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올해부터 우회전 관련 법 규정이 바뀌었다. 이제 우회전 차량은 보행자 신호와 상관없이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있거나, 그 인근에서 횡단보도로 다가오고 있는 등 한 마디로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멈춰야 한다. 그러나 개정된 도로교통법이 무색하게도 광주의 한 도로에서 우회전 버스에 보행자가 치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3일 아침 7시20분쯤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에 있는 한 도로에서 우회전을 하던 전세버스가 횡단보도에 서있던 70대 할머니 A씨를 그대로 치고 말았다.
사고를 당한 A씨는 출동한 구급대원들에 의해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지고 말았다. 커다란 버스가 A씨를 그대로 덮쳤으니 생존 확률은 희박할 수밖에 없었다.
사고를 낸 전세버스 기사 74세 남성 B씨는 뒷수습을 하기는커녕 그대로 차를 몰고 도주하는 작태를 보였다. 경찰은 B씨를 검거하기 위해 인근 CCTV 화면을 분석하고 차량 수배를 내렸다. 그 결과 B씨의 차량을 특정할 수 있었고 곧바로 해당 버스회사에 연락을 취해 인근에서 뺑소니범을 검거할 수 있었다.
경찰은 B씨를 도주치사 혐의로 입건하고 자세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는데 일단 음주운전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친 것이 도로 위 적재물인줄 알았다. 사람을 친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밝혔는데 별로 신뢰가 가지 않는 진술이다. 술 마시거나 졸음운전도 아닌 상황에서 사람을 들이받은 걸 인지하지 못 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일단 후진 상태도 아니고 횡단보도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드러눕지 않은 이상 사람을 발견하지 못 할 수가 없다. 사실상 ‘전방 주시 태만’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꼭 개정된 법률이 아니더라고 우회전할 때 사람이 보인다면 상식적으로 일단 정지하는 게 맞다.
버스 앞유리는 무지 크다. 어린이 보행자가 아니라면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의 시야 방해는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B씨는 “사람을 친 것을 인지하지 못 해서” 계속 운전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너무 놀라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를 내지 않도록 안전 운전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혹시 사고를 냈다면 상황 모면을 위해 제발 도망가지 말자. 사후 수습만 잘 해도 최소한 범죄자가 되진 않을 수 있다. 도주하면 금방 잡힌다. 요즘 웬만하면 어디에든 CCTV와 차량 블랙박스가 가득하다.
게다가 B씨는 눈에 띄는 전세버스 차량이었기 때문에 더 빨리 덜미가 잡힐 수밖에 없었다. CCTV와 차량 블랙박스로 도배된 대한민국에서 뺑소니범이 잡히지 않길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심지어 회사 차량이었다. B씨의 잘못된 판단으로 A씨는 응급처치 시기를 놓치고 목숨을 잃었다.
정리하면 △우회전 안전운전 태만 △뺑소니 등이 이번 비극의 핵심 원인이겠지만 또 다른 원인이 있다. 현재 광주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지하철 2호선 공사 때문에 방호벽들이 즐비한데 그로 인해 운전자의 시야 확보가 어려워졌다.
보행자는 정상적인 횡단보도에까지 침범해 있는 방호벽 때문에 도로 한복판에서 신호를 기다리기도 한다. 방호벽 근처에는 불법 주정차 차량들이 무지 많다. 운전자들은 광주 어디를 가든 임시 처리된 도로 차선 때문에 헷갈린다. 지하철 공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겠지만 당초 알려진 완공 시점보다 3년이나 더 늦어져서(2026년 개통 예정) 시민들의 불만이 매우 크다. 처음부터 땅 아래에 있는 통신선로와 상수관로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설계도를 짰는지 중간에 공법이 바뀌었고 공사비가 더 늘어났는데 예산이 추가로 확보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부실 공사를 할 순 없고 튼튼하게 건축해야겠지만 왜 공사 초반에 이런 문제들을 빨리 발견하지 못 해서 시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작년 11월19일 방송된 KBS 광주 <시사직배송>에 출연한 안순례 변호사는 “지하철 공사 때문에 도로가 온통 공사판이다. 나도 운전하다가 갑자기 길이 줄어들거나 변경돼서 많이 놀랐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답답하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같이 출연한 순천 YMCA 김석 사무총장은 “운전자 뿐만 아니라 버스 승객들이나 보행자들이 굉장히 위험하다. 버스 정류장이 움직여지다 보니 안전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가운데 바로 도로면과 맞닥뜨린다”고 강조했다.