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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어딘가에선 태아 산재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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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 김미진 기자] 한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열 번의 우주를 거쳐야만 하는 숙명이라고 했다.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다. 태어나서 느끼는 신체적 고통 중에 출산의 고통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막상 끝나면 그만큼 벅찬 것도 없다. 생명의 고귀함이 가장 빛나는 때다. 그런데 여기 그 고통을 맛보기도 전에 태 더 큰 심리적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다. 그 끝이 보이지 않아 아직도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 살고 있다. 

 

'태아 산업재해'에 대한 이야기다. 기업의 '간접 살인'이라고 칭할 수 있다. 

 

 

충청권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A씨는 지난 2020년 말 유산의 아픔을 겪었다. 그는 평범한미디어와의 만남에서 입을 뗐다.

 

기본적으로 간호사 1인당 맡는 환자의 수는 20명 정도입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면서 30~40명으로 늘었어요. 단축 근무조차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그러면서 근로기준법에 따른 단축근무 가능 일주가 지나버렸고 계속 들어오는 환자들 때문에 계속 일할 수밖에 없었죠.

 

열악한 노동 실태가 아닐 수 없다. A씨가 품고 있던 새 생명은 한 병실 바닥에 새빨갛게 쏟아져버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지도 못 한 A씨는 동료 간호사에게 뒷처리를 맡기고 화장실로 뛰쳐가 변기에 앉아 울었다고 한다. 슬픔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 했는데 3교대 근무가 휘몰아쳤다. 결국 그는 지난해 3월 첫 직장이었던 해당 병원을 떠났다. 

 

그냥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집에 틀어박혀 살았어요. 몇 달을 그렇게 은둔자처럼 숨어 살았고 그러다 제주의료원 간호사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2020년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는 아이를 낳은 제주의료원 간호사가 산재로 인정을 받았다. 아이가 태어난지 10년만이다. 이런 결과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태아 산재'는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승소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삶에도 변화는 없었다고 한다.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다들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겨우 얻어낸 결과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얼마전까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조 등에 따라 노동자 본인 외에는 산재보험의 수급 자격이 없었다가 한 달 전에야 태아산재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임신한 노동자를 위한 환경 조성이 절실합니다. 또한 보건의료노동자, 특히나 '죽음의 3교대' 운영에 대한 새로운 법 제정이 필요합니다.

 

 

꼭 의료계만의 비극은 아니다. 경기도 한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B씨 역시 사산의 아픔을 겪었다.

 

첫째도 유산 위험을 넘겨서 둘째 때는 최대한 조심한다고 했는데 결국 세상에 나와보지도 못 하고 제 품을 떠났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과로'가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고 하는데 제가 일하지 않으면 애 아빠 혼자서 생활을 감당해낼 수가 없어요. 전혀 다른 현장이라고 해도 막상 가면 마음이 먹먹해져요.

 

다만 A씨와 B씨의 경우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최근 건설근로자공제회에서 여성 노동자 본인이 유산 및 사산했을 때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하면서 B씨는 3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태아 산재로 인정받진 못 했다. 

 

B씨는 평범한미디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어딘가에선 태아 산재가 거듭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새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 모두의 관심입니다. 앞으로 나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게 여성근로자의 근무환경에 대한 개선이 이뤄져야 합니다. 절실하게 부탁드려요.

프로필 사진
김미진

사실만을 포착하고 왜곡없이 전달하겠습니다. 김미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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