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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연화의 뼈때리는 고민상담소⑲] ‘경기도민’에게 서울로 와달라고 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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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한연화] 상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 당신의 사연은 상담거리가 아니라는 걸 미리 알려주고 시작할게. 고민을 상담한다는 건 누군가의 고민을 듣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해준다는 의미로 많은 사람들은 이해하고 있고, 또 내게 고민을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 역시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자신의 고민이 해결되기를 바라며 오는 건데 오늘 당신의 사연을 들어보니 이건 뭐랄까. 마치 그냥 푸념 같아. 해결책도 없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서 뭐 어쩌라고?” 싶은 하나마나한 이야기인데 이걸 상담거리라고 볼 수 있을까? 뭐, 당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내가 보기에 이건 상담거리 축에도 끼지 못 하는 이야기이니 그냥 나도 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할게. 당신도 굳이 상담을 받기보다 그냥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했던 것 같으니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저는 경기도 통학러입니다. 경기도에서 서울 가나 서울에서 경기도 가나 똑같은 거린데 왜 서울 사람이랑 경기도 사람이랑 만날 때 서울에서 만나는 게 당연하고 경기도에서 만나는 건 경기도로 '가주는 것'인가요? 특별한 전시나 공연 보는 것도 아니고 밥 먹고 카페 가는데 꼭 서울에서 만나야 되는 법은 없잖아요. ㅠㅠㅠ 경기도도 사람 사는 덴데 맛집도 많고 예쁜 카페도 많아요. ㅠ 경기도 멀다고 한 번 오는 게 엄청난 일을 해주는 것처럼 얘기하는데 나는 맨날 경기도에서 서울로 통학한다 친구야!!!! 물론 서울에서 만나는 거 좋죠. 자취하면서 홍대나 대학로로 나오는 것도 그 친구한테는 일일 수 있죠. 그래도 너무 생색내지는 말자는 겁니다. 1시간 동안 버스 타고 지하철 타는 거에 익숙해지고 무뎌졌을 뿐이지 경기도러도 서울 왔다 갔다 하기 쉽지 않아요. 힝. <고민글 출처 : 전국대학생대나무숲 / 2020년 10월27일>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려주자면 나도 경기도민이야. 경기도에 사는 사람을 이렇게 만나게 되었지만 반갑다는 소리는 하지 않을게. 같은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반가워야 한다면 세상에는 반가워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말이야. 정작 내가 만나게 되는 사람 중에 내가 진정으로 반갑게 맞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데 굳이 인사치레로 반갑다는 말을 쓰는 걸 지면에서만은 하지 않고 싶어. 더구나 그게 꼭 필요한 일도 아닌데 말이지. 아무튼 서론은 여기서 집어치우고, 당신의 이야기에는 나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는 얘기를 먼저 하고 싶어. 나도 경기도민이라서 서울 사는 사람들과 약속 잡을 때마다 비슷한 걸 느끼거든.

 

아니, 당신 말처럼 대체 서울 사는 사람들은 왜 매번 약속 잡을 때마다 약속 장소를 서울로 잡는 거야? 서울 근교에 있는 경기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여기는 거야? 당장 코레일에서 운영하는 지하철 1호선이며,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광역버스만 놓고 봐도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거나 통학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마치 서울에만 사람이 사는 것처럼 매번 약속 장소를 서울로 잡잖아. 무슨 모임을 하려 해도 약속 장소는 항상 서울이고, 심지어 경기도 사는 사람에게는 “오, X발!” 소리가 나오는 저기 멀리 건대나 사당, 강남 이런 데로 약속 장소를 잡기도 하지. 아니, 이 서울 양반들아, 경기도민에게는 당신들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갈 수 있는 홍대, 합정, 망원, 종로, 대학로가 기본이 1시간 거리라고요. 거기에 편도만 치나? 왕복도 쳐야지. 왔다갔다 하다 보면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녹초가 되는데 왜 매번 서울로 오라는 건데요, 대체. 

 

그래, 물론 당신 말처럼 서울 안에서 산다고 해도 홍대나 합정, 망원, 종로, 대학로가 편도 1시간, 왕복 두 시간 거리일 수 있어. 하지만 경기도민은 매일 그걸 겪는다고. 나야 일하는 곳이 서울이 아니라 출퇴근을 매일 서울로 하지는 않지만 출퇴근이나 통학을 매일 서울로 하면서 황금 같은 휴일마저 서울로 와달라는 건 와, 뭐랄까, 휴일에도 회사나 학교에 다시 가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지. 그런데 휴일에 친구 만나거나 모임 장소를 잡으려고 하면 항상 서울로 오라니. 정말 이렇게 되면 “너네는 쉬는 날에 회사나 학교 근처에 또 가고 싶냐? 참 대단하다.” 소리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지. 자, 서울 양반들, 당신들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아시겠죠? 응? 아직도 모르겠다고? 모른다면 또 친절하게 설명을 해드려야지 뭐.

 

경기도민은 신경 써야 할 게 또 있어. 바로 막차. 왜 저녁 약속을 잡거나 놀다가 저녁 때가 되면 경기도 사는 사람들이 자꾸 카카오맵이나 네이버 지도, 구글 지도 켜보는지 알아? 바로 막차 시간 때문이야. 경기도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에서 직통으로 집에 가는 경우보다 버스나 지하철로 환승해서 집에 가는 경우가 많은데 노선별로. 또 같은 노선이라고 해도 방면별로 막차 시간이 다 달라. 더구나 주로 약속을 잡는 주말에는 막차가 더 빨리 끊기지. 나만 해도 집에 오려면 1호선 인천 방면 막차 시간을 무조건 칼같이 맞춰야 하고 말이야. 만약에 정신없이 놀다가 막차가 끊기면? 그때는 말 그대로 뭐 되는 거지. 서울에서 경기도까지 택시 요금이 얼만데 택시를 타고 갈 수 있을 것 같아? 또 주말에는 모텔비도 비싼데 방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애초에 모텔비 자체가 부담인데 말이야. 이런 사정이 있어서 나 막차 시간 때문에 집에 가야 한다고, 열시 정도면 막차가 위험해진다고 아무리 얘기를 하면 뭘 하냐. 이건 뭐 소 귀에다 대고 불경을 읽어주는 게 낫지. 이놈의 서울 양반들은 자꾸 “아직 시간 많잖아?” “더 놀다가.” “나 집에 가기 싫어.” “좀만 더 있다 가.” 이런다고. 정말 더한 양반들은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남의 집이 편할 거 같냐, 내 집이 편할 거 같냐? 

 

진짜 당신 말 다 맞아. 우리의 서울 양반들은 경기도민들의 고충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지. 경기도에도 놀 데 없는 거 아니라고. 그러니까 내가 사는 데로 한 번 오라고 해도 “언제 한 번 갈게”라고만 하지 다음 약속 장소를 보면 또 서울이네. 대체 그 “언제 한 번”은 언제야 한 번인데요? 경기도 사람들은 매번 너네랑 노느라 왕복 기본 2시간 거리에 녹초가 되고, 막차 시간에 마음 졸이며 서울로 가는데 너네는 왜 경기도에 올 생각은 안 하는 건데요. 대체 왜? 경기도민이 대여섯 번 서울로 가주면 너네도 한 번쯤 경기도에 와주는 게 예의 아니냐고. 

 

어쨌든 상담 자리에서 이렇게 흥분해보긴 나도 오랜만이네. 그러니까 서울 양반들은 제발 경기도민 사정도 좀 생각해서 약속 장소 서울로만 잡지 마시고 경기도로 한 번쯤은 오시고요. 막차 때문에 가야 한다는 사람 있으면 더 놀다 가라고 붙잡거나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하지 좀 마세요. 네? 그리고 내게 상담이 아닌 푸념을 들어주는 것을 기대하고 이렇게 찾아온 당신, 언젠가는 진정으로 반갑다고 여기며 인사 나눌 날이 있기를 바랄게. 그럼 이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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