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한연화] 상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당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해볼게. 내가 조금 희안한 직업병이 있어서 마침표가 없거나 문맥이 어지러운 글은 참아주지를 못 하거든. 그래서 내 식대로 정리를 해보자면 우선, 당신은 지금 소개로 만난 남성과 서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연락을 하고 있다. 쉽게 말해 썸이라면 썸인 관계를 유지 중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전남친과 연락을 하고 있고, 전남친을 다시 만나거나 사귈 생각은 아직 없지만 자꾸 연락을 주고받다보니 이전처럼 편안한 감정이 올라온다. 이렇게 된다는 말이지?
소개 받은 사람이랑 연락하고 있는데도 전남친이 연락오면 자꾸 받아주고 카톡하게 됨. 만날 것도 아니고 다시 사귈 건 더더욱 아니지만 말 잘 통하고 티키타카 되니까 카톡 재밌음 ㅜㅜ 전남친이 편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고민글 출처 : 전국대학생대나무숲 / 2022년 12월2일>
하, 이거 좀 간만에 재미있네? 현남친이 있는 상황에서 전남친과 연락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실체가 존재하는지도 모를 썸이라는 관계 속에서 전남친과 연락을 하고 있다니 와. 나 이렇게 재미있는 사연 간만에 본다. 아무튼 내가 재미가 있건 없건 중요한 건 당신의 고민이니 참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내 이야기를 들려줄게.
나도 전전애인과 친구로 지내. 이전의 연애에서도 그랬고, 지금의 연애에서도 그렇고 나와 사귀는 사람들은 전부 다 내 친구 중 한 명이야. 내 전애인 중 한 명이고. 내가 그 친구들과도 연락을 자주 하는 건 물론이고 그 친구네 집에서 며칠씩 자고 오기도 하고, 그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한다는 걸 알고 사귀는 거야.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물어본다면 답은 딱 하나야. 서로에 대한 미련이 1도 남아있지 않다는 거.
그리고 나와는 반대로, 내 지금 애인의 친구 커플 중에는 전애인 문제로 헤어진 커플도 있어. 그러니까 커플 중 한 쪽이 전애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 한 상태로 새로 연애를 한 거고, 그렇다보니 자기 현애인과 같이 참석한 모임자리에서끼지 전애인에 대한 미련을 드러내서 현애인도, 전애인의 현애인도 대단히 빡치게 해서 그게 도화선이 되어 헤어졌다고 보면 돼.
자, 여기서 문제. 나와, 내 애인 친구의 차이가 뭐였을까? 그건 바로 ‘서로 선을 얼마나 명확하게 그었냐’의 차이야. 물론, 당신이나 내 애인의 친구처럼 자신은 전애인에게 미련이 남아 있지 않다고 입으로는 말하고 다니면서 전애인에 대한 미련이 남을 수도 있고, 이 사람이랑 잘 안 됐을 때에 대비해서 전애인을 일종의 보험 같은 걸로 남겨두고 싶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건 서로에게 좋지 않은 거야. 이미 끝난 관계의 형태에 미련을 가지고 집착하다 보면 내 애인 친구 커플 처럼 당사자에 해당하는 서너 사람이 그에 엮여서 괜히 싸우고, 감정 상하다가 정말 둘도 없는 원수가 될 수도 있어. 나랑 전애인은 그걸 아니까 서로 선을 긋는 거고, 선이 명확하게 그어져 있으니 “내 전전애인이고 친구야”라고 내가 지금 사귀는 사람에게 말을 하고 그 사람도 그걸 이해해줄 수 있는 거야.
하지만 당신처럼 선이 그어지지 않은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관계도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내 친구 애인 커플처럼 될 수밖에 없어. 누가 봐도 전애인에 대한 미련이 많은 상태에서 썸을 타는데 그건 전애인도 전애인대로 “얘가 지금 나랑 뭐하자는 거야?” 싶고 썸타는 남성도 “이 여자 지금 나랑 뭐하자는 거지? 이럴 거면 전애인이랑 다시 사귀지 나를 왜 만나지?” 싶을 테니까.
그러니 우선은 당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봐. 몇날 며칠 들여다봐도 전애인에 대한 미련이 그만큼 강해서 앞으로도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전애인과 애매한 관계를 유지할 것 같다면 지금 썸타는 남성에게 우리 앞으로 연락하지 말자고 얘기하고, 만약에 전애인에 대한 미련을 잊고 앞으로 만날 사람에게 충실할 수 있을 것 같다면 전애인에게 “너는 나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냐?”고 솔직하게 물어보고, 그 대답 여부에 따라 관계를 결정해. 만약에 너랑 얘기가 잘 통하기는 하지만 나는 너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지 않다는 대답이 나오면 ‘전애인이었던 친구’라는 관계로 정의내리고, 지금 썸타는 남성에게도 전애인과 친구로 지낸다고 솔직히 말해. 뭐, 대답이 “너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라면 어쩌겠어. 나는 너와의 관계 때문에 새로운 관계를 망치고 싶지는 않으니 우리 이제 연락하지 말자고 얘기해야지.
자, 오늘 내 답변은 여기까지. 내 답변이 어떻게 들렸을지, 당신의 고민 해결에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관계에 대한 문제로 인해 지금보다 더 힘들어지는 건 생판 남인 나로서도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닐 것 같네. 그럼 누군가와 어떤 관계를 맺든 선을 명확히 그으며 많이 힘들지 않은 나날이 되기를 바라며 나는 이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