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한연화] 사실 TV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내고 직접 출연할 만큼 중대한 고민이 아닐지라도 누구나 크고 작은 고민을 갖고 살아간다. 보통 사람들은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거나 속앓이를 하겠지만 나름 용기를 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자기 스토리를 공유하기도 한다. 그런 스토리들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진지하게 풀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연화의 뼈때리는 고민상담소’를 기획하게 됐다. <편집자 주>
장거리 연애에 대해 말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장거리 연애에 대해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해요. 왜냐면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그 관계는 불안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연애하면 무슨 일이든 얘기하고, 서운하고 속상한 게 생기면 바로 얘기하는데, 이번 애인은 그러는 걸 싫어하더라고요. 대학교 선후배로 알던 사이인데, 그렇게 서운한 걸 얘기하면 너무 지쳐하고, 제가 서운한 걸 이해를 못 하겠다고. 그러면서 나중에는 매번 이렇게 서운한 거 얘기하면 나랑 연애 못 해먹겠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제가 사과하고 그때부터는 조심하고 있지만요. 그래서 문득 이 연애를 이어 나가는 게 맞나 생각이 들었어요. 좋아하고 사랑하는 건 확실한데, 이야기를 해도 안 맞는 게 생기니 고민하게 되고 그래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민글 출처 : 전국대학생대나무숲1 / 2022년 10월16일>
일단은, 흔히들 하는 말로 시작해볼게. 흔히 그러잖아.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안 한다.’ 사실, 나는 이 말이 인간관계에 있어 정답이라고 생각해. 님이 지금 하고 있는 장거리 연애든 아니면 친구 사이든, 하다 못 해 부모 자식 간에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 쪽이야.
누군가에게 공을 들이고 그만큼의 기대를 한다는 건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거든. 내가 이 사람과의 관계를 위해 이 정도 노력을 하니 이 사람도 나와 계속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하겠지? 일종의 그런 기대랄까.
그런데 지금 님의 남친에게서는 유감스럽게도 기대할 것이 없어 보여. 님은 장거리 연애라는 특수한 관계 때문에 더 노력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서운한 것이 있으면 바로 바로 이야기를 해서 푸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나 이러이러 한 거 서운해라고 이야기를 한 모양인데 남친은 그게 아니잖아. 그저 내게 서운하다 말하는 여자친구가 귀찮고 짜증나는 거지. 내 눈에는 그렇게 밖에 안 보여.
그냥 아무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유지되는 관계? 나는 노력을 전혀 안 하고 상대만 죽어라 노력하는 관계? 남친은 지금 그걸 원하지 않나 싶어. 그러니까 자기에게 서운하다고 하는 여친이 이해가 안 되고, 짜증나고, 귀찮고, 자기 입으로 너랑은 못 해먹겠다고까지 하는 거지.
나는 아무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너만 노력하면 이 관계가 유지되는데 대체 왜 그래? 그냥 입 다물고 일방적으로 너만 노력해. 그렇지 않으면 나는 너랑 못 해먹겠어.
모르겠어? 지금 님의 남친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야. 기대가 계속 되면 실망할 게 두려워 기대를 안 하게 되듯이 지금 님도 지쳤을 거야. 나만 노력하는 관계에 지쳐서 이런 글 올린 거 아냐? 맞잖아. 이제 더 이상 지치기도 싫고, 노력도 무의미한 것 같다고 님은 스스로 말하고 있어. 그런데 왜 못 놓고 있냐고? 그거 간단해. 내가 그동안 들인 노력이, 남친한테 했던 기대가 다 허사가 될 것 같으니까. 내가 남친과의 관계를 놓아버리는 순간, 그 모든 게, 그 시간들이, 아니, 그렇게 이루어졌던 내 삶의 한 부분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어버릴 것 같으니까.
하지만 그게 무서워서 일방적으로 노력하는 관계를 유지하며 기대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하는 건 님 인생에 좋지 않아.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기대하고 노력하는 일을 망설이게 된다? 왜냐, 이 사람한테 기대하고 노력했다가 그 XX한테 노력하고 기대했을 때와 같은 꼴이 나게 될까봐. 그러다 보면 자연스러운 인간관계 그런 거 못 맺을 날이 올 수도 있어.그러니까 여기서 끝내. 이제 그만 혼자서 기대하고 혼자서 노력하는 거 끝내. 일방적으로 노력하면서 이 관계 유지하는 거 끝내고 같이 노력할 사람을 찾아. 당장은 어렵고 힘들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 편이 당신 인생에 이로워. 그건 내가 장담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