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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여자가 지나가면 숨 참는다는 ‘남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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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한연화의 뼈때리는 고민상담소] 58번째 사연입니다. 한연화씨는 알바노조 조합원이자 노동당 평당원입니다.

 

[평범한미디어 한연화 칼럼니스트] 과거에 내가 애인에게 했던 말을 먼저 들려주지.

 

나는 너희 기독교인들을 잘 알아. 너희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에서 섬겨지고 있던 수많은 신들을 가짜 신, 악마라고 이름 붙이고 몰아세웠지. 너희가 믿는 신은 가짜이고, 악마이니 그 신을 섬기는 너희 또한 사람이 아닌 악마라고, 미개한 짐승이라고 몰아붙이며 너희들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했더라? 수많은 문명과 문화를 파괴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만들었어. 모든 사람은 신 앞에 있어 단독자로서 평등하다는 너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알아? 너희가 그런 일을 행했던 존재들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그들을 같은 사람으로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들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하고 그들을 사람답게 대할 수 있었겠어. 이런 거야. 너희가 믿는 신 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이야기하는 건. 다른 종교,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 역시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게 하는 거라고.

 

 

이건 내가 전에 신토의 신들을 두고 가짜 신이라느니, 악신이라느니 하던 내 애인에게 했던 말이야. 맞아. 다른 종교를,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미개인으로, 야만인으로, 악마를 섬기는 악한들로 몰아 학살하는 일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을 애초에 자신과 같은 사람으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야. 사람이 아닌 존재를 죽이든, 죽을 때까지 부려먹든, 내다 팔든 무슨 상관이 있겠어. 안 그래? 애초에 사람이 아닌데 무슨 짓을 하든 무슨 상관이겠나고.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하는지 모르겠지? 하아. 그러게. 나도 내가 왜 이 이야기를 당신 같은 사람에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당신은 내 애인과는 다르게 말이 통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그래도 내 애인은 자기가 다른 신들을 너무 쉽게 가짜 신이라고 이야기하고, 악마화한 것에 대해 사과했는데 당신은 자기가 뭘 한 건지도 모를 것 같거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지? 자 두 번 말 안 할테니 잘 들어.

 

당신 말야. 못생기거나 뚱뚱한 여자가 지나가면 그 공기마저 맡기 싫어서 숨 참는다고 했지? 그게 그 사람들을 당신과 같은 사람으로 여기면 할 수 있는 행동일까? 그 사람들도 당신과 똑같이 지나갈 때 누군가 대놓고 숨 참고 있으면 아 나한테서 냄새난다고 저러는 건가? 나 오늘 씻었는데? 그러고 기분 나빠할 ‘사람’이라는 걸 알면 그럴 수가 없어. 사람이라는 게 자기 칭찬하는 건 잘 몰라도 누가 자기 욕하는 건 금방 아는 존재거든? 그걸 안다면 그럴 수가 없단 말야. 게다가 누군가와 같은 공간에 있기조차 싫다? 그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 남아 있는 공기마저 맡기 싫다라는 게 얼마나 모욕적인지 알아? 누군가 나의 존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 같은 그 기분이 어떤 건지 아냐고? 당신이 그런 취급을 당하면 화낼 거면서 왜 뚱뚱하거나 못생긴 여자한테만 그러는 건데? 누누이 말했다시피 그건 당신이 그 사람들에 대해 똑같이 모욕적인 기분을 느낄 사람이라고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야.

 

무슨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진짜 그래.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당했을 때 기분 나쁜 건 절대 할 수가 없어지거든. 내가 저 사람이라면 어떨까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째보든, 곰보든, 뚱보든 같은 공간에 있기 싫다고 숨을 참는 그런 모욕적인 행동은 하지 않게 된단 말이야. 왜냐?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다는 건 나 역시 그 사람처럼 뚱뚱했을 수도, 못생겼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니까. 내가 언제 어디서든 그 사람의 처지가 될 수 있음을 알고, 나는 그저 운이 좋아 그 사람의 처지가 되지 않았을 뿐이라는 걸 아는 거니까.

 

그래. 이걸 한 단어로 역지사지라고 하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설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고. 그런데 당신은 그게 안 되는 걸 보니 당신이야말로 사람이 안 된 것 같군. 당신 잘 들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측은히 여기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 공감하기에 사람인 거야. 그렇지 않으면 그건 사람이라 할 수 없어.

 

당신 여자친구도 그걸 알기에 사람이 안 된 당신과는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거야. 그래서 쓰레기 새끼라고 냉랭하게 대하기 시작했을 거고. 그런데 어떻게 수습이 가능하냐고? 응 불가능해. 당신이 그 마음보를 뜯어고치지 않는 한 말이지. 하지만 당신이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고. 그렇다면 더 이상의 상담이 시간 낭비일테니 이 한 마디만 하고 끝내도록 할게.

 

외모가 못생기거나 뚱뚱하다 해서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건 모든 인간은 같은 사람이다.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때야 당신이 사람이 된 것일테니 지금은 나도 상담을 끝내는 인사를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이제 그만 가도록 하고. 당신 덕에 나도 무심코 그런 적은 없었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으니 반면교사로서는 고맙다고 하고 싶네. 그럼 이만 잘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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