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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 인 서울> 서울의 봄에 묻히기엔 너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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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싶은 동기부여가 될 만큼만 읽다가,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면 그만 읽고 바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좋다. 물론 이동진 평론가처럼 스포를 확인해도 영화를 보는 재미가 반감되지 않는 타입이라면 그냥 읽어도 상관없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서울의 봄>이 관객수 700만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안타깝게도 같은 서울이 제목에 들어가는 <싱글 인 서울>은 타이밍이 너무 암울했다. <서울의 봄> 원톱체제로 극장가의 모든 관심이 빨려들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싱글 인 서울>에는 한 줄기의 관심도 없는 것 같다. 상업 영화임에도 관객수가 30만명에 머물고 있다. 45억원이 들어간 비교적 저예산 영화이긴 하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130만명이 봐야 한다. 흥행의 측면에선 실패가 자명하다. 그러나 영화적으로는 나쁘지 않다. 던지는 메시지도 선명하고 잔잔한 울림이 있다. 평론가들과 관객들도 대체적으로 호평이다.

 

 

<싱글 인 서울>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그러나 남녀 주인공이 연애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우여곡절을 겪다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그런 서사가 아니고, 싱글의 삶과 철학을 고수하게 된 박영호(이동욱 배우)가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과정이 핵심이다. 주로 연애사이긴 하지만 영호는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직장 동료, 누군가의 이웃 등등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현대인들의 모든 ‘관계 고충’을 대변하듯 싱글의 삶을 예찬한다. 끊임없이 타인의 눈치를 보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삶에 지치지 말고 온전히 ‘나’로 살 수 있는 싱글의 삶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한 누군가가 되지 않고 나 자신이 되어야.

 

영호는 잘나가는 논술 강사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퇴근한다. 수강생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매몰차게 다음 시간에 물어보라고 기약한다. 학원 동료 강사들의 회식 제안에도 퇴짜를 놓고 집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혼자 집에 들어온다. 영호는 수많은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인플루언서다. 혼자 사는 각종 꿀팁은 물론, 신념적으로 싱글로 사는 것이 왜 합리적인지 설파하고 있다.

 

출판사 편집장 주현진(임수정 배우)은 ‘싱글 인 시티’ 에세이 시리즈 기획의 신간 작가로 영호를 소개받았다. 이미 싱글 인 바르셀로나와 싱글 인 파리는 출간됐다. 사실 출판사 사장 진표(장현성)가 싱글 인 서울편을 쓰게 될 작가로 박영호를 점찍어뒀기 때문에 현진은 영호를 만나 신간 구상을 할 수밖에 없다. 알고 보면 둘은 대학 선후배 관계다. 현진은 책 문제로 영호와 몇 차례 만나면서 영호의 연애사를 엿듣게 되는데 하나 같이 이상한 여자들만 만났다는 걸 알게 됐다. 어느정도 영호가 왜 싱글 예찬론자가 됐는지 알 것도 같다. 그래도 나와 맞는 짝을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현진이 넌지시 물어봐도 영호는 “나랑 꼭 맞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라고 응수하며 완고한 태도를 고수한다.

 

현진은 비혼주의자가 아니다. 페미니스트에 가깝지만 연애를 하고 싶어하며 조금만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남자를 만나면 금사빠 모드로 돌입한다. 도끼병은 상수다. 영호에게도 조금씩 스며들었다. 영호 역시 진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끌어내준 현진에게 호감이 생겼다. 둘은 썸을 타고 분위기를 타다가 얼떨결에 키스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사귀진 않는다. 영호는 커플의 삶을 혐오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싱글 예찬론자이기 때문이다.

 

싱글에게 썸은 불륜이다.

 

폭풍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영호가 현진에게 들려줬던 잊을 수 없는 첫 사랑의 기억. 호텔 직원 동료로 만나 사내 연애를 했던 홍주옥(이솜)이 나타났다. 영호는 현진에게, 주옥에 대한 악몽을 이야기한 바 있다. 영호에 따르면 주옥은 먼저 다가왔고, 먼저 유혹했으며, 사귀게 된 이후에 먼저 싫증을 내고 무책임하게 떠나버렸다. 전형적인 나쁜 여자로 규정했다. 하지만 주옥도 그렇게 생각할까? 연애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건의 진실은 한쪽의 일방적인 주장으로는 알 수 없다. 언제든지 왜곡될 수 있다. 양쪽 얘기를 다 들어봐야 한다.

 

주옥이 어떤 방식으로 재등장했는지에 대해서는 영화를 직접 보고 확인하길 바란다. 결국 영호는 주옥에게 사과를 하게 된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어.

 

고통스럽지만 마주했던 각성의 과정이 있다. 그저 첫 사랑 XX년으로 묶어놨던 잘못된 기억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알고 보니 내가 어리석었고 이기적이었으며 미성숙했다. 그래서 주옥과 헤어졌다. 주옥은 10년 넘게 흘렀지만 언젠가 영호를 꼭 다시 만나고 싶었다.

 

영호가 그토록 싱글에 집착했던 것은 주옥을 비롯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이었는데, 사실 그 상처는 영호가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에서 기인했다.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본인이 원하는 일방적인 관계의 틀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나쁜 기억으로 가둬두고 쉽게 단절을 선택했던 영호의 과거가 싱글론으로 치닫았다. 조금만 상대가 자신의 예상에서 벗어나면 자기 중심적인 피해의식이 발동했었다.

 

역설적으로 혼자에 대한 글을 쓰면서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관계를 회피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영호는 초반부에서 현진이 쓴 책 기획서에 들어간 “혼자여도 괜찮다”라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신 “혼자여서 괜찮다”로 바꾸자고 요구했다. 하지만 영화 말미에는 혼자여도 괜찮다는 명제에 공감하게 된다. 영호는 관계에서 상처 받을 일이 많았기 때문에 혼자여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관계의 성격이 자기 맘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회피했던 것이었다. 회피하지 않을 수 있다면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도 괜찮다. 그래서 혼자여도, 함께여도 둘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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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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