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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중도보수론’ 깊게 탐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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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박성준의 오목렌즈] 59-1번째 기사입니다. 박성준씨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뇌성마비 장애인 당사자이자 다소니자립생활센터 센터장입니다. 또한 과거 미래당 등 정당활동을 해왔으며, 현재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한 각종 시민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에 관심이 많고 나름대로 사안의 핵심을 볼줄 아는 통찰력이 있습니다. 오목렌즈는 빛을 투과시켰을 때 넓게 퍼트려주는데 관점을 넓게 확장시켜서 진단해보려고 합니다. 매월 2회 목요일마다 박효영 기자와 박성준 센터장의 ‘전화 대담’을 통해 색깔 있는 서사를 만들어보겠습니다. 더불어 박성준 센터장은 2024년 7월11일부터 평범한미디어 정식 멤버로 합류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먼저 이재명 대표(더불어민주당)가 지난 국정농단 정국 당시 2016년 11월 페이스북에 쓴 글부터 살펴보자.

 

이재명은 과격해서 중도확장 어렵다? 우리나라 보수는 부패 기득권의 은폐용 갑옷이고, 이를 위해 보수는 부패하나 유능하고, 진보는 깨끗하나 무능하다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노동자, 서민, 중산층 등 국민 다수에 유리한 정책을 밀어붙이면 과격한 진보이고. 그래서 재벌기업 부패 기득권을 반쯤 편드는 게 중도 보수표 얻는 중도 확장 전략인가? 정치 편향 없이 이익에 민감한 중도층(부동층 똑똑한 스윙보터)은 실적과 증거로 유능함을 증명한다면 진보를 선택하지. 부패하지만 유능하다는(실은 무능한) 보수를 선택할리 없다. 중도로 이동한다며 정체성 잃고 애매모호하게 왔다갔다하면 오히려 의심을 받는다. 강남 벨트 분당이 과격한 진보 이재명을 배척은커녕 공약 이행률 96%, 모라토리엄 극복, 증세 없는 복지 확대를 보고 높은 지지를 보내는 것(분당 국회의원 민주당 싹쓸이)이 증명한다. 똑똑한 중도층을 믿고 소수 기득권자가 아닌 다수 국민에 이익되는 정책과 포지션을 버리지 않겠다. 국민과 역사를 믿고 재벌과 돈, 권력, 기득권, 악성 언론에 굴복하지 않겠다!

 

뭔가 이상하다. 더 살펴보자. 이 대표는 그 즈음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도 “성공한 샌더스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버니 샌더스(무소속 연방 상원의원)는 보수적인 미국 정치판에서도 유일하게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선언할 수 있는 유력 좌파 정치인이다. 샌더스를 꿈꾸던 이 대표는 최근 강력한 떡밥 하나를 던져서 정치 평론 좀 한다는 사람들의 글쓰기 욕구를 자극했다. 바로 ‘민주당 중도보수론’을 내세운 것인데 이에 따르면 8년 전 본인이 주장했던 가설과 너무 대치된다. 이 대표는 ‘강성 이재명계’ 방송을 표방하는 유튜브 채널 <새날>에 출연해서 아래와 같이 피력했다.

 

앞으로 대한민국은 민주당이 중도보수 정권으로 오른쪽을 맡아야 된다.

 

 

딱 한 문장만 봐도 8년 전 본인의 정치관과 너무 다르지 않은가? 민주당의 포지션은 중도보수이고, 대권 주자 이재명은 “과격한 진보”를 맡아 이중 전략을 취하자는 의도는 아닌 것 같다. 물론 그때와 지금 이 대표가 처한 정치적 환경은 천지차이다. 국정농단 당시 이 대표는 광화문 광장으로 가서 다른 민주당 대권 주자들보다 한 템포 빨리 ‘박근혜 즉각 퇴진론’을 외치며 사이다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최초로 이 대표가 민주당 대권 주자들 중 하나로 부각됐던 타이밍이 이때다. 실제로 이 대표는 여야 불문 전체 대권 주자들 중 ‘대세 문재인 후보’를 추격하는 지지율 2위(15~17%)까지 치솟기도 했다. 궁극적으로는 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여했지만 문재인 후보와 안희정 후보에 밀려 3등으로 고배를 마셨다. 즉 가파르게 올라갔던 지지율이 2016년 11월부터 떨어지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언더독 주자가 됐고 그런 상황에서 ‘과격한 진보’로서 선명함을 밀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대표는 12.3 계엄 사태 이후 누가 봐도 확고한 대세 주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고 그런 맥락에서 ‘민주당 중도보수론’의 행간을 읽어야 한다. <새날>에서 길게 말했던 텍스트를 원문 그대로 옮겨본다.

 

우리가 진보 정권이 아니다. 저기 지금 국민의힘 봐라.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걸 동조하지 않는가. 상식이 없다. 집권당이 돼 가지고 정책을 내지 않는다. 야당 발목 잡는 게 일이다. 내가 그래서 오죽하면 여당이 아니라 ‘산당’이라고 그러지 않은가. 산 위에 있는 당. 궐 내에 있는 당이 여당이고 원래. 궐 밖에 있는 집단이 야당이다. 근데 이 사람들은 궐 내에 있는 게 아니고 산에 가서 뒷발을 잡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 중도보수 정도의 포지션을 실제로 갖고 있고 진보진영은 새롭게 구축이 돼야 한다. 이 사람들은 보수적 집단이 아니다. 보수라고 하는 게 건전한 질서와 가치를 지키는 집단인데 그 건전한 가치와 질서의 핵이라고 하는 헌정 질서를 자기 스스로 파괴하고 있다. 이거는 보수가 아니다. 내가 오죽하면 범죄 정당이라고.

 

대한민국 대부분의 정치학자들은 한국 정치체제를 두고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존”이라고 규정하는데 이 대표는 일본의 ‘자민당’처럼 국민의힘 세력을 퇴장시키고 민주당 거대 1당의 지배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 셈이다. 마침 자신에게 필적할만한 경쟁 주자가 여야 가리지 않고 가시화되지 않고 있는 만큼 대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참에 불법 계엄까지 저지른 내란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는 차원에서 대권도 먹고 국회도 200석 이상을 차지해보자는 취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한 마디로 이미 몰락한 윤석열 정부를 넘어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완전히 퇴출시켜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민주당계 정치인들이 흔히 쓰는 화법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오히려 윤석열 대통령이 거듭 반복한 “반국가세력”에 국민의힘이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새는 좌우 날개로 나는데 오른쪽이 망가져서 큰일인데) 지금 엄청나게 (우측) 깃털이 다 뽑혀버렸다. 자기들이 뽑았다.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과의 전화 대담에서도 일단 이 지점부터 확인했다.

 

박효영 기자: 그러니까 무슨 이재명 대표가 진지하게 자기들이 보수우파 정당이 돼야 된다라고 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힘은 보수도 아니다! 그러니까 국민의힘을 몰아내는 말이다. 몰아내는 게 맞고. 보수도 아니니까. 나는 그거 동의한다. 그 말에. 그리고 많은 진보적인 사람들이 그 얘기를 다들 했다. 민주당이 중도보수가 되고 이제 진짜 진보정당이 나타나고. 그렇게 한국 정치권이 형성되면 좋겠는데 박근혜 탄핵과 국정농단을 지나고 계엄 사태까지 왔음에도 이들이 사라지지가 않는다.
박성준 센터장: 진보쪽에 있거나 혹은 언론계에 있던 사람들 특히 나도 그렇고 박 기자도 그렇고 벌써 몇 년 전부터 이미 그 얘기하고 있었다.
박효영 기자: 기억에 남는 게 웃긴 얘기인데 예전에 (미래당) 오태양 대표가 광진에서 국회의원 출마할 때 김제동씨가 선거운동 현장에 왔다. 그때 내가 갔었는데 현장에서 김제동씨가 이런 말을 똑같이 했다. 그러니까 그 당시 미래통합당은 반국가 정당에 가깝고 사실상 민주당이 중도보수 정당을 해야 되고. 그 외에 미래당, 녹색당, 노동당, 정의당 같은 정당들이 진보정당 파이를 차지해 가지고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게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된다. 이런 게 김제동 혼자만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런 생각을 진보진영에서는 다들 했을 것이다.
박성준 센터장: 엄청나게 했다. 몇 년째 이미 오래전에.
박효영 기자: 근데 그런 취지인데 내가 이 생각에 동의는 하는데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우파 세력이. 트럼프 세력도 다시 득세하듯이 안 사라진다. 오히려 큰 세력이 돼가지고 더 견고해지고. 한국도 극우 세력이 발버둥치고 있고 탄핵 반대 여론도 심상치 않다. 그러니까 선거에서 국민의힘 세력이 다 낙선해서 사라지고 이랬으면 좋겠는데 이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서 그래서 싫든 좋든 정말 비판적이지만 인정하고 가야 된다. 나는 정치권 밖에서 평론 화법으로는 그런 말을 할 수 있지만 제1야당 대표가 대놓고 그런 정치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을 하면 오히려 여야 대립만 심화되고 부작용만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 페북 지식인들은 민주당이 정말 중도보수 정당이 맞느냐에 대한 학술 토론을 하고 있던데 그것도 고퀄리티이고 가치가 있는데, 국민의힘 퇴출 레토릭이라는 이 대표의 발화 의도에 대해서 비평을 해주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박성준 센터장: 지금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점점 더 우경화되는 흐름이 사라지지 않고 더 탄탄해지고 있다. 한국 민주당은 보수정당이 맞는데 사실 말씀하신대로 이재명 대표가 얘기하는 보수정당 화법은 국민의힘을 몰아내고 우리가 오른쪽까지 차지하겠다는 메시지다.
박효영 기자: 나는 근데 상대를 퇴장시키고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상대한테 또 마찬가지로 극단적으로 갈 수 있는 명분을 준다. 점점 서로가 서로를 저주만 하다 보니, 탄핵+특검과 거부권+검찰 수사를 주고 받다가 계엄까지 왔다. 계엄 전에도 보면 민주당과 윤석열 정부 또는 국민의힘은 상호 도저히 타협할 수 없는 카드만 던졌다.

 

실제 민주당이 역사적으로 정말 어떤 이념 지형에 해당하는 정당인지에 대한 고급 비평들은 참으로 많다. 대표적으로 사회학자 조형근 박사가 있는데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지난 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보수 선언에 대한 잡감을 남긴 김에 타임라인에서 이에 대한 포스팅들을 읽다가 깨달은 사실. 내 페친들 성향상 비판이 많은데 환영하는 반응도 드물지 않다. 특히 그런 포스팅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민주당이 보수라는 ‘사실’ 확인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반응들이 제법 눈에 띤다. 김대중, 문재인, 이재명 등의 과거 발언을 가져와 사실 민주당은 늘 중도 보수라고 밝혀왔다면서 새삼스럽게 놀란 듯이 반응하는 당신들이 문제라며 꾸짖는 힐난들도 보였다. 한국의 비극적 역사 속에서 민주당에 ‘부당하게’ 가해진 진보 의제들의 압력이 그동안 얼마나 불편했을까. 느낄 수 있었다. 진보는 더 이상 민주당에 빌붙지 말고 알아서 자립하라는 뜻이기도 할텐데 사실 옳은 말씀이다. 물론 실제의 역사는 이보다 꽤 복잡할 것이다. 한국 정치의 비극과 모순이 고스란히 투영된 민주당의 오랜 역사를 “민주당은 원래 보수였다”고 한 마디로 퉁칠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수사일지언정 한국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며 자신들이 권력을 잡아야 할 이유를 정당화해왔다. 적지 않은 이들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이제 긴 시절이 끝난 느낌이다. 명문대를 나오고 좋은 직장을 가졌던 이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위로 올라가는데 성공했다. 아래를 내려다 보며 뿌듯해하는 심정은 아니길 바란다. 시원하게 헤어진 다음 빈 공간에서 진보 정치가 성장하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또 다른 이야기가 될테니 잡감은 여기까지.

 

이 대표의 이념과 정책 지형이란 것도 기본소득론으로 부각돼서 그렇지 상당히 보수적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박성준 센터장은 “내가 이재명 대표를 잘못 보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이 사람 진보 아니다. 완전히 거의 보수에 가깝다”며 “유승민 전 대표가 되게 비난을 하고 있지만 위치상 두 분이 말만 잘 통하면 연정할 수 있을 만큼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표가 우클릭했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약간의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정도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뭐 우클릭이라고 했던 부분은 사실 시각을 고쳐야 된다고 오히려 생각한다.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근데 상대적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대놓고 극우로 가다 보니 좌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좌에 있을 만한 유력한 정치 지도자가 지금 대한민국에 없다. 故 노회찬도 없고 故 홍세화도 없고, 심상정이나 권영길도 없는 시대다.

 

이 대표가 원래 우파였든 아니든 최근 들어 밀고 있는 우클릭의 내용들에 대해 조형근 박사는 “사실 민주당이 원래 보수였는지 여부보다는 보수 선언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할 것”이라며 “그 내용이라는 게 금투세 폐지부터 시작해서 반도체특별법, 소득세와 상속세 인하 검토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자본과 자산소유 계급 편향 정책들이다. 상속세 공제 한도를 18억원까지 올리자면서 서울 아파트 한 채 물려받는 이들을 걱정하는 것이 상징적인 사례”라고 역설했다.

 

혹시나 해서 검색을 좀 해 보니 민주당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들에서는 환영 일색이다. 정말 기뻐하고들 있다. 아파트값이 얼마나 올랐는데 세제가 바뀐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 했다며 대환영이다. 그 아파트값이 어느 정권 때 그렇게 올랐는지 생각해보면 흥미진진한 광경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보수정당 맞다며 이참에 증여세도 낮춰달라는 민원들도 폭발 중이다. 이재명 대표의 보수 선언이 중도층을 잡으려는 목적이라는 해석들이 많은 듯한데 내가 보기엔 그보다는 핵심 지지세력의 요구를 반영하는 쪽이 우선이었을 것 같다. 고학력 고소득에 이제 자산까지 제법 갖춘 서울 수도권 상위중산층이 민주당의 핵심 지지세력이 되었음은 여러 조사에서 드러난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 지도부와 지지자들이 거리낌없이 자신들의 기득권됨을 드러내는 건 뭐랄까. 좀 서글픈 일이다. 불평등 완화를 포함한 한국 사회의 중차대한 개혁 과제들을 생각하면 감세가 아니라 증세가 절실한 시점인데, 감세 선물을 던지는 걸 보면 이분들이 꿈꾸던 ‘진짜 보수’ ‘건강한 보수’와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디즈레일리 이래의 소위 합리적, 온정적 보수는 ‘일국 보수주의’의 기치 아래 편협한 계급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사회정책을 펼치는 데 그 본령이 있었다. 보수의 자기 희생, 양보가 필수적이었다. 이들에게 그런 걸 기대하는 건 사치 같다.

 

→너무 길어져서 이번 오목렌즈 대담은 두 편으로 나눠서 출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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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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