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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톤 ‘덕트 집진기’에 깔려 죽은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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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공장에서 대형 집진기 덕트를 크레인으로 옮기는 도중 갑자기 쇠사슬이 풀렸다. 무려 1.3톤짜리 집진기가 5미터 아래로 추락했는데 하필 아래를 지나가던 50대 남성 노동자 A씨를 그대로 덮쳤다.

 

14일 13시반 즈음 인천 서구 대곡동에 있는 모 공장에서 A씨가 집진기에 깔려 숨졌다.

 

집진기는 실내 공기를 정화시켜주는 장치이고, 덕트는 흔히 고깃집에서 연기를 밖으로 빼주는 은색통을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원형 덕트와 사각 덕트가 있는데 덕트는 집진기와 연결돼 있다. 집진기로 실내에 있는 오염된 공기를 흡수해서 덕트를 통해 밖으로 빼내는 것이다. 일반 고깃집에서 쓰는 작은 규모와 달리, 공장에서 발생하는 먼지와 매연을 제거하려면 덕트와 집진기 모두 엄청 거대할 수밖에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무거운 집진기를 크레인으로 옮기려면 고정을 아주 단단하게 잘 해야 한다. 그런데 시간 단축을 원했던 건지 쇠사슬 고정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소중한 생명이 또 산업재해로 짓밟혔다. 공장에서 사용하는 대형 집진기 덕트는 일체형이라서 분리하지 못 하고 통째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결론적으로 쇠사슬이 풀리도록 대충 고정한 것이 이번 비극의 핵심 원인이겠지만, 머리 위로 무거운 고체덩어리가 옮겨지고 있는데 그 아래에서 작업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도록 안전 통제를 소홀히 한 것도 중대한 잘못이다.

 

A씨가 사고를 당한 직후 주변 동료들이 곧바로 119에 신고했지만 너무나 무거운 집진기에 깔렸던 만큼 손 쓸 새도 없이 A씨는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고 한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와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은 정확한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크레인 기사 등 현장 목격자들을 대상으로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켰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A씨가 속한 B업체에 대해 무거운 형사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야 하지만 상시 근로자 5인 미만의 소규모 업체라서 중재법을 피해가게 됐다.

 

한편, 중재법은 2010년대 초중반부터 ‘기업살인법’으로 불리며 제정 목소리가 높았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2021년 1월 국회에서 통과되며 시행되고 있는 법률이다. 그동안 연 평균 600여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는 현실이 부각되며 법 제정에 탄력이 붙었고 특히 2018년 12월 김용균 사건 등으로 인해 청년 노동자가 비참하게 죽어갔던 사연이 알려지게 되며 재계와 보수정당도 법 제정을 막지 못 했다. 그러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바뀌었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적용 대상에서 빠졌고, 50인 미만 사업장 또는 공사비 50억원 미만 공사 현장에 대해서는 3년간 법 적용을 미루는 유예 기간을 두는 등 처음 나왔던 원안에서 많이 후퇴했다. 그러나 한국 산업재해 사망 사건의 80%(5~49인 사업장 45% 가량 + 5인 미만 사업장 35%)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위험한 작업 환경을 방치해서 A씨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B업체 경영진은 중재법이 아닌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얼마 안 되는 벌금형에 처해지거나 그마저도 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은 “처음 법을 만들 때 당연히 5인 미만 사업장이 들어가는 줄 알았다. 모든 노동자는 안전한 노동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며 “회사가 안전한 근무환경을 만드는 일은 당연한 것이다. 법을 제대로 지킨다면 경영 책임자가 처벌받는 일은 없다. 그동안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문제였고 경영자들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안전에 더 신경 쓰고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의 가치는 누가 정해주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가치 있는 것이고 누구의 잣대로 훼손하면 안 된다. 죽으러 일터에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죽임을 당해야 하는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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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영

평범한미디어를 설립한 박효영 기자입니다. 유명한 사람들과 권력자들만 뉴스에 나오는 기성 언론의 질서를 거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사안을 바라보고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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