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박성준의 오목렌즈] 3번째 기사입니다. 박성준씨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뇌성마비 장애인 당사자이자 다소니자립생활센터 센터장입니다. 또한 과거 미래당 등 정당활동을 해왔으며, 현재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한 각종 시민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박성준씨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정치, 사회, 경제, 연예 등등 뜨거운 이슈에 대한 나름의 진단을 해드리겠습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정치인들이 흔히 쓰는 표현 중에 “상대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정치”라는 레토릭이 있다.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정치는 적대적 양당체제가 아닌 적이 없지만 탄핵 이후 2017년부터 지금까지 6년 넘게 지속적으로 대립 구도로 치닫았다. 윤석열 정부가 집권하면서 거부권+검찰 수사와, 탄핵+특검만 용솟음치는 정치판이 돼버렸다. 이렇게까지 여야 지도부가 덜 만나고, 대통령이 야당 대표를 불러서 국정을 논하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 야당 대표에게 칼을 들이민 살인미수범 김진성씨(1957년생)의 범행도 이러한 정치적 분위기를 떠나서 설명되기 어렵다.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은 지난 4일 14시 평범한미디어와의 통화에서 “이거는 이재명 개인에 대한 테러는 아니”라며 “이재명 개인에 대한 테러라고 좁게 해석하면 사건이 굉장히 축소되는데 개인의 원한이나 어떤 돌발행동이 아니다. 자연인 이재명이 아니라 야당 지도자에 대한 암살 시도”라고 강조했다.
(민주화 이후 수많은 정치인 피습 사건들 중) 비슷한 일로 얘기 나오는 게 박근혜 전 대통령 테러 사건인데 물론 야당 대표를 맡고 있는 거물급 여성 정치인의 얼굴에 상해를 입힌 것은 굉장히 큰 이슈이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생명에 지장을 줄만한 부위를 노리지 않았다. 똑같은 야당 대표에 대한 테러인데 지금은 진짜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상황이 다르다.
김씨는 왜 죽이려고 했던 걸까? 김씨는 2일 오전 10시반 즈음 부산 강서구 대항동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방문한 이재명 더불어민당 대표의 목을 칼로 찔렀다. 당시 김씨는 A4 용지 8쪽 분량의 변명문(제목: 남기는 말)을 작성해서 외투 주머니에 넣어놓은 상태였다. 이에 따르면 김씨는 “역사적 사명을 갖고 한 일”이라고 강변했다. 변명문의 전문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골자는 아래와 같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어선 안 된다. 지난 문재인 정부 때 부동산 폭망, 대북 굴욕 외교 등으로 경제가 쑥대밭이 됐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지만 이재명이 당대표로 나오면서 거대 야당 민주당이 이재명 살리기에 올인하는 형국이 됐다. 이대로는 총선에서 누가 이기든 나라 경제는 파탄난다. 역사적 사명을 갖고 한 일이다.
1945~1948년 해방 정국도 아닌데 정치인을 암살해서라도 구국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본인의 뇌피셜이 심각한 수준이다. 경제가 파탄날 것이라고 진심으로 우려했다면 본인의 생각에 동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조직해서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지지하는 정당의 선거 승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김씨는 국민의힘 계열 보수정당의 당적을 오랫동안 보유했다가 위장 탈당을 감행했고 테러를 계획하기 위해 작년 하반기 민주당에 입당했다. 주변인들에 따르면 김씨는 매우 조용하고 점잖은 성격이었으며 그야말로 극I에 가까웠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맨날 정치 유튜브만 들여다봤으며 태극기 집회에 몇 차례 나간 적이 있을 정도로 극우 성향이다. 평소에 사람들과 정치 수다를 떨며 본인의 답답함을 풀지 못 하고 진짜로 싫어하는 정치인을 암살하려는 실행으로 나아간 중범죄자가 됐는데, 사실 김씨가 갖고 있는 적개심과 마찬가지로 상대 정당의 지지자들 역시 김씨처럼 사고회로가 돌아갔다면 진작 테러 시도가 일어났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 대한 민주당 지지자들 또는 이재명 지지자들의 적개심도 어마어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처럼 치밀하게 준비해서 칼을 휘두르는 지지자는 아무도 없다. 오직 김씨만 그런 짓을 저질렀다.
대체적으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국정 운영을 못 하고 있다고 보는 전국적인 민심이 압도적이다. 김씨는 민주당이라도 잘 해야 하는데 민주당 전체가 이재명 수호에 혈안이 돼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분명 민주당 내부에도 비명계가 있으며, 오히려 정부여당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윤핵관들의 행태가 더더욱 문제라고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드높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윤석열과 한동훈이 나라를 망치는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다.
박 센터장은 여야 핵심 리더가 모두 호전적인 인물들로 대치하고 있는 구도에 주목했다. 온건한 리더가 한쪽에라도 있어야 양보와 타협의 가능성이 있을텐데 지금은 그럴 기미조차 없다. 이 대표도, 한 위원장도, 윤 대통령도 다 마찬가지다. 호전적인 정치 리더들만 부각되는 정치판이 되어버렸다.
이재명 대표의 가장 큰 약점이 뭐냐면 물론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지만 그만큼 또 반대 세력이 많을 수밖에 없는 그런 정치인이다. 이 대표는 처음 시작이 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였다. (거악을 척결하는 논리에 기대며) 적극적으로 뭔가를 요구하고 이제 그런 경력을 정치로 가져오면서 강력한 팬덤이 형성됐다. 이 대표의 성정이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정치인들하고는 좀 결이 많이 다르다. 사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바라는 이재명의 모습은 노무현2다. 그러나 이 대표와 노무현 대통령은 다르다. 둘 다 적극적이긴 한데 공격의 스타일이 다르다. 이 대표는 주변 사람들을 최소로 남겨두고 거의 독자적으로 단기필마로 뛰어들어가는 스타일이고, 노 대통령은 겉으로 보기엔 단기필마 같은데 알고 보면 참모들과 진영을 짜놓고 뛰어들어가는 정치인이다.
더구나 이 대표를 둘러싼 온갖 논란거리들이 너무 많았다. 여전히 형수 욕설 등 물증으로 그의 쌍욕이 계속 재생되고 있다.
이 대표께서 깨끗하다거나 그런 포인트는 아니니까 공격받을 일이 너무 많았다. 너무 오랫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모든 공격의 포커싱을 받았고 또 주변에서 좀 안 좋은 일도 많았다. 그렇게 7년이 지났다. 이 대표가 정치를 하는 과정에서도 과격성을 줄여야 되는 시기가 있었는데 그러지 못 했다. 밖에 있을 때는 그런 날카로운 공격성은 굉장히 환호를 받기 좋지만 그런 게 자신을 공격하는 무기로 돌아올 수도 있다. 이 대표는 전투하듯이 지금의 자리로 올라왔다.
이 대표 못지 않게 싸움닭 성향에 가까운 정치인이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다. 박 센터장은 “이 대표의 반대편에도 비슷하게 호전적인 정치 지도자들이 있다. 윤석열과 한동훈 같은 정치인들도 비슷하게 호전적”이라며 “지금 성향이 같은 정치인들이 만나가지고 일이 커졌다. (여야 대립의 정도가 최대치로 심각한데) 왜 그러냐면 지금까지 여당 지도자들 중에서 가장 공격성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그렇기 때문에 양쪽이 굉장히 치열하게 붙을 수 있는 강렬한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김씨도 개인적으로 이재명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혹은 민주당에서 계속 대표를 맡고 있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전과 4범에 각종 결함들에 집중했을 거다. 다시 말하지만 이재명 대표 개인의 문제이거나 개인적 원한으로 몰고갈 수가 없다. 당장 반대로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광주 오면 죽이겠다는 예고글이 떴다.
만약 여야 협상의 여지가 살아있는 정국이었다면 여권이 노란봉투법이나 간호법을 받는 대신, 야당이 김건희 특검법을 철회하는 등의 정치적 타협이 이뤄졌을 것이다. 아무리 민주화 이후 35년간 적대적 양당체제로 견고화됐다고 해도 최소한 이런 패턴으로 협상이 일어났고 극한으로 치닫지 않을 수 있는 관습과 관행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 때만 해도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들이 분기별 1회 정례 회동)와 초월회(매달 국회의장과 여야 당대표들이 회동) 같은 논의 테이블이 살아있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정치 지형에서는 야당이 공격하고 여당은 약간 수비하면서 그래도 우리가 밀어붙일 것은 그대로 가겠습니다. (최소한의 신사협정처럼) 이렇게 웬만한 거, 받을만한 거는 받고 그랬다. 근데 지금은 그런 여야 소통이 너무 없고 여당도 공격하고 야당도 공격한다. 통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정당과, 통치권을 뺏어와야 되는 정당. 즉 여당과 야당이 차이가 없고 다 공격적이다.
윤 대통령도 취임 이후 이 대표를 대통령실로 부르지 않았다. 국회 1당의 협조가 불필요했던 걸까? 오히려 윤 대통령은 “범죄자와 내가 왜 독대해야 하냐”는 반응이었다. 어쩌다 이지경이 됐을까. 박 센터장은 2016년 하반기 탄핵 정국 이후 지금까지 “6~7년간 계획대로 정치의 흐름이 흘러가지 않아서 그렇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문재인 대통령이 들어오고 (조국 사태 이후 윤 대통령이 대권 주자로 떠오르고) 윤 대통령까지 가는 그 기간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에 계획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예측가능성이 없는 만큼) 더 거칠어진 것”이라고 정리했다.
한편, 박 센터장은 온갖 음모론들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면서 “민주당 내 비명계 세력이 사주한 거다라는 얘기는 말이 안 된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가장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은 건 이재명 대표 본인도 있겠지만 세력으로 볼 때는 비명계가 오히려 더 타격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특히 총선 유불리로 연결지어 사고하는 정치꾼들에 대해 박 센터장은 “김씨가 분명히 칼로 찔러야 되겠다고 실행한 것은 치밀하게 준비된 일이지만 시점을 노리는 부분으로 봤을 때는 큰 그림에서는 엉성하다”며 “(총선 유불리적 정치적) 효과를 크게 보려면 지금 시도하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총선 대비에 들어가기 직전에 일을 터트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유가 뭐냐면 지금은 회복하고 (희생하는 메시아 컨셉으로) 선거전에 뛰어들 시간이 충분히 있다. 그 공간이 충분히 된다. 그러나 3월말에 해버리면 선거운동을 못 한다.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그렇게 한 것이지 치밀하게 배후 조종이 이뤄졌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어쨌든 조용하고 외골수적이고 자기 세계가 분명한 김씨가 혼자 저지른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