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박성준의 오목렌즈] 54번째 기사입니다. 박성준씨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뇌성마비 장애인 당사자이자 다소니자립생활센터 센터장입니다. 또한 과거 미래당 등 정당활동을 해왔으며, 현재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한 각종 시민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에 관심이 많고 나름대로 사안의 핵심을 볼줄 아는 통찰력이 있습니다. 오목렌즈는 빛을 투과시켰을 때 넓게 퍼트려주는데 관점을 넓게 확장시켜서 진단해보려고 합니다. 매주 목요일 박성준씨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색깔 있는 서사를 만들어보겠습니다. 더불어 박성준 센터장은 2024년 7월11일부터 평범한미디어 정식 멤버로 합류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12.3 계엄 사태가 발발하기 3주전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명태균씨의 통화 녹취가 공개됐을 때였는데 사실상 공천 청탁을 입증하는 스모킹건과도 같았다. 그 당시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과 오목렌즈 정기 전화 인터뷰를 했는데 주제는 ‘윤석열 정부의 위기’였다. 그때만 해도 윤 대통령은 등돌린 민심을 돌리기 위해 민주적인 방식을 선택했었다. 정면승부 차원에서 무제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는데 딱히 여론 반전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민심의 눈치를 보는 모양새였다. 물론 그때도 물밑으로는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과 계엄을 모의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당시 윤석열 정부에 대한 평범한미디어의 위기 진단을 되돌아보자.
윤 대통령은 정면돌파 하는 법을 모르는 것 같다. 본인 생각에 정면돌파인데 국민들이 보기엔 회피다. 왜냐하면 하고 싶은 얘기만 하니까.
김건희 특검 수용과 명태균 게이트에 대한 수사 협조가 핵심인데 그런 입장 피력은 전혀 없이 기자회견을 해서 입장을 밝히기만 하면 정면돌파가 될 것이라고 본 게 윤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윤석열과 트럼프하고 비교를 하면 트럼프는 대중이 원하는 얘기를 한다. 표를 얻기 위해서든 아니든. 근데 그 집권 시기에도 주변 국가를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자국민 지지층만 보고 포퓰리즘적으로 신경을 써서 그들이 듣고 싶은 얘기를 한다. 근데 우리 윤석열 대통령께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만 한다. 내가 왜 이걸 받아들일 수 없는가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기자회견을 여는 분이다. 국민의 요구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 여부나 영부인 리스크들을 어떻게 해결할래? 그 해결책을 내놨어야 했는데 우리 윤석열 대통령께서는 그걸 해결하고 싶지 않다. 심지어 그걸 리스크라고 인식도 하지 않은 것 같다.
돌이켜보면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민적 경고가 축적되었다가 임계점에 다다른 해가 2024년이다. 이태원 참사, 채상병 사건, 김건희 리스크가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았고 ‘의대 증원론’을 밀어붙여서 잠시 지지를 얻었지만 의사집단과의 갈등 국면이 장기화됐다. 이 와중에 명태균 게이트가 9월부터 불거졌다. 명태균 게이트는 국회에서의 극 여소야대 지형을 더욱 심화시켰다. 한 마디로 “준 태블릿 PC급 스모킹건”처럼 작용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여론에 힘입어 탄핵 카드 등 대여 공세의 그립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9월부터 11월까지 두 달간 윤석열 정부는 서서히 국정 동력을 상실해가고 있었고 연말이 다가오자 민주당은 ‘예산 감액권’과 ‘송곳 탄핵’(검사와 감사원장)까지 동원해서 압박했다. 그전부터 계엄 카드를 만지작거렸겠지만 윤 대통령은 연말 즈음 명분을 억지로라도 내세워서 계엄을 선포할 작정이었던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의 대여 공세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행위는 ‘정치 공세의 영역’에서 비판을 받을지언정 법률적인 범위 안에서의 권한 행사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요건 부실, 절차적 하자, 국회 무력화, 부정선거 선동을 위한 선관위 공격 등 명백한 위법·위헌의 향연이었다. 집권여당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이 시점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쓴소리를 가했지만 별 영향을 미치지 못 했다.
한동훈 대표는 존재감이 없어졌고 대통령실에서는 윤석열 지키기로 돌입했고 야당에서는 이재명 지키기를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정국이 깝깝하고 답답하다. 양쪽 다 인물 수호에만 나서고 있는데 국민을 보겠다고 그나마 눈치를 봐야 하는 국민의힘은 무력하기만 하다. 사실 한동훈 대표도 안다. 내가 대통령실에 얘기해봐야 씨알도 안 먹힌다. (대통령실 참모들과 여당이 물밑에서 타협할 가능성도) 너무 희박하다. 원외 0선 대표가 5선 이상의 능력을 가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서 정치적인 타협을 한다? 말이 통하겠는가? 그니까 정진석 비서실장은 한동훈 대표를 대표로 보지도 않았을 거다. 사실 대통령실 참모들도 한심하다. 오로지 윤석열 대통령 지키기만 하고 있고 정무수석도 그렇고 야당과 조율을 하고 정국을 풀어갈 생각이 아예 없다. 오직 윤 대통령을 극우 유튜브의 성채에 고립시키는 역할에만 머무르고 있다.
정리하면 계엄으로 치닫기 직전의 한국 정치 풍경은 △윤 대통령의 고집은 여전했고 △대통령실은 대통령 수호에만 혈안이고 △한동훈 전 대표는 대권 주자로서 몸집 불리기에만 관심이 있고 △이재명 대표도 1심 판결 이후 위기감을 느끼고 대여 공세를 몰아치던 그런 분위기였다. 정치판 주요 주체들이 모두 “자기 밥그릇 챙기기”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또 무슨 APEC 정상회의 그런 거 있다고 곧 출국한다는데 그나마 5년 동안 뭐 했어라고 물어봤을 때 할 얘기를 만들고 싶은 게 그런 것들 뿐이다. 외교나 국제 행사에 거의 목숨 거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쇼잉을 잘하는 거다. 보여주는 거라도 있어야 나중에 공과를 따질 때 난 이거라도 했다는 이야기를 하려면 지금 내치는 완전히 망한 거 본인이 알고 있다. 그러니까 외치라도 신경을 써야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