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박성준의 오목렌즈] 58번째 기사입니다. 박성준씨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뇌성마비 장애인 당사자이자 다소니자립생활센터 센터장입니다. 또한 과거 미래당 등 정당활동을 해왔으며, 현재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한 각종 시민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에 관심이 많고 나름대로 사안의 핵심을 볼줄 아는 통찰력이 있습니다. 오목렌즈는 빛을 투과시켰을 때 넓게 퍼트려주는데 관점을 넓게 확장시켜서 진단해보려고 합니다. 매주 목요일 박성준씨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색깔 있는 서사를 만들어보겠습니다. 더불어 박성준 센터장은 2024년 7월11일부터 평범한미디어 정식 멤버로 합류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故 오요안나씨에 대한 MBC와 기상캐스터들의 괴롭힘 문제가 날이 갈수록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평범한미디어 유튜브 채널에도 관련 영상을 올렸는데 평균 조회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다. 오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핵심 가해자는 2018년부터 MBC에서 활동한 박하명 기상캐스터라는 점이 확인됐다. 동조 가해자는 박 캐스터와 동기 최아리·김가영 캐스터, 2010년부터 15년간 활동한 최고참 이현승 캐스터 등 3명이다. 오씨와 2021년부터 같이 일을 시작한 금채림 기상캐스터 역시 왕따의 피해자였다. 2대 4 구도로 괴롭힘이 자행돼왔던 것이다.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은 6일 평범한미디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직장 내 괴롭힘은 피해자가 얼마나 자주 가해자하고 만나야 되느냐 그리고 일하는 그룹이 크냐 작으냐의 문제가 중요하다”며 “오요안나씨는 자주 만나는 가해자 그룹을 제외하고 MBC 내에서 다른 그룹하고의 접촉 빈도는 별로 없고 기상캐스터라는 특성이 있다 보니까 폐쇄성이 더 컸던 것 같다”고 말했다.
쉽게 이야기하면 내부에 내 이야기를 할만한 상대가 없었다라고 보는 게 맞는데, 말미에 가면 너무 힘들어서 결국 피해 사실을 말했지만(아나운서/조연출/PD/기상캐스터) 안타깝게도 끝내 고인이 됐다. 오씨는 적극적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던 사람이었고 유퀴즈에 출연한 적도 있다. 유퀴즈만 봤을 때는 본인이 그런 어려움 같은 걸 겪고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 할 정도로 전문적인 커리어를 밟아나가는 그 나이 또래의 당찬 여성으로 보였다. 그런 오씨도 어떻게든 MBC에서 버텨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힘들었다면 차라리 퇴사하면 어땠을까? 이런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꽤 있을텐데 말처럼 쉽지 않다. 오씨에게 MBC 기상캐스터 자리는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이며, 기상캐스터를 포함 아나운서계에서는 인터넷 방송, 지방, 케이블 등을 거쳐 지상파 본사에 들어가는 것을 최후의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꼭 생존해서 인정을 받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 오씨는 이전에 아이돌 연습생 신분으로 기획사에서 고된 자기 학대의 과정을 겪다 포기한 적이 있다. 다시 진로를 정하고 준비해서 기상캐스터가 됐는데 또 포기할 순 없었다. 더구나 4차례의 자살 시도를 하고 있던 기간(2024년 9월6일~9월15일)에도 날씨 방송을 완수하기 위해 애를 썼을 만큼 책임감이 강한 인물이었다. 오씨 모친은 딸에 대해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우리 안나는 사실 안 죽고 싶었어요. 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박하명이 발음 지적하니까 없는 돈에 과외까지 받았어요. 투잡으로 번 돈을 자기 발전을 위해 쓴 거죠. 그만두라고 했어요. 그런데 끝까지 하겠대요. 꿈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현실은 잔인했죠. 안나는 죽음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너네들한테 나 진짜 힘들다고 이야기했잖아. 내 말 안 들려? 내가 죽으면 들어줄 거야? 안나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물론 방법은 결코 옳지 않지만요.
모질게 괴롭혔던 이들에게 죽음으로 항의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씨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바를 했을 만큼 독립심이 강했고, 프리랜서 기상캐스터로 일하면서 부족한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쓰리잡(헬스클럽 코치/글쓰기 알바/식당 설거지)을 강행하며 버텼다. 박하명 캐스터로부터 지적을 받자 아나운서 학원 강사를 찾아가 1대 1 과외를 받기도 했다. 괴롭힘에 시달리며 우울증을 앓고 수면제나 술에 의지해 살았지만 이내 극복하기 위해 요가를 하고 런닝을 했다. 모친은 “계속해서 노력했다. (선배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러나 선배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제자리였다”고 증언했다. 박 센터장은 “프리랜서라는 건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특수고용직이라고 해서 사실 고용이 되게 불안정하다”며 “그런데 업계에선 올라갈 수 있는 최상위권에 올라가 있다. 오씨 입장에서는 주어진 기회를 잡았으니까 죽을 힘을 다해 열심히 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박 센터장은 가해자 개개인의 잘못 이전에 MBC의 방임이 굉장히 무책임했다는 사실을 환기했다.
확실한 건 결과는 자살이고 원인은 분명하다. 괴롭힘이 있었다. 그 외에 다른 원인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윗선에서 프리랜서 기상캐스터들끼리 갈등하고 군기를 잡고 있을 때 조정을 전혀 하지 않은 것 같다. 더구나 딱 6명이 아니라 캐스터가 20~30명 가량 있었다면 오씨편을 들어줄 캐스터들이 좀 있어서 끝까지 버틸 수 있었겠지만 소수라서 그렇게 외톨이가 되기 쉬웠을 것이다. 금채림씨가 있긴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캐스터들끼리만 움직이는 그런 시스템이 공고해서 MBC의 다른 관계자에게 SOS를 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도움을 청했고 별다른 변화가 없자 절망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외모적으로 뛰어난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아이돌 연습생이 되거나, 미인대회에 출전하거나, 유튜버나 인플루언서가 되거나, 치어리더가 되거나, 승무원 또는 아나운서가 되는 ‘경로’로 흘러가게 된다. 아나운서계에는 리포터, 기상캐스터, 스포츠 캐스터 등이 있는데 큰 방송사에서 방송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MBC는 그런 자리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큰 의미라는 걸 알고 갑질 요소로 삼아 박봉으로 기상캐스터들을 써먹었다. 그렇게라도 기회를 받으려는 전국의 아나운서 준비생들이 수두룩하다. MBC는 필요한 만큼 정규직 기상캐스터를 채용해서 월급을 주고 방송에 투입하면 되는데, 5~6명을 뽑아놓고 더 튀고 주목도가 높은 사람이 방송 기회를 많이 잡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놨다. 그들끼리의 치열한 제로섬게임 뒤에는 MBC의 비열함이 자리잡고 있다. 박 센터장은 “기상캐스터라는 직군에 대해 MBC가 우리 식구라는 느낌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소위 “위장 프리랜서” 문제가 방송가에서 만연하지만 MBC는 가장 심각했다. 전국언론노조는 성명을 내고 아래와 같이 밝혔다.
故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의 비통한 사연은 우리를 더 깊은 분노와 참담함에 몰아넣고 있다. 고인의 사례는 대한민국 방송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는 구조적인 비정규직 차별, 이로 인해 일상화된 비인간적인 무한 경쟁 체제, 사용자의 오만과 무책임까지 민낯을 다 드러내고 있다. 故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의 안타까운 희생은 직장 내 선후배 간 괴롭힘 차원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고인의 죽음은 비정규직 노동자, 더 정확히는 방송산업 내 ‘위장 프리랜서’ 노동자의 피눈물 나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외주화의 흐름 속에서 ‘병’과 ‘병’이, ‘정’과 ‘정’이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게 만드는 구조가 뿌리 깊다. 그 구조 속에서 노동 인권은 땅에 떨어지고 득을 보는 건 오직 방송 사용자들이다. 비용 절감을 위해 비정규 노동자를 양산하고 필수업무에도 무차별적으로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관행은 방송산업을 착취와 혐오, 차별이 난무하는 비정규 백화점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노동조합 차원의 투쟁도 투쟁이지만, 합법을 가장해 죽음을 부르는 이 비정한 관행의 사슬을 방송 사용자가 끊지 않는 한 우리는 제2, 제3의 희생을 피할 길이 없다.
아무 입장 표명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가해자들에 대해 MBC가 결국 끝까지 보호하진 않을 것 같다는 게 박 센터장의 생각이다. 즉 “당분간 인원이 부족하니까 계속 쓰고는 있는데 고용을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 것 같고 단절을 해야 MBC라는 곳을 지킬 수가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MBC 입장에서는 거악 윤석열 정부와 격렬하게 맞서 싸우면서 신뢰를 얻은 부분이 있는데 그 안에 구성원의 집단 괴롭힘을 방치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타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직장 내 폭력은 조직 폭력의 일종이다. 학교 폭력이나 군대 폭력과 유사하지만 비교적 최근에서야 관련 법이 만들어질 만큼 아직 사회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미숙한 부분이 많다. 박 센터장은 “(직장 내 폭력은) 근본적인 문제부터 뜯어고쳐야 되는 것이라서 제도적 보완이 쉽지는 않다”면서 “직장 내 괴롭힘 같은 경우는 피해자가 성인인데 성인 피해자에 대해서는 피해자를 탓하는 문화가 아직은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가 아직은 수직적 구조에 익숙한 사고를 갖고 있고 동양적인 사고체계가 또 그런 것들이 많이 있다. 초중고등학교는 청소년기본법에 의해서 청소년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고 대학 졸업생 정도까지도 그래도 학생이니까라는 부분이 있다. 사실 대학생과 직장에 들어간지 얼마 안 되는 직장인들하고는 그렇게 구별이 쉽지 않다. 그들이 직장 내에서 이런 것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문화 자체가 좀 전체적인 인권 의식이 올라가야 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개인보다는 집단을 앞세우는 게 여전해서 많이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직장에 대한 충성 그리고 오래 다니는 것에 대해서 되게 중시한다. 근속에 대한 부분 그리고 상호 평가보다는 근태 평가 같은 수직적인 평가가 더 익숙한 전체적인 직장 구조가 바뀌어야 되는 부분이 있다. 나아가 프리랜서라고 이름 붙여진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서 더 민감하게 사회에서 연대해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되는데 아직은 그게 좀 부족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있다.
한편, 지금도 직장 내 폭력으로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박 센터장은 친구가 됐든 부모가 됐든 직장 밖 가까운 사람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지 말고 알려야 한다. 그 다음 인사팀(사용자)에 신고하든, 외부 전문 단체(직장갑질119)로부터 도움을 받든 상황에 맞게 적절히 대처하면 된다. 무엇보다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최철민 변호사(최앤리 법률사무소)는 4가지 팁을 제시했는데 △본인이 현장에 있는 곳에서 녹음하기 △날짜가 표기된 메시지나 카톡 캡처하기 △병원 진단서 끊기 △육하원칙에 따라 구체적인 일지 기록 등이다.
다들 손쉽게 퇴사를 말하는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건 그 직장 내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으면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 그 전에 이미 나왔을 것이다. 중요한 포인트는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인지하는 사람들은 이미 나름대로 대처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것 자체를 당하는지도 모르고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을 위해 지금 이건 직장 내 괴롭힘 피해라는 사실을 교육하고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