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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원구성협상 결렬 “법보다 관례가 먼저”라는 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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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박성준의 오목렌즈] 33번째 기사입니다. 박성준씨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뇌성마비 장애인 당사자이자 다소니자립생활센터 센터장입니다. 또한 과거 미래당 등 정당활동을 해왔으며, 현재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한 각종 시민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에 관심이 많고 나름대로 사안의 핵심을 볼줄 아는 통찰력이 있습니다. 오목렌즈는 빛을 투과시켰을 때 넓게 퍼트려주는데 관점을 넓게 확장시켜서 진단해보려고 합니다. 매주 목요일 박성준씨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색깔 있는 서사를 만들어보겠습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대한민국 국회는 2년에 한 번씩 원구성협상을 한다. 4년 임기를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눠서 18개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정하고,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정한다. 뽑는 것이 아닌 정한다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국회법에 따라 표결에 부치면 되지만 여야 합의로 누가 될지 정해놓고 요식행위로 표결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표결에 부치면 다수당이 모든 상임위원장과 의장단을 독식할 수 있기 때문에 민주화 이후 굳어진 관행이다. 백날 싸우는 한국 정치판에서도 상임위원장과 의장단은 합의 하에 정해놓고 싸우라는 최소한의 불문율이었다. 물론 여야가 상황과 위치에 따라 자기 입맛에 맞는 관행을 주장하거나, 법대로를 외치곤 한다.

 

 

지난 7일 23시59분을 기점으로 22대 국회(2024~2028년) 전반기 원구성협상이 결렬됐다. 국회법상 시한을 무기로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압박했는데 먹히지 않았다. 양당은 다른 것보다 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 과방위원장(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이 3곳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양당 다 셋 모두를 차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협상이 난항일 수밖에 없다.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 지난 6일 평범한미디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게 좀 잘봐야 되는 게 희한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며 “야당에서는 국회법대로 처리하자고 하고 여당에서는 관례대로 처리하자고 그러고 있는 상태다. 뭔가 여야가 바뀐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관례는 여야 합의에 따른 상임위 배분이 원칙이라는 뜻이고, 국회법대로는 합의 안 되면 표결 처리해서 다수당이 더 많이 가져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통상 19부·3처·19청의 정권을 공동 운영하고 있는 집권 여당이 야당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뭘 양보해달라고 하지 않고 밀어붙이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관례대로 하자는 것은 역사적으로 여당이 야당에게 좀 더 양보를 해주는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21대 국회(2020~2024년) 후반기부터 현재까지 민주당이 전체 의석 300석 중 5분의 3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극단적인 여소야대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박 센터장은 “국회 권력은 민주당이 쥐고 있는 상황이라 사실 관례대로 해달라고 하는 거는 여당이 양보해달라는 건데 (국민의힘은) 본인들이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며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근데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지금 대통령께서는 검사 출신이다. 어쨌든 기준은 법이다. 관례가 아니라. 오히려 (원구성협상 완료 시한이 명시된) 국회법을 지켜달라고 여당에다가 얘기를 오히려 검사 출신 대통령께서 해주셔야 된다.

 

그러니까 여야 합의를 권장하지만 합의가 안 되면 법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은 “법보다 관례가 먼저”라는 입장을 대놓고 피력하고 있다. 박 센터장은 “좀 과하게 얘기하면 반헌법적이자 반국회법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법을 지키고 싶지만 합의가 안 돼서 그런 거다. 이렇게 말하면 상관없는데 그게 아니라 법보다 합의가 앞선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합의가 안 되기 때문에 법을 지킬 수 없다는 얘기는 법보다 합의가 먼저라고 얘기를 하는 것이다.

 

 

물론 박 센터장이 민주당만 감싸고 도는 게 아니다. 박 센터장은 “사실 국회법만큼 필요성이 없는 법이 있는가”라며 “아니 국회법이라는 게 있으면 뭐 하는가. 사문화됐고 지금 효과 하나도 없다. 근데 그 사문화된 효과 없는 국회법을 지키겠다고 얘기하고 있는 야당이나 사문화 됐으니까 원래 관례대로 하자고 얘기하는 여당이나 똑같다”고 싸잡아 꼬집었다.

 

어쨌든 상임위 3곳을 두고 협상이 결렬되면 상임위원장을 공석으로 두고 국회를 방치하면 안 되기 때문에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패싱하고 표결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여당한테는 아주 좋은 프레임이 하나 생기는데 국회 입법 독재라는 이상한 말을 또 쓸 것”이다. 그나마 국민의힘은 과방위보단 운영위와 법사위 2곳만이라도 달라는 입장으로 변화했다. 사실 법사위 외에는 다른 것은 주변부에 가깝다. 국회 구조상 안건이 일반 상임위를 통과하더라도 본회의로 가지 않고 법사위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운영위는 대통령실 소관 상임위라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 고위 수석들을 불러서 호통칠 수 있는 권한이 있고, 과방위는 방송법 등 핵심 법안들을 담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사위의 중요성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박 센터장은 양당이 3곳을 나눠가지는 쪽으로 타협하지 못 하고 있다며 “all or nothing이다. 그러면 결국 표결”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박 센터장은 여야 원구성협상이 어려운 배경에 윤석열 대통령의 고집이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걸 여당쪽에서도 알고 있기 때문에 사실 3대 0을 주장하지만 하나라도 달라고 협상을 제안해야 되는 여지는 오히려 여당쪽에 있다. 근데 윤석열 정부의 특징이 뭐냐 하면 내 기준에 안 맞으면 협상은 없다! 이거다. 그런 협상 원칙이 여당 전체에도 이식됐다. 내 기준에 안 맞으면 협상은 없으니까 국회의 협상 결과가 용산 마음에 안 들면 용산에서 수용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윤 대통령은 국회에서 여야 합의 여부를 떠나 통과된 안건들에 대해 수용해주는 관례를 무시하고 수없이 거부권의 철퇴를 내리고 있다. 사실 국회 관례라는 것도 여야 내로남불 우기기가 심하게 작용한다. 원내 1당이 국회의장을 가져가면 2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가야 한다? 여당이 국회의장을 가져가면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가야 한다? 여당이 운영위원장을 가져가는 게 맞다? 따지고 보면 때에 따라 다 달랐다. 박 센터장은 “(양당이) 자기 포지션을 자기 마음대로 바꾼다”고 지적했다.

 

사실 민주당도 이거를 다 받는 게 좋을 건 없다. 왜냐하면 본인들도 알고 있다. 이거를 다 갖고 있으면 의회가 비정상적으로 굴러갈 때 모든 책임이 야당으로 간다. 여당이 야당같이 장외투쟁을 할 수 있는 빌미가 생긴다.

 

앞서 언급했듯이 국회 원구성협상의 프로토콜이 무너진 것은 극단적인 여소야대 정국 때문이다. 범민주당계 야권이 도합 190여석(188석)을 점유하고 있고 국민의힘은 고작 108석 뿐이다. 만약 국민의힘이 120~150석 정도만 됐어도 오히려 민주당이 국민의힘에게 양보를 요구하는 형국이 펼쳐졌을 것이다. 민주당은 거대 의석에 부합하는 새로운 원구성협상 결과를 압박하고 있다. 상임위 18개 중 5분의 3(60%)를 가져가야 하는데 법사위는 상임위 10개에 버금가는 파워가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가져가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다.

 

보통 우리가 흔히 얘기를 하면 여당에 의석수보다 1.5배 정도의 포지션을 더 곱해준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 국민의힘이 108석이니까 54석 정도 더해서 야당 전체 포지션이 162석 정도 되어야 힘의 균형이 비슷비슷해진다. 근데 야당이 162석보다 더 높다. 그러니까 국회에선 게임이 안 되는 거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민주당은 국민의힘과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특검법과 각종 법안들을 통과시켰고, 윤 대통령도 국회 다수당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선적으로 국정을 운영하고 모조리 거부권으로 대응했다. 민주당은 본회의 직회부와 패스트트랙을 이용해서 사실상 법사위 없이도 원하는 안건을 통과시킬 권능이 있다. 그럼에도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가져가려고 하고 있다. 박 센터장은 국회와 정부 모두 독재적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국민의힘 주장대로 입법 독재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행정부는 민주당 주장대로 윤석열 정부의 행정 독재, 검찰 독재로 가고 있다. 내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이것인데 양당의 논리대로 가면 지금 대한민국이 두 독재 세력으로 가고 있다는 얘기인데 (독재는 오직 하나의 권력만 있는 건데 두 세력이 양쪽에서 독재를 한다는 것은) 그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오목렌즈 초창기 올초에 강대 강 지도자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지금은 정당 자체가 강대 강으로 붙고 있다. 국민들이 숨이 막힌다.

 

 

한국 정치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다수당이 상하원 상임위원장을 싹쓸이하는 전통이 있는데 그러다보니 미국의 정치는 한국보다 더욱더 적대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권을 거머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개딸”로 불리는 민주당 강성 지지층은 미국 사례를 거론하며 18개 상임위원장 전체를 독식해야 한다고 주장할텐데 박 센터장은 “강성 지지층들을 어떻게 달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환기했다.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 표결을 마치면) 여당에서는 일단 합법적인 절차에 따른 18명을 다 집어넣었다고 해도 본인들이 참석을 안 할 것 같으니까 분명히 절차상 문제는 없는데 이걸 가지고 굉장히 큰 이슈를 삼으면서 대야 봉쇄를 할 것이다. 어쨌든 굉장히 시끄러울 건데 내가 볼 땐 원구성이 되더라도 국회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이 18곳에 대한 본회의 표결을 강행하면 국민의힘이 반발할 것이고 장외 집회까지 열면 민주당이 마지못해 국민의힘 몫으로 8곳을 양보해주는 모양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그 8곳에는 화약고 3곳 중 1곳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사실은 그 3곳 중에 어디를 넘겨주냐를 가지고 되게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법사위를 소수 여당이 가져가면서 얼마나 많은 법들이 막혔는지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절대로 안 줄 건데 그러면 어떤 명분으로 과방위를 넘겨주냐의 문제다. 그리고 여당 쪽에서 보면 과방위만 받고 만족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좀 오래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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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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