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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고민상담소 사연 “부모 같지도 않은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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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한연화의 뼈때리는 고민상담소] 60번째 사연입니다. 한연화씨는 알바노조 조합원이자 노동당 평당원입니다. 뼈때리는 고민상담소는 이번 60회를 끝으로 시즌1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1년 3개월간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매주 타골 사연을 소개해준 한연화씨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한연화씨는 그동안 사연들에 대해 직설적인 견해를 피력해오면서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봤던 좋은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평범한미디어는 반드시 시즌2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평범한미디어 한연화 칼럼니스트] 매번 느끼는 건데 이번에도 역대급 사연이 들어왔네. 하핫. 내가 이래서 술을 못 끊는다니까. 상담하다 보면 이거 술을 안 먹으면 상담이 안 돼요. 안 돼. 왜냐? 안 그러면 내가 내 성질 못 이겨서 고래고래 고함지르며 앞에 있는 것들 다 던질 수가 있거든. 각설하고. 일단 정말 고생 많았다는 이야기부터 해주고 싶네. 그동안 부모 같지도 않은 부모 밑에서 고생 많았을텐데 이제 인연 끊는 마당이니 온전히 스스로를 위해 살아. 행여 언젠가 결혼을 하거나 자식을 낳게 된다면 당신 부모와는 다른 좋은 배우자, 좋은 부모가 되도록 하고.

 

 

그러고 보니 노동당 당원이 이런 소리 하면 욕먹으려나? 단적으로 말하자면 “가난하면 자식을 안 낳는 게 맞다”고 생각해. 좌파정당 당원이 이런 소리 한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 그러고도 네가 사회주의자냐? 노동계급을 혐오하는 게 말이 되냐? 가난하면 자식 낳지 말라는 게 우생학이 아니면 뭐냐? 가난하면 자식 낳지 말라는 그 말이 장애가 있으면 자식 낳지 말라는 말과 뭐가 다르냐? 난리 난리 개난리가 날 게 뻔한데 미리 말해두지. 나는 노동계급을 혐오한 적이 없고 나 역시 경비노동자의 자식이고 현재 플랫폼을 통해 일하는 청소 및 가사노동자야. 내가 노동계급 혐오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은 이쯤 말해두기로 하고. 내가 왜 가난하면 자식 낳지 말라 하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지.

 

옛날에야 다들 찢어지게 가난해서 분홍소시지 하나만 계란 입혀 부쳐먹어도 부자 소리 들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런 절대적인 빈곤보다 상대적 가난이 더 크다는 건 다들 알 거야. 이 상대적인 가난이라는 거 정말 무시할 수 없는 거다? 아무리 돈이 많고 적고로 사람 판단하는 게 참 못 나고 돼먹지 못 한 짓이라는 거 알아도 솔직히 우리 중에 돈으로 사람 판단하지 않을 사람 없을 것 같아? 절대 아냐.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우리는 누군가의 능력과 수준을 그 사람이 가진 돈으로 판단할테고. 그건 어린애들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아. 요즘 휴거(휴먼시아 거지), 엘사(LH 사는 애), 빌거(빌라 거지)라는 말을 애들이 쓴다고 어른들이 개탄하는데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해. 우리는 이미 남보다 못 사는 것은 죄나 마찬가지인 곳에서 살고 있다는 걸. 이런 곳에서 가난한 이들이 자식을 낳는다? 하아 애가 받을 상처를 생각이나 하는 거야? 어?

 

그래. 뭐 이런 상처야 부모의 사랑쯤으로 이겨낸다 치자. 그런데 대부분의 흙수저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 자체를 몰라. 자식에 대한 사랑은 ‘자식이 나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라는 걸 모른다고. 나에게 내 목숨과 바꿔서라도 지켜야할 소중한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가는 걸 바라고 응원하는 게 당연할텐데 흙수저 부모들은 그게 아냐. 평생 동안 보고 배운 게 가난 밖에 없다보니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는 걸 상상하지 못 해. 그러다 보니 주위에 누군가가 행여 그게 자기 자식이라 해도 지금의 이 삶에서 벗어나려 하면 필사적으로 막고 보는 거야.

 

나는 여기 이렇게 나아가지 못 하고 고여 있는데 너는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거야? 왜? 왜 너는 나와 달리 나아가고 흘러가려 해? 네가 그렇게 나아가고 흘러가면 내가 여기 이렇게 멈춰서 고여 있는 건 잘못된 것처럼 보이잖아. 내가 이렇게 고여 있는 게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네가 입증해줘야지.

 

그러고 다시 자기와 똑같은 수렁에 빠지기를 요구하는 거지. 말 그대로 물귀신이랄까. 내 말이 좀 심한 거 아니냐고? 그럼 자기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자기가 다른 삶을, 더 나은 삶을 꿈꾸지 않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걸 타인에게 입증해달라며 지금의 삶 속에 고여 있어달라고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지는 게 물귀신이 아니면 뭐지? 나는 더 나은 표현을 찾을 수가 없는데 말야.

 

아무튼 그렇게 흙수저 부모들은 자식의 앞길을 망쳐. 지금 자기들이 더 고생하면서 자식이 좋은 대학 다니는 몇 년만 더 기다리면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못 견디고 자식한테 공부하지 말라고 악다구니를 쓰며 문제집 한 권 안 사주고, 그걸로 모자라 공부하는 자식에게서 책을 빼앗아 찢어버리기까지 하지. 당장의 돈 한 푼에 급급해하는 자기들의 삶을 자식에게도 똑같이 살라고 강요하며 다른 세상을 볼 기회 자체를 차단해버리는 게 흙수저 부모들이야. 하아. 진짜 묻자. 자식이 나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대체 자식을 왜 낳는 거야? 나랑 똑같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면서 천원짜리 한 장에도 손이 벌벌 떨리는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대체 자식을 왜 낳는 거냐고? 짐승도 자기 여건이 좋지 않으면 짝짓기를 중단하거나 낳은 새끼를 죽이는데 하물며 니들은 사람이잖아. 사람인데 왜 자식을 낳는 거냐고. 결국 자식에게도 나와 똑같은 삶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요할 거면서 자식을 왜 낳는 거냐고?

 

 

그러니까 내 말의 논지는 물려줄 재산 없으면 자식 낳지 말라는 게 아냐. 자식에게 나와 똑같은 삶을 강요하고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는 기회마저 앗아갈 거면 자식을 낳지 말라는 거지. 그런데 그걸 대부분의 가난한 흙수저 부모들이 하고 계시고 말이지요. 누누이 말하지만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대로 앉아서 죽을 거면 너나 그렇게 살다 죽으세요. 네 자식이 나아가는 것까지 방해하지 말고. 그게 안 되면 자식을 낳지 말고. 자식을 낳는 것은 네 선택이었지만 자식은 태어나는 것을 선택한 적이 없는데 부모가 이 모양 이 따위인 것뿐이니까 말이야. 자 오늘 이야기는 이걸로 끝.

 

그리고 이제 고민상담소도 이번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는 얘기를 하려고. 그동안 당신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면서 사실 나를 돌아보고 있었거든. 내가 왜 나아가지 못 하고 멈춰있는지. 왜 흘러가지 못 하고 고여있는지. 이제 그 답을 찾았고 나 역시 나아가고 흘러가려 해. 그러니 당신들도 어딘가로 나아가고 흘러가기를 바라며 고민상담소의 문을 닫을게. 그렇다고 영원한 이별은 아니니 너무 아쉬워하지는 마. 시즌2로 돌아오든, 다른 글로 만나든, 반드시 돌아올 테니까. 그럼 다시 만나는 날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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