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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의 공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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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박성준의 오목렌즈] 63번째 기사입니다. 박성준씨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뇌성마비 장애인 당사자이자 다소니자립생활센터 센터장입니다. 또한 과거 미래당 등 정당활동을 해왔으며, 현재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한 각종 시민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에 관심이 많고 나름대로 사안의 핵심을 볼줄 아는 통찰력이 있습니다. 오목렌즈는 빛을 투과시켰을 때 넓게 퍼트려주는데 관점을 넓게 확장시켜서 진단해보려고 합니다. 매주 목요일 박성준씨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색깔 있는 서사를 만들어보겠습니다. 더불어 박성준 센터장은 2024년 7월11일부터 평범한미디어 정식 멤버로 합류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오목렌즈 전화 대담은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이슈들 중 가장 핫한 소식을 다뤄왔다. 그러나 전화 통화 앞뒤로 스몰 토크를 하다가 문득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는데 기사화하기 애매한 것들이 있다. 그래도 그냥 묵혀두긴 아까워서 기사로 써보려고 하는데 바로 ‘청소년 자살’ 문제다. 꽤 중요한 이야기를 나눴다.

 

작년 11월28일에 진행된 전화 대담이었는데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은 “여고생이 투신했다는 뉴스와 기타 청소년 자살 뉴스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지금 타이밍으로 봤을 때 수능 마치고 결과가 좋지 않은 친구들이 압박을 받을 수 있는 시기”라고 말했다.

 

 

이 즈음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슬픈 뉴스들이 많긴 많았다. 박 센터장의 레이더에 안 들어올 수 없었다.

 

박효영 기자: 내가 찾아본 기사 2개는 9월달에 일어난 사건인데 파주 아파트에서 뛰어내려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서 결국에는 숨졌다고 나왔다. 이게 하나 있고 그 다음에 용산에 있는 한 호텔에서 일면식 없는 10대 여성 2명이 만나가지고 투숙객이 입장하는데 따라 들어갔다. 그 호텔 로비로 들어가서 높은 데 올라가서 자살을 했다고 하는데 이 사건도 충격적이었는데 사망하지는 않았다. 가장 좀 비참한 부분이 이제 10대 청소년들의 자살률이다. 노인 자살률도 심각하지만 청소년 자살률이 유독 뼈아프다. 10대 청소년들이 자살을 선택한다는 거는 한국 사회가 많이 병들어 있다는 얘기다. 예전에 청소년 언론에서 일할 때 직접 취재를 나갔던 기억이 있는데 광주에서 여중생 둘이 자매인데 동반 자살을 했다. 성적 때문이었다. 근데 공부를 못 했냐? 아니다. 둘 다 상위권인데 언니가 맨날 1등만 하다가 3등을 했고 어머니로부터 심하게 혼나서 먼저 자살을 했다. 근데 동생도 그걸 보고 따라 자살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에게 숨 쉴 수 있는 여유도 주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얘들이 또 이제 학폭을 저지르거나 비행 청소년의 길로 가는 것도 입시위주교육이라는 것과 연관이 안 될 수가 없다.
박성준 센터장: 청소년들이 자살을 하는 거에 대해서 그런 압박감이 되게 셀 것이다. 입시 스트레스도 그렇고 부모의 영향이 굉장히 크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건 친구간의 갈등도 있을 것이다. 학교, 학원, 부모, 사회 등이 청소년들을 죽음으로 밀어내는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청소년들을 보듬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운 생각이 많아졌다는 건 그만큼 힘든 일이 많아졌다는 얘기다. 자기 몸을 던질 만큼의 스트레스가 생겼다는 거고 우발적일 수는 있으나 그게 우발적이라고 해서 너희가 못 견뎠고 견딜 수 있는 힘이 약해졌다고 볼 수는 없다. 정신력이 약하다! 우발적이다! 이렇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해당 청소년이 도대체 왜 그랬는지 왜 그런 결심까지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어봐야 한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작년 10월1일 전남 광양시 모 아파트 23층 옥상에서 19세 여성 청소년 A씨가 자살 시도를 했다가 구조됐다. 당시 소방당국은 매트리스를 이중으로 급히 설치했는데 A씨가 그 가운데로 떨어져 반동으로 2차 상가 샌드위치 패널 벽면에 부딪혔고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A씨는 신속히 응급실로 옮겨져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언론 보도를 보면 남자친구와의 갈등이 작용했다고 하는데 확정할 순 없다. A씨는, 몸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마음이 크게 다쳤고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박효영 기자: 보건복지부든 아니면 광양시청이든 전남도청이든 또는 그런 관련 당국에서 이 친구에 대해서 면밀히 좀 살펴보고 뭐가 문제였는지 살펴보고 그 다음에 좀 학자들이 연구를 해가지고 A씨가 어떤 부분 때문에 극심한 고립감과 스트레스를 느끼게 됐는지 파악해봐야 한다. 그러니까 이성관계에 문제 있다고 해서 다 자살 시도하는 건 아니다.
박성준 센터장: 그거는 어떻게 보면 촉발하는 요인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자살하지 않는다.
박효영 기자: 과거 오목렌즈 대담에서 다뤘는데 연예인 자살 얘기할 때 연예인들이 자기가 힘든 거를 좀 얘기하자 그랬다. 주변에 얘기하자고 털어놓고 좀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했으면 좋겠다. 이게 연예인 뿐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특히 청소년도 그렇고 뭔가 어떤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이걸 남한테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인가? A씨한테는 남자친구와의 갈등이 지금 제일 중요한 얘기인데 이게 지상 최대의 과제인데 주변 사람들에게는 별 일 아닌 것처럼 치부될 수도 있고.
박성준 센터장: 지금 말씀하신 그 부분이 가장 핵심이다. 누군가한테 얘기를 하려면 들어줄만한 사람이 주변에 있는가가 핵심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한다. 어른이라고 한다면 주변에 나이와 상관없이 이런 얘기들을 누군가 하게 되면 아직 어려서 그래! 뭐 그런 건 별거 아니야!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줄만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말을 하려고 하다가도 부모나 가까운 사람들이 그런 실수 많이 하는데 내가 널 오랫동안 지켜봐왔는데 그건 별거 아니야. 너 할 수 있어. 근데 할 수 있으면 얘기 안 한다. 할 수 없으니까 얘기하고 싶은 거다. 주변에 자주 보는 익숙한 어른들이 오히려 그런 걸 막는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청소년 상담이든 연예인 상담이든 주변에서 잘 들어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단순히 친구들끼리 고민 털어놓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부모한테 얘기 못 하고 선생님한테 얘기 못 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그들은 평소에 자기가 쓰고 있던 가면을 익숙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게 더 힘들다. 청소년들이 특히나 이런 쪽으로 투신이나 자살 같은 걸 생각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가장 먼저 마음을 닫는 대상이 그들이다. 왜냐하면 이 얘기를 했을 때 반응이 예상 가능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박 센터장이 말하는 ‘가면’이라는 것은 부모를 비롯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믿음이 작용해서 힘들어도 안 힘든 척, 고민 있어도 괜찮은 척 연기를 하게 된다는 뜻이다.

 

가면이 익숙한 사람들이라고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뭐냐 하면 그 학생들이 가장 먼저 가면을 쓰고 가장 두꺼운 가면을 쓰는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이다. 주변 사람들한테 이 얘기하면 어떤 반응이 올지 내가 이걸 실행할 경우에 어떤 반응이 와서 어떤 슬픔을 가지고 오게 될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내 피해나 내 상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건 익명이 보장된 전문가와의 상담이 실질적으로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단순히 자살 예방 홍보 전화번호만 써놓는 수준이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협업해서 교육 현장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박 센터장은 “전화해달라는 것은 해당 친구의 행동을 바라는 건데 변화하는 행동을 하려면 굉장히 용기를 내야 된다”며 “내가 그런 상태인 걸 인지하고 마음을 바꿔서 전화를 해봐야지까지 움직이기가 되게 힘들다”고 지적했다.

 

박효영 기자: 기초단체별로 청소년 상담소가 좀 실질적으로 운영이 돼가지고 친구들을 적극적으로 모니터링도 하고 먼저 뭔가 연락이 오길 기다리지 말고 청소년들이 많이 가는 곳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찾아가서 먼저 손을 내밀고 도움을 주면 좋겠다. 신뢰감을 줄 수 있도록.
박성준 센터장: 청소년들이 그런 곳에 가면 이상한 애로 비춰질 가능성이 있다.
박효영 기자: 그렇다. 입시 교육 전선에서 탈락한 친구들, 이탈한 친구들, 비행 청소년, 탈학교 청소년. 이렇게 볼 것 아닌가?
박성준 센터장: 그렇게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안 된다는 얘기는 쉽게 얘기하면 정말 근본적인 문제는 뭐냐 하면 청소년들의 공간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입시를 위한 공간, 학습을 위한 공간은 되게 많고 필요 이상으로 많다. 근데 내 마음을 들여다볼 공간, 내가 마음 놓고 얘기할 만한 공간, 내가 비밀 얘기를 털어놓아도 다시 내가 원하지 않으면 다시 안 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되는데 그런 공간이 없다.
박효영 기자: 진짜로 공간도 없고 시간도 없다. 군인 같다. 강제로 징집된 군인들은 새벽 2시에 잠들 때조차도 옆에 선임이 있고 잠꼬대도 편하게 못 하고 내 의지대로 될 수 없는 코 고는 것도 눈치 봐야 되고 뭐 이런 게 있는 것처럼 청소년도 그렇다.
박성준 센터장: 요즘 현역 군인들은 1년 6개월 복무한다. 근데 청소년들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만 잡아도 최소 6년이다. 요즘 심하게 보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사교육에 시달리니까 10년 이상 그렇게 살면 어떻게 될까? 그런 문제가 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챙기는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시간을 쓰고 노력해야 한다.
박효영 기자: 자기 공간과 시간 이런 얘기 나왔는데 이게 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자기결정권’이다. 영유아기만 지나도 유치원생만 돼도 초등학생만 돼도 자기 생각이 있고 욕구가 생긴다.자기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데 정작 결정권이 없다. 우리 청소년들한테는. 그러니까 자발적으로 생각해서 결정을 해보고 시행착오도 겪고 이렇게 결정하면 이런 게 생기구나. 이런 교훈을 얻어야 되고 그러면서 성인이 돼가는 건데 그런 게 없다. 그런 훈련 과정도 없고 자기 시간을 자기가 짤 수 있는 권리도 없다.

 

물리적 공간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박 센터장의 표현으로는 “실수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어린이기 때문에 혹은 청소년이기 때문에 실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은 하는데 그 친구들이 실수했을 때 어른들의 반응이 잘했어 다시 해보면 돼가 되지 않는다. 특히나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공부 열심히 해야 되는 과정에 공부 아니고 다른 걸로 실패해보는 경험을 격려해주는 어른들이 많지 않다.

 

‘강요된 자발성’이란 게 있다. 원치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열심히 하는 것이다. 토익 시험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겉으로 보면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하고 학원에 다니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라 원서를 넣으려면 토익 점수가 필요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한다.

 

박효영 기자: 청소년들도 성적이라는 이 굴레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야 내가 존중받고 내가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다. 성적이 안 나오면 인간다운 취급을 못 받구나라는 거를 초등학교 때도 다 안다. 자발적으로 자기 결정을 포기한다. 그냥 공부만 한다.

박성준 센터장: 국민 80%가 대학생이다 보니까 대학을 안 가면 실패하는 게 되는 것이다.

박효영 기자: 물론 요즘에는 뭔가 대형 유튜버가 되거나 연예인이 되거나 이런 게 있고. 고졸이지만 장사를 잘해서 잘된 케이스도 있고 이런 루트들이 있긴 있는데 대다수의 청소년들 일단 대학에 가야 된다는 이 압박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청소년들이 얼마나 많을까?
박성준 센터장: 지금 말씀하신 게 핵심인데 대학을 가지 않고 성공한 경우들이 많다는 걸 부모들도 알고 있는데 근데 부모들이 어떻게 얘기를 하냐.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은 돌연변이야. 너는 돌연변이가 아니니까 평범한 길을 가라고 얘기를 한다.

박효영 기자: 입시위주교육의 시스템 밖에서 뭔가 해보려면 대학을 안 가거나 너만의 길로 가보려면 손흥민처럼 해야 된다. 손흥민처럼 대성공을 하지 못 하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행복하게 소소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박 센터장은 ‘또래 집단’의 중요성을 환기했다.

 

중요한 게 뭐냐 하면 또래 집단이 어디에 형성되어 있느냐를 봐야 된다. 학교나 학원 밖에서 형성되어 있는 또래 집단이 환영받고 있는 곳이 없다. 그렇게 형성된 또래 집단이 환영을 못 받으니까 그 아이들이 그 길로 못 가는 것이다. 2순위, 3순위이자 부모가 허락해 주지 않은 또래 집단일텐데 그러니까 공부에 방해되는, 노는 애들이랑 놀지마! 이런 거 있지 않은가. 걔 성적 얼마나 돼? 악동뮤지션이 몽골이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하면 음악을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싶다. 답이 바로 나온다. 무슨 얘기냐면 대한민국이 원하는 틀에서 지금 청소년들이나 10대들이나 20대들이나 다들 그 틀에서 살고 있다. 그 틀에서 벗어나는 걸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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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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