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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멤버십’과 ‘관계맺음’에 대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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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싶은 동기부여가 될 만큼만 읽다가,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면 그만 읽고 바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좋다. 물론 이동진 평론가처럼 스포를 확인해도 영화를 보는 재미가 반감되지 않는 타입이라면 그냥 읽어도 상관없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난민이든 일반 외국인이든 누구든 절차에 따라 받아들이고, 내국인과 외국인을 차별하지 않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이겠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가정, 동호회, 회사, 지역사회, 국가 등 규모와 상관없이 공동체가 형성되면 ‘멤버십’을 가진 자들만 누릴 수 있는 독점적인 혜택이 부여되기 마련이다. 그 멤버십을 가진 자와, 갖지 못 한 자의 차이점은 극명하다. 정치학에서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를 구별할 때 멤버심의 개념을 단 번에 이해할 수 있다. 선진국 국민으로 태어나 해당 국가의 멤버십을 보유하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행운이자 특권이다. 외부자들이 멤버십을 쟁취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한국 사회에는 수많은 멤버십들이 존재한다. 학벌, 살고 있는 동네와 주거지, 프리미엄 신용카드 등등. 좋은 멤버십을 갖기 위한 투쟁과 노력은 눈물겹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초반부에서 대지진으로 모든 곳들이 초토화됐지만 유일하게 살아 남은 황궁아파트 주민들이 대책회의를 열었다. 한 겨울 살을 에는 추위와 배고픔을 못 견디고 황궁아파트의 문턱을 넘어 들어온 외부자들 소위 “바퀴벌레들”에 대해서 수용할지 불수용할지 결정해야 한다. 극단주의남(곽자형 배우)은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황궁아파트에 입주하려고 수 십년 동안 아내와 함께 온갖 고생을 다했다. 다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보내야 한다.

 

극단주의남만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니다. 다들 바퀴벌레를 배척하자는 노골적인 속내를 갖고 있다. 물과 식량, 아파트 공간 등 어느 것 하나 희소하지 않은 것이 없는 극한의 재난 상황에서 간호사 출신 명화(박보영 배우)는 내외부인 가리지 말고 모두가 다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하지만 뜬구름 잡는 이상주의자 취급을 당한다. 모두가 다 사는 길은 곧 모두가 다같이 죽는 길로 여겨진다. 마침 대지진이 나기 전 평시 때도 황궁아파트의 옆에 위치한 드림팰리스 주민들은 황궁아파트 주민들을 배척하고 멸시했고 구별짓기를 일삼았다. 처지가 반전된 지금 황궁아파트 주민들의 감정이 격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 투표 결과도 바퀴벌레들을 내쫓자는 쪽이 압도적이었다. 바퀴벌레를 내쫓는 결정의 정당성은 황궁아파트 주민들의 생존권과 질서 유지에 있다. 주민들의 의사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만큼 이제 황궁아파트의 질서를 유지해나갈 시스템이 필요하다. 룰을 만들어야 하는데 오합지졸 상태로는 죽도 밥도 안 되니까 대표자를 뽑아야 한다. 그 직전 폭발 화재를 진화해서 주민들의 신임을 얻게 된 김영탁(이병헌 배우)이 임시 대표로 선출됐다. 황궁아파트의 진짜 주민인지 의심스러운 스포일러 요소를 갖고 있는 김영탁은 모든 게 얼떨떨하지만 이내 유능한 통솔력으로 주민들의 복종을 이끌어내며 강력한 권력자로 우뚝 서게 된다.

 

영탁은 믿고 뽑아준 주민들과 함께 각종 주요 과업들을 성취해나간다. 이를테면 △무장해서 외부인들을 내쫓는 작전 성공 △방범대 편성 및 운용 △방벽 세우기 △밖으로 나가 식량 및 물품 채집 △일한 만큼 물과 식량을 차등 분배하는 배급제 시행 등등 비상 시기 황궁아파트의 존속을 꾀할 수 있는 시스템을 하나 둘 구축해나갔다. 그런 영탁은 점점 영화적 장치로 봤을 때 절대악으로 그려지는 광기어린 폭군으로 변해가는데 꼭 단선적으로만 볼 수 없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어느 순간 영탁은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는 구호를 입에 달고 살며 주민들을 선동하고 세뇌한다. 황궁아파트 입주민이라는 사실만 확인되면, 황궁아파트 멤버십의 혜택을 제공 받을 수 있는 주권자로서 존중해주지만 그게 아닌 바퀴벌레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척하고 응징한다. 하지만 명화는 불안하고 우려스럽다.

 

나는 이 아파트가 선택받았다. 그런 느낌을 받았다.

 

명화의 고민은 이상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선택받은 황궁아파트 주민들의 생존을 위해 밖으로 내쫓아진 바퀴벌레들은, 같은 이유로 황궁아파트 주민들의 식량과 물품을 강탈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영탁도 그런 지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범대를 편성하고 방벽을 세웠다. 나아가 채집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서, 어쩌면 바퀴벌레들의 식량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빼앗아와야 한다. 그렇게 전쟁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여겼던 배척과 강탈이 전쟁을 야기하게 된다. 마치 인류가 1·2차 세계대전의 공멸을 겪기 직전의 상황과 유사하다. 이 타이밍에서 영탁의 채집단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채집을 나갔다가 푸드코트 노다지를 발견하게 되지만, 그 순간 바퀴벌레들의 조직적인 습격을 받아 엄청난 인명피해를 입게 된다. 이 시점부터 영탁이 이끌어갔던 시스템과 기조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저 ‘주민들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바퀴벌레 색출에 집착하고 강경하게 대처했던 건데 알고 보니 몇몇 주민들은 이미 외부인들을 각자의 사연에 따라 몰래 받아들여서 함께 살고 있었다. 영탁은 이들을 집요하게 색출했으며 숨겨준 주민들에게도 복종 의식을 받아내는 등 시스템을 견고하게 유지해나가지만, 외부인들의 습격을 받을 때부터 복합적인 권력 균열의 요소들에 직면하게 된다.

 

브릿지경제 도남선 기자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 리뷰를 남겼는데 “(엄태화 감독이) 언뜻 보기에 내 집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배격한 이병헌과 박서준에게 비극이 일어났으니 그들이 틀렸고 박보영에겐 구원이 일어났으니 박보영의 신념이 맞다.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게 맞다. 이게 영화의 주제의식인 것처럼 보인다”면서 아래와 같이 해석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 영화의 주제는 다소 불분명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확실히 더불어 잘 살자는 것이 틀렸다는 것만큼은 이 영화의 주제의식에 녹아들어 있다.

 

도 기자는 “영화 속에서 바퀴벌레로 표현이 되기도 하는데 엄태화 감독은 이들을 아주 잔혹하게 표현한다. 만약 더불어 잘 살자는 주제의식이었다면 쳐들어오는 장면을 아주 미화해서 그려냈을 거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어느정도 동의한다. 엄 감독은 단순히 모두가 잘 살자는 공존의 가치를 피력한 게 아니다. 그 어떤 공동체에도 멤버십이 불가피하며, 멤버십을 갖고 있는 내부인과 갖고 있지 않은 외부인과의 ‘관계맺음’에 대한 사색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바퀴벌레들과도 잘 지내고 포용적으로 가야 한다는 평화주의자 명화,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 바퀴벌레들을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는 현실주의자 영탁. 사실 둘 다 필요하며 절충이 이뤄져야 한다. 때에 따라 무게추가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고 상호 토론과 견제 과정을 통해서 가장 합리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국가 단위로 봤을 때 ‘국방부’와 ‘외교부+통일부’가 밸런스를 맞춰가는 것이 당위적이듯이, 개인이 속한 수많은 조직들에서도 이러한 관계맺기와 멤버십이 굉장히 중요하다. 외부인들과의 관계맺기에서 ‘배척’과 ‘공존’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엄 감독은 도 기자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언론 인터뷰에서 내놨다.

 

원작 만화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이 한국에 있는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아포칼립스 이야기라는 거였다. 날 포함해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아파트에 목을 맬까 하고 공부를 하다가 본 책이 콘크리트 유토피아였다. 아파트라는 게 가성비에 초점이 맞춰진 주거 형태면서 동시에 자산이지 않은가. 먹고사니즘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기도 하고 사회가 각박해지다 보니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며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인데 과연 그렇게 제로섬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의 끝은 무엇일지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엄 감독의 이런 발언이 명화처럼 무턱대고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야 된다는 이상론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에 대한 해석과 감상평은 각자의 몫이다.

 

영화 제목은 반어법이다.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새드 엔딩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명화가 떠돌이 생활을 하다 아나키스트들의 선의로 보호를 받게 되는데 마지막 대사가 아주 인상적이다. 그 누구도 절대악과 절대선이 아니지만 끝내 파국을 맞게 된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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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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