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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남자의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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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한연화의 뼈때리는 고민상담소] 56번째 사연입니다. 한연화씨는 알바노조 조합원이자 노동당 평당원입니다.

 

[평범한미디어 한연화 칼럼니스트]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맛이 나는 상담은 또 처음이네. 흠. 우선은 앉아. 앉아서 나뭇잎 동동 띄운 물 한 잔 마시며 좀 들어봐. 이런 건 이렇게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물 한 사발 대접하듯 이야기하는 게 맛이거든. 내가 말야. 어떤 심술보 양반을 하나 알거든? 뭐 누누이 말했지만 진짜 놀부가 아이고 형님! 그러고 절을 할 위인이신데 말야. 그 양반이 또 어떤 양반이냐. 요즘 말로 하면 삼식새끼야. 왜 그러잖아. 남편이 집에서 한 끼 먹으면 일식이, 두 끼 먹으면 두식놈, 세 끼 먹으면 삼식새끼. 맞아. 자기 부인이 해준 음식이 아니면 입에 대려고 하지를 않고 심지어 부인이 임신했을 때 입덧이 무척 심했는데 그때도 밥을 차려오게 했을 정도니 말 다했지 뭐. 음 뭔가 감이 팍팍 오지 않아? 보통 고민상담소에 이런 사연 들고 찾아오면 내가 막 “세상에. 그런 놈하고 왜 살아? 그냥 이혼해”라고 하겠지. 그렇지 않아?

 

 

아무튼 그 양반 부인도 성질이 만만치 않아. 화나면 아무 말이나 내뱉고, 사람 패기로 유명할 정도지. 남편 만큼 심술보는 아닌데 성질머리는 딱 자기 남편하고 비슷한 수준이니 말 다한 거지 뭐. 그런데 그 성질머리에 어떻게 자기 입덧하는 걸 빤히 보면서도 밥 차려오라고 하는 남편과 평생을 살았냐고 묻는다면 답은 이거야. 사랑하니까. 사랑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하는 걸. 나를 사랑하고 있는 걸 아니까. 물론 이해는 안 될 거야. 입덧한 아내에게 삼시세끼 밥상 차려오게 하는 게 무슨 사랑이냐고 할테지. 정말로 부인을 사랑한다면 자기가 밥을 차려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말이야. 그런데 그건 절대 아냐. 임신한 부인에게 밥을 차려주지 않아도 심지어 입덧하는 중에도 삼시세끼 밥을 차려달라고 해도 그 양반은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부인을 사랑하고 있던 게 맞아. 오직 자기 부인에게만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려줄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랑하고 있었던 거야.

 

그런 거야. 진짜 사랑이라는 건. 당신이 후회한다고 한 것처럼 꽃 한 송이 사주지 않아도 “꽃? 그딴 걸 왜 사. 그 돈으로 차라리 고기를 사주지”라고 꽃 사달라는 여자친구에게 면박을 줘도, 길 가다 좌판에 보이는 팔찌 하나 립스틱 하나 선물해주지 않아도, 여자친구 마중하러 지하철역에 가서 “데리러 왔어”라고 하지 않아도, 강의실 앞에서 커피 들고 기다리지 않아도 그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면 되는 거야. 사랑에는, 사랑하는 방법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수많은 방법이 있고. 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내가 진심으로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너는 내게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면 되는 거야. 그게 진짜 사랑이라고.

 

아직도 와닿지 않는 것 같은데 그냥 내 이야기를 예로 들어줄게. 내 애인은 선물을 사주는 사람이 아냐. 기념일을 일일이 세어가며 챙기지도 않아. 선물도 기념일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 그리고 지하철역에서 미리 나 기다려주는 거? 그런 건 위험할 수 있어서 못 해. 애인 혼자 단독 보행이 불가능한 역에서 내가 지하철을 타는데 거기까지 온다?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 해!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위험할 수 있어. 커피 들고 기다리는 거? 손에 감각이 없다시피 한데 뜨거운 걸 잘못 들고 있다 놓칠 수도 있지. 당일날 자기 글 대신 써달라고 부탁할 때도 많고 말야. 그리고 나는 아스퍼거인이라고 했잖아? 나에게 무언가를 계속 설명하라고 하는 건 고문이야. 아스퍼거인의 특성상 말을 할 때 발음이 정확하게 나오지도 않고. 그런데 나한테 계속 “이거 뭐야?”, “옆에 뭐 있어?”라고 하며 간판 설명을 요구한다고. 그런데도 애인만의 방법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니까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려주니까 나는 그걸로 됐어. 그리고 나도 나만의 방법으로 애인을 사랑하니까 그걸로 된 거고.

 

이런 거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단순한 로맨틱함이 아니라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서로만의 방법으로 알게 해주는 거지. 그게 아니라면 함부로 사랑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 돼. 사랑이라는 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말 중에 하나니까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당신에게 한 번 물어볼게. 여자친구를 사랑했다고 할 수 있어?

 

물론 이 답을 지금 하라는 건 아니야. 다만 후회될 때마다 생각해. 정말 여자친구를 사랑한 게 맞는지. 단순히 호감을 갖는 거, 좋아하는 거, 같이 노는 게 좋은 건 누구에게라도 들 수 있는 감정이니까 그걸 사랑과 착각하지 않게 깊이 생각해. 그러고 나면 후회는 사라질 거야. 사랑한 것이 맞다면 사랑했으니 그걸로 된 거고. 사랑한 것이 아니라면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헤어진 거 뭐 어때가 될테니 그걸로 된 거니까. 자 그럼 내 상담은 여기까지. 내 말대로 한 번 깊이 생각해봐.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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