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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영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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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낭만은 없어
지루하고 의미없는 참호전의 연속
참호족
소모전
탱크의 등장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싶은 동기부여가 될 만큼만 읽다가,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면 그만 읽고 바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좋다.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쉬는 날 넷플릭스에서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봤다. 2022년에 새롭게 리메이크 됐는데 원작은 1929년 레마르크 작가가 집필한 반전 소설이고 이번 포함 세 차례나 영화화됐다. 원래 전쟁 영화 매니아라 꼭 보고 싶었는데 대성공이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참혹한 전쟁터를 보여준다. 시신이 된 병사들이 불태워졌으며 이들이 착용한 군복과 군화 등 용품들은 모두 빨래 공장으로 보내져 세탁 후 재활용되고 있다. 이곳에서 관을 불태우는 사람들, 세탁 공장의 직원들은 모두 무덤덤한 표정으로 업무를 수행한다. 그야말로 ‘죽음이 일상화’된 공동체다. 수 십명 수준이 아니다. 수 만명씩 사람이 죽어나가다보니 점점 죽음에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세탁물에서 어마어마한 핏물이 나와도 감정의 동요없이 빨래를 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공간에서는 환희와 국뽕에 들뜬 독일 청년들이 등장한다. 인정 욕구는 오직 군인다움과 참전으로만 충족된다. 파울(펠릭스 카머러 배우)은 친구들과 동반 입대를 하기 위해 부모님의 사인까지 조작한다. 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호승심과 사기를 고취시키는 연설을 한다. 선동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넘쳐난다. 학생들은 전쟁터에 가고 싶어 안달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쟁 영웅이 되어 금의환향을 하는 것만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진다. 여자들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가장 빠른 방법 역시 참전해서 무공을 쌓는 일이다. 

 

전쟁터로 향하는 여정은 즐거운 마음이 가득한데 갈수록 가관이고 어이가 없는 장면들의 연속이다. 마치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는 것만 같다. 사실 감옥 가기 싫어 어쩔 수 없이 입대를 하는 징병제 국가의 청년들 중에 들뜬 사람은 1도 없다. 실소가 나왔다. 왜 이런 웃픈 상황이 발생했을까? 역사적 배경이 있다. 벨에포크 시대(1815~1914)는 나폴레옹 전쟁이 종식되고 유럽에서 전쟁이 없던 평화의 시대를 의미한다. 전쟁이 로망으로 여겨지던 시대에서 자란 청년들은 전쟁의 실상을 알지 못 한다. 

 

그러나 전쟁은 참혹하고 비참하다. 자발적으로 전쟁터로 향한 독일 청년들은 이내 생지옥을 마주하게 된다. 낭만 따윈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만이 있을 뿐이다. 지리한 참호전이 병사들을 기다리고 있다.

 

 

1차 대전의 전투 양상은 참호전 그 자체였다. 영화에선 기다란 참호를 파놓고 프랑스군과 독일군이 대치하는 모습이 나온다. 참호 속에 있다가 신호가 떨어지면 돌격하는데 앞에서 날라오는 기관총의 총알받이가 되기 일쑤다. 운 좋게 상대의 참호를 탈취해도 상대방은 또 뺏는다. 이렇게 뺏고 뺏기는 패턴이 계속되는데 <고지전>을 떠올리면 된다. 고작 100미터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청년들이 부서져간다. 생명 경시가 만연하다. 의미없는 소모전의 연속이다. 

 

참호 상태는 엉망진창 흙탕물 천지였고 더러운 물 속에 계속 발을 담그고 있으니 발에는 진물이 나서 움직이지 못 할 정도가 됐다. 일명 '참호족'이다. 더러운 물에 젖은 발이 썩어들어가는 것이다. 심지어 발을 절단하는 경우도 있다. '셀쇼크'도 무섭다. 계속되는 포격으로 인해 정신 상태가 망가지게 된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1년이 지난 1951년 7월부터의 역사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는데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까지 그 2년간의 참혹함 역시 양상이 비슷하다.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최태성 강사는 "2년 동안 계속 휴전 협상을 하는데 무려 700여차례 회의를 한다. 중요한 건 그렇게 회의를 진행하는 동안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6.25 전쟁으로 400만명의 사망자가 나왔는데 그중 300만명이 바로 그 2년간에 나왔다"고 말했다.

 

<고지전>의 시나리오를 쓴 박상연 작가는 "너무나 처참한 범죄"라며 "(휴전 협정이 체결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군사분계선을 설정하겠다는 합의 때문에 조금이라도 땅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전선에다가 그야말로 젊은 생명들을 들이부은 것이다. 폭탄을 퍼부은 게 아니라 생명을 부은 것이다. 처참한 역사"라고 강조했다.

 

 

식단도 열악했다. 당시 독일군은 먹을 게 없어 민가에서 가축 서리를 하고 있었다. 선임병 카트(알브레이트 슈흐 배우)와 파울은 민가로 가서 거위나 계란 등을 훔쳤다. 보급이 제대로 나온다면 도둑질을 할 필요가 없다. 도둑질로도 부족한 상황이 어김없이 닥쳐오는데 독일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어 순무를 갈아 넣은 빵을 먹어야 할 지경이 됐다. 아무 맛이 나지 않는 무덩어리를 그냥 살기 위해서 입에 욱여넣는 거다. 이들이 프랑스 참호를 일시 점령하고 한 일은 프랑스군이 먹다 남긴 빵과 소시지를 허겁지겁 먹는 것이었다. 언제 적이 뒤에서 총을 쏠지도 모르지만 순무빵만 먹던 독일군 입장에서 제대로 된 소시지를 보니 눈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나마 프랑스군은 보급 사정이 독일군보다 나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휴식은 여기까지였다. 곧이어 지축이 울렸다. 놀라서 나간 독일군의 눈앞에서는 거대한 철제 괴물이 자신들을 향해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탱크의 등장이었다. 탱크라는 괴물은 1차 대전에서 처음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탱크 외에도 비행기가 전투기로 쓰인 전쟁이 1차 대전이었다.

 

 

탱크는 참호전을 타개하기 위해 발명됐다. 철갑으로 둘러진 탱크를 앞세워 상대의 총탄과 수류탄으로부터 방어를 한 이후에 보병들이 줄줄이 따라와서 참호를 점령하는 방식이다. 탱크의 무한궤도는 험난한 지형에서도 기동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당시 탱크의 파훼법은 같은 탱크로 상대하든지 아니면 목숨 걸고 탱크 근처로 가서 해치를 열고 안에 슈류탄을 까 넣던지 둘 중 하나였다. 어쨌든 탱크의 등장으로 독일군은 연전 후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도망가는 파울의 등 뒤에서는 끔찍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 장면은 너무 충격적인데 화염방사기를 든 프랑스 병사들이 참호에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 한 독일군들을 모조리 불로 태워버리는 것이다.

 

탱크를 처음 본 독일군들의 절망이 화면 너머 관객의 뇌속으로 침투하는 것 같았다. 탱크는 곧 괴물이었다. 이 괴물은 아무리 소총을 쏘고 기관총을 갈겨도 흠집 하나 나지 않고 그대로 돌진해온다. 얼마나 무섭겠는가? 일단 도망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영화에서는 탱크의 등장과 탱크를 처음 본 병사들의 감정이 리얼하게 묘사됐다. 

 

 

프랑스군은 무덤덤하게 낙엽이나 쓰레기 태우듯 잔혹한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했다.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드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도망가던 파울은 참호 안에서 한 프랑스 병사를 만났다. 그곳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다가 프랑스 병사는 파울의 칼에 맞아 의식을 잃었다. 살기에 휩싸여있던 파울은 정신을 차리고 프랑스 병사를 살리려고 노력하지만 이내 실패한다. 그리고 그 병사의 품 안에서 가족사진을 발견하고 이내 오열한다. 사실 전쟁 영화의 클리셰 중 하나이지만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 병사들은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다.

 

살기에 휩싸인 파울을 탓할 수도 없다. 전시와 평시는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상대가 나를 죽인다. 누구라도 전쟁터에 나온 병사라면 반드시 적군을 죽여야만 한다. 국제법상 전쟁의 룰이 있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살인이 정당화되는 곳이 전쟁터다. 그 누구도 악역이 아니거나 모두가 악역이다. 사실 독일 병사와 프랑스 병사 모두가 피해자일 뿐이다. 

 

처참한 상황이 지속되자 화친파가 등장해서 휴전 협정을 꺼내기 시작한다. 더 이상 무의미한 희생을 방치할 수 없다는 의견들이 대두된다. 유명 배우 다니엘 브륄이 협상파 정치인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로 출연한다. 하지만 협상은 지지부진했으며 그 사이에 의미없는 소모전은 계속되었다. 딱 <고지전>의 상황과 판박이다.

 

 

하지만 이런 협상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강경파 장군인데 그는 명예욕에 사로 잡혀있는 소위 말하는 ‘똥별’이었다. 자신의 무공을 위해서라면 병사 몇쯤은 얼마든지 죽어도 상관없는 사이코패스나 다름 없다. 그렇게 전쟁이 좋으면 본인이 무기를 들고 전장으로 가면 될 일이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병사들이 순무로 배를 채울 때도 그는 닭고기와 와인을 먹으며 전쟁 정세를 논했다. 이 장군은 전쟁이 끝나면 자신의 명예가 훼손될 것을 두려워하며 휴전을 초조해했다.

 

휴전 협정이 가속화됨에 따라 전쟁도 소강상태가 되었다. 병사들은 저마다 녹초가 된 몸으로 버텨가며 잠시 쉬고 있는데 곧 전쟁이 중지된다는 사실에 들뜬 병사들의 표정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드디어 휴전 협정이 발효됐다. 그러나 똥별은 병사들에게 휴전 협정이 발효될 때까지 약 20분 정도가 남았으니 한 뼘이라도 땅을 뺏기 위해 돌격하라는 의미없는 명령을 내린다. 다시 한 번 국가와 명예를 위해 돌격하라는 망언을 연설로 늘어놓는다. 병사들은 또 다시 그 지독한 전장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돌격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파울은 마지막 전투에서 숨을 거둔다. 그 이후 다른 병사가 처음 파울이 그랬던 것처럼 전사자들의 인식표를 무덤덤하게 수거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더 말해서 입만 아프겠지만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전쟁에 영웅은 없다. 물론 일방적인 침략을 당해 불가피하게 전쟁이 시작될 수는 있겠지만, 참혹함 그 자체인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외교력과 군사력을 최대치로 이끌어내야 하는 것이 통치권자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간 독일 병사들은 저마다 PTSD에 시달렸다. 어떤 병사는 장애인이 되어 평생을 힘겹게 살아갔다. 어떻게든 다시 일상을 살아가는 군인들도 있었겠지만 폐인이 되어버린 군인들이 훨씬 더 많았다. 6.25 전쟁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간 상이군인들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었다.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한 소설 <오발탄>에 그 내용이 잘 나온다.

 

6.25 전쟁의 포화가 휩쓸고 지나간 한국은 그야말로 참혹한 모습이었다. 서울 시내에는 온통 팔과 다리를 잃고 군대에서 쫓겨나 실업자나 부랑자가 되어버린 상이군인들로 넘쳐났다. 상이군인들은 떼를 지어 정부 청사의 건물이나 은행으로 몰려가서 “우리들은 나라를 위해 전쟁터에 나가 싸웠다가 이렇게 다쳤다! 몸이 불편해 생활이 힘드니 우리들을 위해 생활비를 달라!”고 윽박지르거나, 더러는 사람이 많이 모일만한 버스나 정거장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자기들이 가지고 온 염색한 닭털과 같은 쓸모없는 물건들을 강매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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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욱

안녕하세요.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입니다. 권력을 바라보는 냉철함과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겠습니다. 더불어 일상 속 불편함을 탐구하는 자세도 놓지치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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