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한연화의 뼈때리는 고민상담소⑨] 결혼이란 작품의 주연은 ‘내’가 아니라 ‘부모’다

배너
배너

[평범한미디어 한연화] 우선,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결혼이라는 게 본래 여태까지 전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사람들이 만나서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거니 어려운 점이 많을 거야. 당연히 서로 맞지 않는 점 때문에 싸우기도 할 거고, 함께 살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노력이 필요할거야. 그래도 당신과 당신의 애인이 그 모든 걸 감안하고서라도 함께 살고 싶을 정도로 사랑한다면 진심으로 축하해야 할 일이지.

 

결혼 준비하니까 통장 거지됐는데 원래 이런가요. 덜덜 떨리네 ㅋㅋㅋ 

<고민글 출처 : 전국대학생대나무숲 / 2022년 11월23일>

 

결혼하면서 통장이 거지가 됐다고 했지? 많은 예비 부부가 그럴 거야. 신혼집도 알아봐야 하고, 신혼집에 들어갈 가구며 가전제품들, 그리고 결혼식장부터 스드메 등의 결혼식 비용과 신혼여행에 들어갈 비용까지 당연히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지. 하지만 그런 걸 다 차치하고라도 한국에서 결혼하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건 사실이야. 그렇잖아. 한국의 결혼이라는 게 나와 상대방이 주인공이 아닌, 서로의 부모가 주인공이 되는 날이고 그렇다 보니 내가 아니라 부모가 만족할 만큼의 무언가를 상대에게 요구하게 되는 건 사실이지.

 

 

그거 알아? 결혼 준비하면서 싸우고 헤어지는 연인들의 상당수가 부모 때문에 헤어진다는 거. 아직도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의 결혼을 자신들의 체면을 살리고, 좋은 며느리와 좋은 사위가 들어와 자신들에 대한 부양 의무를 같이 지는 거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며느리나 사위가 재산을 얼마나 들고 오는지를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신혼집은 어디에 몇 평 이상으로 해야 한다거나, 가구며 가전제품은 신혼집에 맞게 얼마 정도로 해야 한다거나 등등 남들에게 며느리나 사위네 집안의 재력이 보여지는 정도를 세세하게 따지지. 웃기지 않아? 내 며느리나 사위가 돈이 많든 적든 같이 사는 건 내 아들이나 딸인데 왜 내가 며느리나 사위의 재산을 가지고 덕을 보려 하는 건지. 그게 돈 받고 자식 팔아먹는 거나 다를 게 뭐야? 안 그래?

 

이렇듯 한국에서 결혼은 ‘내’가 하는 게 아니야.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부모’가 하는 거지. 그건 결혼식 순서만 봐도 알 수 있잖아. 혼주(婚主)라는 말이 있고, 양가 어머니가 혼주로 나서서 화촉을 밝혀야 결혼식이 시작되는 건데 그거 사실 웃긴 거지. 그래 혼주라..... 그 말도 사실 웃긴 말이지. 혼주라는 건 말 그대로 혼례의 주인이라는 뜻이잖아. 그런데 왜 내가 아니라 내 부모가 내 혼례의 주인이 되는 건데? 혼인 당사자는 나인데 주인 자리는 부모 몫이라니. 이거 만큼 웃긴 말이 어디 있어. 이것만 봐도 알 수 있지. 한국에서 결혼은 나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위해 하는 거라는 사실을.

 

그래서 식장도, 신혼여행도, 결혼 날짜도 부모가 일일이 간섭하려 드는 거고. 결혼식은 어디서 해야 한다, 예물은 얼마짜리로 뭘 해야 한다, 부모들이 자기들 기준에 맞춰 끝없이 요구하고 또 요구하다가 결국 자식 결혼 다 엎어버리는 풍경들은 한국에서는 매우 흔한 일이지. 심지어 신부가 결혼식 때 드레스를 입을 건지, 원피스를 입을 건지, 수트를 입을 건지도 부모 눈치를 봐가면서 결정해야 하잖아. 아무리 신부가 드레스를 거추장스럽게 여겨서 원피스나 수트를 입으려고 해도 부모가 드레스를 고집하면 결국 드레스를 입는 경우들을 나는 많이 봤어. 도대체 한국의 부모들은 왜 그렇게 자식의 결혼을 자신의 결혼인양 간섭하고, 자식의 결혼을 이용해 자기 체면을 차리고, 자기 자식의 배우자가 들고 오는 재산으로 덕을 보고 부양받으려 하는 걸까. 도대체 무슨 심보로 그러는지 정말 그 심사가 궁금할 뿐이야. 

 

아 또 있었지. 그놈의 축의금 문화. 나는 축의금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야. 새로운 가족이 되는 두 사람의 출발을 응원하는 의미로 성의 표시를 하는 거 좋다고 생각해. 하지만 한국에서의 결혼식은 부모들의 축의금 장사를 위한 자리가 되어버린 게 있으니까 이게 참 그래. 부모들이 자식에게 그렇게 결혼하라고 닦달을 하는 이유 중 하나도 그거잖아. 자기가 뿌리고 다닌 축의금 회수하려고. 아니, 다른 사람의 결혼에 성의 표시를 했으면 그 사람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했으니 그걸로 된 거지 왜 자기 자식을 이용해서 그만큼 회수를 하려 하는 건데? 자식이 무슨 장사 밑천이야? 자식 가지고 장사하려고 자식 낳아 키웠어? 아, 맞나보네. 그러니까 자식한테 그렇게 축의금 회수해야 하니 결혼하라고 닦달을 하는 거겠지. 

 

이런 부분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은 전근대 사회가 맞아. 자식은 어디까지나 부모의 체면과 노후를 위한 투자 대상이고 보험 상품인 거고, 자식의 결혼 또한 또 다른 보험 상품을 찾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지.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전근대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우리 부모 세대가 다 죽고 나면 그때는 근대 사회가 올까? 그때는 부모를 위한 결혼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결혼을 할 수 있게 될까? 나는 아니라고 봐. 인간은 자기가 당한 걸 합리화하려는 방어기제가 있으니까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부모들이 했던 것과 똑같은 것을 우리 자식세대에게 하게 될 거야. 하지만 이건 잊지마.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로 무언가를 중단할 수 있기에 인간인거야. 그러니 우리도 우리의 의지로 우리 세대에서 이런 전근대적인 결혼 문화를 중단할 수 있어.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인간을 믿는 건 아니야. 하지만 고민을 상담하는 일을 지속한다는 건 때로 인간의 가능성을 믿어본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나는 이 불합리한 결혼 문화를 우리가 끝낼 수 있을 거라 한 번 믿어볼게. 나 그래도 되는 거 맞지? 

관련기사

55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