만나면 되는 거야.
그전에 당신이 남친에게 “살면서 얼굴 한 번도 볼 일이 없을 사람들이 너에게 뭐라 하는 걸 보고 네가 얼마나 또라이인지 좀 느끼는 게 있어라”는 심정으로 사연을 올린 것 같아.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려고 해. 맞아. 당신 남친이 얼마나 또라이인지 얘기 좀 해주려고.
우선, 한국 성교육? 엉망인 거 맞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9년 됐는데 요즘도 학교 성교육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을 거야. 정작 필요한 건 안 가르치고 다들 아는 정자, 난자 타령만 하는 게 한국 성교육이고, 그걸 넘어서서 꼭 필요한 걸 가르치려 하면 애들 문란해진다고 학부모 단체며 기독교 단체에서 하도 지랄을 해대니 뭘 할 수가 있나. 그렇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 대해 너무 몰라. 어쩌면 그렇게 서로에 대해 모르는 상태로 어른이 되고 인간관계를 쌓아가다 보니 당연히 서로를 이해할 기회 자체가 없어지게 된 걸지도 모르겠어. 이게 무슨 소리지 싶을 테니 예를 하나 들어볼게. 남성들 중에서 여성의 월경이 최소 3~4일에서 길게는 10일 이상까지 하루 24시간 내내 이어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루에 필요한 생리대의 양이 대략 얼마인지 아는 사람은? 생리대와 탐폰, 생리컵 등의 사용법과 사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등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보다 여성의 질 내부에 들어가는 것이 꼭 성적 쾌락을 위한 무언가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여기까지 말했으면 눈치 챘을 거야. 어쩌면 여성의 월경이나 월경용품에 대한 남친의 무지는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치일지도 몰라. 딜도 같은 섹스토이와 생리컵 등의 삽입형 월경용품을 구분하지 못 하는 것도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치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말야, 그것이 자랑은 아니야. 다들 똑같이 모르는 것이 절대 자랑이 될 수는 없잖아. 그리고 모른다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다들 하나같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지. 자신과 어떻게든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타인으로서의 여성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온갖 아는 척은 다 하고, 심지어 자신이 여성에 대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걸 자랑스럽게 내보이고 다니며 스스로가 얼마나 밑바닥에 있는지 드러내는 거? 그거 자랑 아니야. 내가 이렇게 형편없는 놈이구나 부끄러워 하고 알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일이지.
맞아. 당신 남친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자신이 모르는 타인으로서의 여성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고, 그 무지를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밑바닥 인간이야. 어쩌겠어. 그런 인간이 아무리 대한민국 남성 평균이라 해도 그 평균보다 더 나은 사람은 어딘가에 있을테니 그냥 그렇게 살라고 내버려둬야지. 괜히 엮이면 당신 인생만 피곤해지니까. 하, 그보다 나 진짜 어이가 없는 대목이 있는데 말이야. 생리컵 쓰는 걸 왜 자기한테 허락 안 받았냐고 지랄을 하는 거지? 너네 집에 알리겠다? 너 창녀짓 했냐? 아주 개지랄을 떨었던데.
당신 남친한테 “다 됐고 너나 지랄하지 말라”고 해줘. 여성의 질에는 자기 성기만 들어가야 한다고 여기는 거야 뭐야. 여성의 질은 나를 위한 거니 내 것만 들어가야 해! 이거 잖아. 흔히 말하는 안티페미 컨텐츠의 단골 레퍼토리지. 지금 만나는 여친이 자기 만나기 전에 연애한 적이 있다고 그걸 두고 전남친 작품이니 뭐니 하는 전형적인 안티페미 컨텐츠 말야. 자기 무지를 자랑스레 드러내는 데다 안티페미 컨텐츠에 물든 인간이라니.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헤어지기로 이미 맘먹은 거 백 번 잘 한 일이야.
그러니까 헤어지기로 한 거 다시 한 번 축하하고, 반드시 이 답변을 남친에게 보여줘. 네가 어떤 놈인지, 네가 어떤 짓을 해서 너 스스로 네 얼굴에 침을 뱉고 사는지, 한 번 보고 좀 반성하라고 전해줘. 간만에 답답한 사람이 아닌 시원시원한 사람의 사연을 받아 나도 좋았으니 어디에선가 꼭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길 바랄게.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이번 답변 때문에 남혐 한다고 여기저기서 욕먹는 거 아냐? 뭐 그럼 유명해지는 거니까 나야 땡큐지만. 아무튼 당신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길 바랄게. 그럼 이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