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넷플릭스로 고퀄리티의 영상 컨텐츠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걸까? 코로나 3년으로 감을 잃어버린 걸까? 영화 티켓값이 너무 비싸서? 결국 다 핑계에 불과하다.
본격적으로 모든 곳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2023년 상반기 극장가에서, 외국 영화들은 꽤 잘 되고 있다. 한국 영화의 티켓 점유율은 전체 대비 4분의 1 수준이다. 올 상반기에 개봉한 주요 한국 영화들은 전부 손해본 장사였다. <유령> 66만, <교섭> 172만, <대외비> 75만, <리바운드> 69만, <드림> 112만 등등. 다만 <범죄도시3>의 흥행은 한국 영화 위기론과 무관하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흥행 공식이 먹혀들어간 것 뿐이었다. 한국 영화 전반이 처한 궁핍한 상황을 상쇄할 수 없다. 물론 탈코로나 시대, 다시 한 번 한국 영화계가 위기를 딛고 굳건히 일어설 수도 있다. 7월과 8월에 개봉할 <밀수> <더 문>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의 한국 영화들이 어떤 성적표를 받게 될지 지켜봐야 한다. 작년 이맘때처럼 <범죄도시2>만 대박 나고 나머지 빅4(<외계인> <한산> <비상선언> <헌트>)는 쪽박 또는 손익분기점만 겨우 넘기는 우울한 현실이 재현되지 말란 법은 없다.
이동진 영화평론가는 “나 역시 위기라고 생각한다”면서 “다만 이게 어느정도의 위기인지 알기 위해선 3개월 정도(여름 시즌 끝날 때까지)가 지나야 정확히 볼 수 있다. 올해 대표 영화들은 아직 개봉하지 않았다. 8월 광복절 즈음이 되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 평론가는 9일 업로드된 유튜브 채널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한국 영화 위기론에 대해 논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핑곗거리 두 가지가 바로 ‘비싼 티켓값’과 ‘OTT 환경’이다. 영향을 미치긴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평론가는 한국 영화가 침체기에 빠진 근본적인 이유는 이 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론적으로 관객들의 눈높이를 충족시켜줄 좋은 영화를 못 만들어낸 것이 핵심이다.
이 평론가는 “(한국 영화들이) 너무 패턴화되어 있고, 질적으로 저하돼 있거나, 지나치게 장르화·공식화되어 있다”며 “지금 한국 영화의 위기는 한국 영화 창의성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하나씩 짚어볼텐데 우선 이 평론가는 비싼 티켓값에 대해 “가뜩이나 극장가에서 예전에 비해 볼만한 영화들이 적다고 느끼는 관객들한테 심지어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을 요구한다는 것은 극장가의 패착”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이 평론가는 영상 매체의 다변화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다. 이 평론가는 “훌륭한 감독이 OTT용 6~7부작 영상을 만들어서 그걸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면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확장된다면 그것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면서 “반드시 다른 매체보다 극장 영화만이 잘 돼야 한다는 것은 공급자의 입장”이라고 꼬집었다.
영화를 즐기는 형태도 달라질 수 있다. 6부작 영화나 드라마가 계속 나오고 (그런 형태가 주류로 자리잡았다고 해서) 그게 반드시 영화 예술의 퇴보로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보지 않는다. 기술 발전에 따른 영화의 존재 형태가 계속 바뀌는 것이다.
단적으로 봤을 때 올 상반기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이 합계 대략 1000만 관객을 동원했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와 <존윅4>는 전작들에 비해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냈다. 특히 한국 영화와 외화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이 평론가가 직접 소개한 것인데 2017년부터 코로나 직전 2019년까지 3년간 연평균 상반기 매출액과 올해 상반기 매출액을 비교해봤을 때 외화는 93%로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지만, 한국 영화는 50% 이하로 큰 타격을 입었다.
극장가에서 모든 것이 회복되고 있고 외국 영화를 보는 관객은 다시 늘어서 옛날 수준을 찾고 있는데 왜 유달리 한국 영화만 과거에 비하면 점유율이 채 30%가 안 되고 있는 걸까. 내가 알기로는 30%가 안 되는 것은 거의 20년만이다.
그동안 한국 영화계의 위기가 없었던 게 아니다. 이를테면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반 서울 올림픽 개최를 기점으로 헐리우드 주요 직배사들이 한국으로 진출 △1990년대 후반 일본 영화 개방 △2000년대 초중반 스크린쿼터 투쟁 등이 상징적이다. 이 평론가는 과거의 위기들에 대해 “공통점이 있다”며 “영화 산업에 대한 정책이나 외부적인 틀의 변화와 관련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영화 산업에서 일어난 변화와 관련된 위기였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작금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 평론가는 “여태까진 공급자 중심의 위기였다면 지금은 수요자 중심의 위기”라고 말했다.
지금의 위기가 왜 생겼냐면 공급자는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거다. 그게 바로 문제다. 한국 장르 영화를 만든다고 하면 이렇게 기획하고, 어떤 배우를 캐스팅하고, 어떤 감독을 써서 만들면 된다는 공식이 30여년간 통했고 확대되는 방향으로 성공도 하고 그랬다. 약간 한국 영화가 앞에서 관객들을 견인하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관객들이 이런 한국 영화들에 대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싫증을 느끼고 있다.
사실 OTT가 영상 매체의 주류로 자리잡고 사람들이 집에서 고퀄리티의 영상물을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도 영화 산업이 직면하게 된 구조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코로나 직전에 보던 만큼 극장에 가서 외화를 충분히 보고 있다. 한국 영화만 덜 보고 있다. 그렇다면 분명 이 평론가의 설명처럼 수요자의 변화가 현저해졌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해왔던대로 해도 평타 이상의 성공을 거두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 시대는 진작 지나갔다.
지금의 위기는 한국 영화의 천편일률적인 필름메이킹에 대해서 그걸 그냥 계속 봐주면서 따라가는 방식을 취했던 관객들이 훨씬 더 주도적으로 우린 이제 그렇게까지 안 봐! 그런 어떤 태도의 변화나, 한국 영화에 대한 심판 등 이런 것들과 관련이 있다. 지금 이 변화는 기존의 변화와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존에는 투쟁을 해서 잘못된 정책을 없애거나 영화사에서 돈을 더 많이 끌어오면 해결되는 것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왜냐면 관객들이 한국 영화를 대하는 태도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톡 까놓고 말해서 “지금 한국 영화의 위기는 한국 영화의 창의성 문제”라는 것이 이 평론가의 생각이다. 관련해서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미디어오늘에 게재한 기획 칼럼을 통해서 그간 한국 영화계가 잘 나가는 대형 영화 제작사와 배급사 중심으로 “산업 육성”의 차원에서만 집중했는데, 위기론이 대두된 현재 다시 그런 방식으로 위기를 타파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제언했다. 그렇게 파이 키우기 일변도로만 흘러갔던 것의 결과가 바로 “한국 영화 창의성의 문제”로 대두됐다.
한국 영화의 정책이나 어젠다는 그간 ‘산업 육성’에만 초점이 맞춰졌을 뿐, 영화를 관람하는 ‘문화’적 상황에는 거의 없거나 지극히 적은 관심을 보여왔던 것이 컸다. 모든 산업이 그렇듯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같은 체급의 차이를 피할 수는 없지만, 마치 대기업 위주의 산업 정책처럼 한국 문화 산업 역시 전체적인 크기를 키우기 위해 ‘일단 잘 될 것들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 상황에서 산업의 틀도 그에 맞게, 작품을 보는 시민의 시각도 그 산업적 일변도에 맞게 굳어졌다. 위기가 찾아오자 누군가는 다시 ‘위기론’을 말하며 변화를 말하지만, 그 변화의 방식이 역설적으로 지금의 위기를 초래한 방법론을 벗어나지 못 한다면 더욱 구조적 위기의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단순한 위기론의 제기가 아니라, 지금까지 놓인 길을 차근차근 점검하며 위기의 근원을 사고하는 움직임. 그것이 진정으로 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작년 연말 김태호 피디는 강연 자리에서 “국민 드라마와 국민 예능이 쉽지 않은 시대가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평론가도 “영화 말고도 예능을 봐도 압도적인 국민 예능 이런 게 없어졌다”면서 “<무한도전>이나 <1박2일>처럼 완전히 사람들의 화제를 독점하는 이런 게 없어졌다. 플랫폼이 다변화되는 등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사람들이 점점 더 획일화에서 다양화로 바뀌는 것 같다”고 밝혔다.
지금은 스타들도 모든 사람에게 다 통하는 유재석 같은 인물이 있겠지만 많은 경우에, 나는 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200만명 정도쯤 되는 그룹 입장에선 어마어마한 스타다. 이런 인물들이 굉장히 많다. 이번 상반기에 일본 애니메이션이 잘 된 것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2019년에 천만 영화가 다섯편(<어벤저스 엔드게임> <기생충> <극한직업> <겨울왕국2> <알라딘>) 나왔다. 그런 식으로 천만 영화가 견인한다기 보다는 소위 500만에서 7~800만 정도의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지렛대도 그 정도를 생각해서 만드는 영화들이 많아져야 한다.
텐트폴 영화를 만들더라도 “최대 다수의 최대 만족”을 노리는 천만 영화가 아닌 어느정도의 틀을 갖춘 ‘500만 영화’로 선회해야 한다는 것이 이 평론가의 해법이다. 그에 부합하는 영화 두 편이 있는데 바로 작년에 개봉한 <헌트>와 <올빼미>다. 이 평론가는 “이런 영화가 잘 돼야 한다”며 “그런 식의 기획과 그런 정도의 퀄리티가 있는 영화들이 1년에 여러 편 나오면 그게 가장 관객의 변화와 맞는 영화의 외적인 형태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어떤 면에선 대중 영화도 점점 개성을 찾아야 한다. 뭐 어떤 사람들은 (500만 영화로 불리는) 그 영화를 아예 안 보겠지만 어느 규모에서 그 정도의 관객들은 보게 되는 영화들로 다변화되어야 한국 영화가 대중들의 사랑을 다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평론가는 “이 위기를 한국 영화인들이 극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왜냐면 내가 보아온 한국 영화인들은 개개인을 떠나 굉장히 우수한 집단이자 일을 열심히 하고 기본적으로 창의적이다. 이런 위기에서 그냥 주저앉아서 과거의 홍콩 영화처럼 쇠락해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구체적으로 “프로덕션 능력”의 표준적인 퀄리티가 굉장히 우수하기 때문이다. 이 평론가는 “<교섭>이나 <모가디슈>만 봐도 해외에서 그 정도의 규모로, 그 정도의 엑스트라로, 그 정도의 국내외 스태프들로 그렇게 생소한 환경에서 그런 영화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며 “프로덕션 능력이 굉장히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다. 1명의 뛰어난 배우와 감독이 아니라 시스템이 만든 영화”라고 예를 들었다. 이 평론가에 따르면 프로덕션 시스템의 정점에 위치한 작품이 바로 <기생충>이다.
봉준호라는 엄청 뛰어나고 탁월한 영화 예술가가 만들었지만 그걸 떠받치지 못 하는 시스템이었다면 우리가 즐겼던 그 영화의 많은 부분이 허물어졌을 수도 있다. 미술이나 촬영 등 많은 부분들의 측면이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영화의 부활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영화는 기본적으로 어느 일정한 퀄리티 이상의 외적인 부분을 뽑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 돼 있다. 이 시스템은 20~30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드물게도 이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만드는 사람들이 여전히 우수하다.
다만 이 평론가는 “단순히 1~2년 안에 해결되긴 어렵다. 창의적이려면 창의적인 사람들이 들어와야 하고 그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있어야 하고, 그들에게 보상이 충분히 돼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꽤 어둡다”며 “예전 만큼 훌륭한 영화 인력들이 잘 보충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진단했다. 이 평론가는 그 근거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그래도 이 평론가는 “한국 영화가 만들어지는 시스템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나에겐 있다”며 “결국 과거에도 이겨냈듯이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란 믿음을 나는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배우 출연료 인플레이션과 직결되는 스타 파워에 대해 이 평론가는 “한국 영화의 스타 시스템이 확고한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약하다. 옛날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고 말했다. 사실 한국 배우 올스타들이 출동한 <비상선언>의 성적표만 봐도 확인할 수 있다.
<드림>만 봐도 아이유나 박서준이 나오고 이병헌 감독도 스타다. 그런데 완벽하게 외면에 가까운 처지가 됐다. 그동안 한국 영화를 이끌어온 것은 스타 파워가 아니다. 한국 영화 산업에서 스타는 최소한이다. 사람들이 규모가 어느정도 되는지 가늠하는 정도다. 스타로 움직이는 시장이 전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