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박성준의 오목렌즈] 34번째 기사입니다. 박성준씨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뇌성마비 장애인 당사자이자 다소니자립생활센터 센터장입니다. 또한 과거 미래당 등 정당활동을 해왔으며, 현재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한 각종 시민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에 관심이 많고 나름대로 사안의 핵심을 볼줄 아는 통찰력이 있습니다. 오목렌즈는 빛을 투과시켰을 때 넓게 퍼트려주는데 관점을 넓게 확장시켜서 진단해보려고 합니다. 매주 목요일 박성준씨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색깔 있는 서사를 만들어보겠습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22대 국회 전반기 원구성협상이 파행으로 흘러가는 상황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중이었다. 제도권 언론에서는 “법사위”를 두고 여야가 합의하지 못 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는데 사실 법제사법위원회가 핵심이 아니다. 한국 정치의 구조와 본질을 직시해야 한다.
조금만 벗어나는 이야기인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생각이 들긴 드는 게 뭐냐면 승자독식 선거제도가 그래서 문제인 것 같다.
우선 5년 전 본지 기자가 작성한 이 기사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국회가 습관성 파행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모 아니면 도. 1표만 더 받아도 당선되는 승자독식 단순다수대표제 위주의 지역구 선거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84%(300석 중 254석)다. 무조건 상대의 발목을 잡아서 무너뜨리거나, 상대 공격으로부터 자기편을 방어하고 아첨하는 것에 올인하게 된다. 전문 용어로 적대적 공존 체제다. 사실 한국의 대통령 선거 자체가 승자독식의 끝판왕이다. 양당의 타협과 합의는 어느새 불가능에 가까운 지경이 됐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80석 압승을 거두고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집권한 뒤로는 그야말로 살얼음판이 됐다.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은 지난 6일 평범한미디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단순다수제의 승자독식 제도라서 그런 건데 겨우 (윤석열 대통령이) 25만표 차이(0.73%)로 승리했음에도 5년 동안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거기다가 단임제”라고 말했다.
절반의 국민으로부터 선택 받지 못 했음에도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남발하고, 집권 이후 2년여만에 등떠밀려 겨우 제1야당 대표를 만날 정도로 마이웨이로 치닫았다. 22대 총선 참패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집권 여당 국민의힘도 “운동권 적폐 청산”을 공공연히 내세우는 등 민주당에 대한 적개심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안 그래도 공격성을 드러내고 싶어 했던 민주당도 맘껏 저주의 언어를 쏟아내고 있다. 마찬가지로 절반의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인데 “검찰 독재 정권”의 수장으로 단정하고 맹비난을 가하고 있다.
대선에서 48.56%(1639만4815표) 대 47.83%(1614만7738표)로 이겼다는 것은 국민 민심이란 게, 대통령을 2명 시켜줄 수 없으니 당신이 대통령이긴 한데 나머지 절반의 국민을 어떻게 포용하고 대타협을 만들어서 당신을 반대한 47%의 국민들도 인정하게 만드느냐가 과제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윤 대통령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개헌 포함 정치체제의 변화를 고민해봐야 한다. 박 센터장은 “사람 나이도 40세라고 그러면 불혹이라고 그런다. 1987년 이후 37년이 흘렀다”며 이젠 바뀌어야 하고 실현가능성이 높은 “대통령 중임제”가 유력 대안이라고 설파했다.
이제는 독재를 못 하게 하는 독재 스토퍼의 역할을 했던 단임제라는 게 이게 또 다른 형태의 독재의 수단이 돼버렸다. 그래서 불완전하지만 가장 현실적으로 합의에 이를 수 있는 대통령 중임제로 가야 한다. 사실 대한민국 정치 역사에서 독재가 워낙 길었기 때문에 중임제를 해보려고 해도 대통령들이 중임에서 만족하지 않고 3선 개헌, 4선 개헌을 했고 그 결과로 딱 한 번만 하도록 단임제를 선택한 건데 이제 단임제의 폐해가 나타났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중임제로 돌아가야 되는 거고 두 번으로 딱 제한하는 형태로 해야 된다.
사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정치제도 개혁을 도모한 정치인들이 있긴 있었다. 크게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과 ‘대통령제 권력구조 개혁’ 2가지인데 전자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이고, 후자는 분권형 개헌과 의원내각제로의 전환이다. 국가 원수를 직접 손으로 뽑고 싶은 우리 국민들의 마음이 강하기 때문에 의원내각제로 바꾸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그래서 박 센터장이 거론했던 것처럼 4년 중임제가 그나마 여야의 입장차를 좁힐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권력구조 개혁의 모델이었다.
사실 우리나라는 군주제에 익숙한 나라다. 강력한 지도자의 카리스마를 바라는 국민들도 많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나 의원내각제는 왕조 체제를 끝내고 몇 백년간 민주주의를 해왔던 유럽 국가들에겐 익숙하지만 한국에선 너무 낯설고 경험이 없다. 의원내각제라는 게 독일도 그렇고 정당이 책임지고 (내각을 구성해서) 정권을 맡는 것인데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의 임기를 보장해주는 것이 기본이다.
2018년 지방선거 이후 펼쳐진 권력구조 개헌 정국에서 여야는 원포인트 개헌에 합의할뻔 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그때 제시됐던 유력 모델이 4년 중임제였는데 연이어 선거에서 대패한 자유한국당이 대통령의 권력을 최대한 뺏어오기 위해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하는 바람에 원포인트 개헌이 좌절됐다.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은 총리추천제와 총리선출제로 집약된다. 대통령과 함께 야권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총리가 공동으로 행정부를 이끌어가는 체제다. 하지만 권력을 나눠야 하기 때문에 집권 세력이 반대하기 마련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국회에서 국무총리를 추천할 수 있도록 하는 총리추천제에 대해 “사실상 의원내각제”라는 레토릭을 내세우며 거부했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총리 후보자가 추천되더라도 말 그대로 추천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불수용이 보장돼 있음에도 민주당으로선 집권 권력을 나누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반대로 일관했다.
분권형 대통령제가 어렵다면 중임제라도 해야 한다. 한겨례 성한용 선임기자는 윤 대통령이 중임제 개헌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윤 대통령이 개헌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은 4.10 총선 참패로 ‘거의 식물 대통령’이 된 상태다. 앞으로 국회가 정부 여당이 반대하는 법안을 야당 주도로 줄줄이 통과시킬텐데 대통령 거부권 행사만으로 이를 방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재의결 무기명 투표에서 국민의힘 의원 8명만 찬성표를 찍으면 윤 대통령의 거부권은 무력화되고 윤 대통령은 ‘거의 식물 대통령’이 아니라 ‘그냥 식물 대통령’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지지 않고 대통령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바로 자신의 임기 단축을 포함한 개헌이다. 이 대표와 정치 회담을 통해 4년 중임제 개헌에 합의하고 구체적인 협상은 국회에 맡기면 된다. 그 대신 윤 대통령은 남은 2년 동안 노동·교육·연금 개혁에 주력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탄핵을 피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윤 대통령이 참고할 수 있는 선례가 있다. 박 센터장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1월 임기 말 정국에서 중임제 개헌을 먼저 제시했던 사례를 언급했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은 본인 스스로 임기를 줄이면서까지 4년 중임제 개헌을 하자고 했고 동시에 선거제도 개혁을 얘기했던 시기다. 대통령제의 수장이 스스로 임기를 깎으면서 4년 중임제로 가겠다고 했고 중임된다고 하더라도 출마 안 하겠다까지 선언한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까지 얘기를 했으면, 대통령제의 수혜자가 그런 얘기를 했으면 되든 안 되든 한 번 제대로 논의해봤어야 되는 문제였다. 오히려 그 당시 한나라당쪽에서 적극적으로 OK 하고 한 번 논의를 해보고 수용을 했어야 했는데 수용하지 못 했다.
물론 박 센터장도 정치개혁의 종착점이 4년 중임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비례성을 보장하는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분권형 개헌 및 의원내각제로 가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현실이 녹록치 않다.
온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얘기가 나오자마자 그럼 우리는 위성정당 하겠다고 하는 게 대한민국 국회다. 그 방식이 원칙적으로 맞다는 걸 동의하는데 우리는 꼼수부터 쓸게라고 얘기하는 게 대한민국 국회인데 국회가 어떻게 바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